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혁꾸 Dec 21. 2022

기록 여행

휴대폰 백업 잘 해놓으세요.

기록

 기록은 선명한 기억을 찾기 좋은 수단이다. 종종 떠올리고 싶은 순간들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을 때면 그 시간의 기록을 뒤지곤 한다. 그중 가장 재밌는 기록은 연인과 처음 나눴던 대화 내용이다. 우리의 카톡 대화창, 과거의 끝자락에는 어색한 나의 첫 메시지가 있다. 소개팅으로 만난 우리는 첫 만남 이전까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한 단어 한 문장 속에는 신중함이 묻어있었다. 이제는 친구와 가족 사이의 경계에서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끼는 관계가 되어서 그런지, 굳이 깊게 생각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나를 향한 마음이 그저 사랑인지, 화가 나지만 사랑인지, 짜증 나면서도 사랑인지 알 수 있다. 요즘 카톡 대화창을 보면 애교와 오타가 팽배하지만 서로가 전달하고자 하는 뜻을 아주 잘 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엄지에 살이 쪘구나~"하고 웃어넘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연인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 그 누구라도 함께 시작한 시간의 첫 기록으로 거슬러 올라보는 것은 꽤 색다른 일이다.


기록

 요즘에는 내가 하는 말들이 전부 기록으로 남는다. 세상이 이렇게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지나간 말들을 입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너만 알고 있으라며 둘이서 비밀스럽게 했던 말도, 다음날이 되면 전교생이 다 알 수 있을 만큼 믿음이라는 것이 가벼웠을 때도, 그저 끝없는 부정과 모함, 선동, 비방 같은 것들을 범하며 불리한 상황을 잘 넘어갈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뒷담을 까다 걸린 것을 부정하고, 들통난 나의 실수를 부정하고, 전교생에게 퍼져버린 나의 짝사랑도 부정했다. 

 하지만 장거리 소통이 발달한 지금, 내 치부를 숨기기 위한 부정들은 더 이상 통하지가 않는다. 친구의 휴대폰 녹음 파일에는 술 취해 비밀을 주절거리는 내 치부가 증거로 남아있고, 나의 방대한 실언과 망언들이 온갖 사이버 세계에 기록되어 있다. 내가 아무리 내가 저지른 말과 행동을 부정해도, 누군가의 [ctrl + f ] 한 번이면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내 앞에 놓인다. 자꾸만 순백을 지향하려 하는 세상이 참 미워지곤 한다.


 

작가의 이전글 모르는 길이 너무 많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