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하다 Sep 20. 2021

친애하는 아날로그여

디지털 디톡스로 나를 되찾기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다. 스마트폰은 현대인의 필수품이며, 패드나 노트북으로 놓쳤던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과제를 하기 위해 유튜브를 켠다. 책 조차도 이 시류를 피해 갈 수 없다. 전자책과 함께라면 천 페이지에 달하는 책도 한 손으로 가뿐히 들고 읽을 수 있다. 손목에 찬 전자시계는 심장박동까지 측정해가며 내 건강을 살뜰하게 살핀다. 너무 편한 세상이다. 초등학교 시절 포스터, 표어 단골 주제였던 미래도시에 대한 나의 상상에 도달하려면 한참 멀었지만 문득 멈춰도 되겠단 생각이 스친다.

 '내가 죽기 직전에 과학기술은 어디까지 진보해 있을까?'

하는 질문이 떠오르고, 그럴듯한 답변을 모아 그려본 세상이 그다지 근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1년으로 접어들며 새로운 각오로 버킷리스트 12개를 작성했다. 가장 쉽지만 생각해본 적조차 없는 문항, '24시간 동안 핸드폰 없이 살기'가 그중 하나였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을 경계하기 시작한 게 아마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코로나와 동거하기 시작하며 아날로그와의 이별이 더욱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쇼핑, 회의, 수업, 회식마저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는 풍조가 생기면서다. 여러 사람들과 대면하고 먼 곳으로 정처 없이 떠나는 일상을 그리워하면서도, 당장 편리하다는 이유로 이러한 생활에 길들여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자 내가 흐릿해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세상은 조금 불편할지라도 사소한 우연에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또, 그 불편함을 관통하며 삶의 굳은살을 얻는 순간도 있다. 나를 '나'이게 만드는 취향, 위기를 대처하는 순발력, 고민 끝에 스스로 답을 찾았을 때의 성취감 등이 그러하다. 이를테면 난 버스 예상 도착 시간을 모른 채 외출한 어느 날, 정류장 의자에 앉아 뺨을 스치는 선선한 바람을 느낄 때 해방감이 든다. 궁금증이 떠올랐을 때, 시간이 걸릴지라도 내 머릿속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정답에 도달하는 경험이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하는 것보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하고 번호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보단, 퉁명스러운 직원, 친절한 직원, 허둥대는 직원을 마주하고 주문하며 내가 아르바이트하던 시절을 떠올릴 때 세상이 더 생동한다고 느낀다.


 이 기록은 스마트폰에 저당 잡힌 내 일상을 되찾아 끝내 나를 만나는 기록이자, 아날로그를 향한 그리움의 서신이다.


작가의 이전글 변하는 관계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