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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꾸 Sep 04. 2022

웃는 사람의 뒷짐 진 손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알기 힘든 건, 상대방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처럼 사회초년생일수록 더욱 그렇지 않다 싶다. 사람들은 대부분 웃으며 내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인상궃은 사람들이 더욱 그 속을 알기가 힘들다. 몇 번의 대화가 오간 후 그 사람이 보기보다 곰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면, 인상과 대비되는 모습에 경계심이 평소보다 더 낮아지는 심리가 발동한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생각하는, 혼자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보물이 있다. 그들은 당연히 자신이 가진 사회에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보물을 쉽게 누군가에게 자랑하지 않는다. 비밀이라는 것은 항상 누군가에게 호기심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항상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시시콜콜하지만 서로가 섞여있는 공감대로부터 대화를 시작한다. 그건 그저 친분을 쌓기 위한 좋은 도구일 수 있지만,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발판이기도 하다. 사소한 것도 친해야 양껏 물어볼 수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악수를 하는 한쪽 손과 달리, 나머지 한쪽 손은 항상 등 뒤에 숨는다. 그것은 나를 향한 칼일까, 아니면 어느 깊은 숲 속으로의 길이 나있는 보물지도 일까.


 하지만 위의 모든 것은, 사회생활에 있어서 누군가와 처음 엮이는 순간의 기본적인 불편함이다. 실제로 이런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 혹은 이익을 보기 위한 수단으로 다가가는 것은 정황상 어렵거니와, 그런 수단들을 마음에 품고 다가가게 되면, 진정성이라는 감정이 섞이지 않아, 그 순간 이후 그저 그런 눈길 인사를 나누는 수준에 국한돼버린다. 눈길 인사만을 나누는 사이는 아예 모르는 사이보다 더욱 불편하다.


 낯선이가 지인이 되고, 지인이 친구가 되는 과정의 좋은 마음가짐은 단순하게도, ‘이 순간이 너무 심심해서’, ‘갑자기라도 말을 걸어주는 상대방이 고마워서’, ‘같이 일하는 사이에 그냥 알고 지내면 좋으니까’와 같은 진부하지만, 모든 사람이 느끼는 그런 감정들에서 시작된다.


‘정’과 ‘정보’는 마음이 가까워야 쉽게 나누는 것들이다.


 진정성이라는 것은 어느 순간 "빡!"하고 느껴지는 그런 감정들이 아니다. 교류하는 시간이 점점 축척되면 대화의 양과 폭이 넓어진다. 업무적인 대화 이외에도, 사적인 대화, 취미를 공유한다거나, 돌아오는 휴가 때는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와 같은 여러 가지 자신에 대한 정보를 서류 공유하다 보면, 어느새 나에게는 그 사람에 대한 갖가지 정보가 쌓인다. 특히 업무에 있어서 그에게 배우게 된 것, 내가 흘린 정보, 서로의 정보를 합쳐서 알게 된 것들이나, 혹은 취미, 성격, 환경에 대한 교류로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런 몇 번의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진정성에 대한 일차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의 진정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긍정적인 잣대가 세운다는 것은 그의 성품이나, 인격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그의 관계에 있어서 정상적인 소통과 교류가 가능한지, 그의 말과 행동들이 나의 에너지를 급격히 소비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파악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좋은 사람, 진정성 있는 사람일지라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사람은 곧,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관계로 이어지고, 억지로 감당하려 해 봤자 제 풀에 제가 먼저 지치는 셈이 되어버린다. 이 것은 상대방의 나에 대한 평가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진정성이라는 것을 우리는 가까운 인간관계 속에서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겠지만, 결국 확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치 얇은 유리막에 계속 모래를 집어던지는 것과 같다. 모래보다는 단단해서 깨지지 않을 것 같지만, 계속 던지다 보면 '언젠가는 깨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빙빙 맴도는 것처럼. 아마 그것은 자본주의로 가득한 세상에서, 상류를 향해 한 발이라도 더 앞서 나가려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이기심이, 믿음과 같은 선한 영향력이 번져나갈 수 없도록, 세상을 물 빠진 도화지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엉키고 설킨 인간관계로 얽힌 현대 사회 물결 속에서, 욕망이 흐르는 강을 역으로 거슬러 헤엄치는 한 마리의 연어가 되어야 한다. 필요보다는 필연, 이용보다는 긍정적인 상호작용에 의미를 둔 관계 형성을 위하여. 지저분한 강물의 하류도 거슬러 오르다 보면 때 묻지 않은 깨끗한 상류에서 시작된다. 연어는 아마 지겨운 현대 사회가 너무 싫은 나머지, 깨끗한 상류를 향하여 지느러미를 대차게 쳐대며 헤엄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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