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점 3가지
초등학생이 된 아들이 방과 후에 로봇과학 수업을 듣는다.
레고 같은 블록이나 로봇 키트로 자동차, 로봇팔 등의 구조를 손으로 만드는 수업이다.
그토록 기다린 수업 첫 날.
새로 받은 칸막이 공구함에 부품을 정리하는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선생님이 가져오신 비닐에 든 부품들을 꺼내 자기 가방에 넣는 일이다.
요리도 감자 당근 껍질을 까는게 먼저인 것처럼
물건을 만드는 일도 재료 준비가 이미 작업의 시작인 모양이다.
그리고 다음 단계는 부품에 이름을 써야 한다.
3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동시에 만들다 보니
언제든 서로의 것이 섞여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는,
모든 부품에 하나하나 이름을 써야 한다는 거다.
심지어 쌀알만한 회색 나사까지도.
이러다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이번에는 집으로 가져와서 적는 것이 숙제가 되었다.
6년전 큰 딸이 같은 수업을 들었을 때도 이름쓰기가 꽤 일이었다.
귀찮아.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좀처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하지 않고는 계속 찜찜하게 남아 있을 작업이다.
1학년 아들에게는 큰 부품을 맡기고 쌀알만한 작은 부품들은 그냥 내가 맡기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번에 이름을 쓸 때는 2시간이 걸렸다.
이번에는?
손톱만큼 작은 크기의 일정하고도 방대한 양의 부품들을 보니 이미 질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으니,
잠자코 그냥 시작하기로 한다.
이름을 하나씩 부품에 새기다 보니,
하나씩 하나씩 일감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별 거 아니지만 눈에 직접 성과가 보이니 기분이 좋았다.
손이 불편한 만큼 마음은 편해진다.
미뤄둔 찜찜한 마음이 하나씩 옆으로 밀려 나갔다.
1. 어쨌든 마음을 먹고 움직이는 것이, 시작이 반이다.
작게 이름을 쓰는 게 은근 어려웠는데,
몇 개 지나고 나니 손이 알아서 크기를 맞췄다.
비슷한 크기의 글자들이 줄 맞춰 놓이기 시작했다.
허리를 한 번 펴고 시계를 봤다.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흘렀다.
이건 잘하는 일이 아니라 끝내는 일이다.
속도를 내려면 힘을 조금 빼야 한다.
처음에는 또박또박 정자로 이름을 적었는데,
뒤로 갈 수록 그냥 이니셜 자음만 적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덜 공들인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바로 적었다.
부품을 집고, 이름을 쓰고, 옆으로 밀어놓고.
집고, 쓰고, 밀고.
덜 신경 쓸수록 더 많이 한다.
2. 단순하게 해야 오래 일할수 있다
하얀색 노란색 부품은 보람이 느껴지는 편이다.
이름을 적는 족족 흔적이 남겨지니까.
문제는 검정색 부품과 쌀알만한 나사같은 것들이다.
이것들은 적어도 티가 나지 않는다.
이런 의미 없는 작업이 어디에 있담?
하지만 경험자들에 의하면 검은 부품에 조차 검은 네임펜으로 글씨를 쓰는 게 맞다고 한다.
이유를 들어보니,
정말로 알아봐야 할 때는 검은부품에 써인 글씨도 잘 보면 보인다는 것이다.
아무리 어설프게 썼어도
자기 거는 자기가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검은 부품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방금 이름을 썼는데, 어디에 쓴 건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빛을 기울여 보고, 손으로 각도를 바꿔 보니 그제야 희미하게 글자가 드러났다.
아, 이런 식으로 남는 거구나 싶었다.
보이진 않지만, 없어진 건 아닌 상태로.
처음에는 언제 다 하나 싶던 작업이었지만, 하나씩 하다 보니 결국 끝이 났다.
3. 그리고 그 흔적들은 필요할 때 결국 제 역할을 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티가 나지 않아도, 분명 어딘가에 남아 있으니까.
나중에 수업시간이 되어 친구들에게 이름 잘썼다는 이야기 듣고 아들은 우쭐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