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존도가 높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좀처럼 친해지기 쉽지 않지만,
한 번 소중한 인연이 되면 감정적으로 의존하고 어떻게든 이어가려고 한다.
매번 만족을 모르는 지인이 있다.
그 사람은 자기 연민이 끊이지 않는다.
어쩐지 안타까워져 조금이라도 나은 상황을 만들어주고 싶다.
이 관계가 이어진 이유는 내 미련. 의존 때문이다.
어차피 이 친구 아니면 다른 친구도 별로 없으니까.
그리고 아주 가끔씩은 내가 힘들 때 재밌는 대화를 나누며 위로 받은 적도 있으니까.
나는 왜 그렇게까지 잘해주고 싶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 사람이 힘들어 보였고, 내가 조금만 더 신경 쓰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먼저 연락을 했고, 길게 들어줬고, 별거 아닌 말에도 반응을 크게 해줬다.
필요하다고 하면 시간을 내줬고, 기분이 가라앉지 않도록 괜히 더 밝게 굴었다.
가끔씩 나한테 잘해주기도 했다.
그것이 나의 상황에 맞춰서가 아니라
본인의 감정에 포인트가 맞춰져 내켜야 한다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
나는 힘든 상황이어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어도 예전에 본인이 잘해준 일을 계속 얘기하고 다녔고,
내가 이 정도로 하니 고마운 줄 알아. 라고 하니 정말 그렇게 믿어졌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다 말로라도 고맙다고 해주는 사람이 나는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나는 작은 한마디에도 위로받곤 했지만 그 쪽은 전혀 아니다.
내가 받은 만큼 이상의 몇 곱절을 줘도 항상 마음에 구멍이 뚫린 듯 성에 차지 않아 한다.
그리고 말한다.
고마워. 근데 너는 나보다 상황이 나으니까.
너는 그런 수준에도 만족할 줄 아는 애니까.
너는 대단하다. 나라면 그렇게 못 살텐데.
예전에는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더 잘해줘서 그의 마음이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랐는데,
한참이 지나서야 그것이 잘못된 관계임을 알았다.
내가 아무리 더 노력해도 이 관계는 나아지지 않는다.
그는 앞으로도 만족을 모를 것이고 고맙지 않을 것이고 안타깝게도 기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진짜 너무 늦게 깨달았다.
왜냐면, 나는 사람이 다 비슷한 감정선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사람도 있다는 걸 생각조차 못했다.
한 때는 정말 즐거웠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런 때로 다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건 그냥 나랑 덜 친해서 그런 거였다.
거리감이 있는 사람과는 엄청 나이스한 모습으로 최고의 지인이 된다.
하지만 지금의 나와는 너무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더이상 체면을 차릴 필요도 없다.
이 관계가 이어진 이유는 오로지 내 미련 때문이다.
한번씩 연락이 온다.
그가 필요할 때만 계속해서 구구절절 연락이 오는데
그러면 나는 또 이 친구가 나를 생각하고 있었구나.
말은 안해도 내심 느끼는 바가 많았구나 하고 멋대로 생각한다.
왜 나는 그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해석해주는 거지?
지인은 말끝에 그래도 너밖에 없다라고 한다.
그래서 뭔가 더 내가 해주고 싶어진다. 책임을 느낀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한 거 한 가지.
정말 나밖에 없는 게 아니다.
지금 받아주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거고 내가 그만두면 다른 지인을 금방 찾아낼 것이다.
내가 아니면 누가. 라는 마음이 나를 한 번 더 붙잡지만,
사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기 때문에
나의 유뮤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하다고 느끼면 그건 내 자의식 과잉이다.
그는 더 이상 고맙지 않다.
아니 처음부터 한 번도 고마웠던 적이 없다.
그냥 내가 편했고 필요했을 뿐.
결론은 이거다. 이런 지인을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나에게 가까운 존재여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투자했던 내 시간과 마음과 정성이 날아가는 것이 너무 아깝다.
솔직히 포기 못할 정도로 너무너무 아깝다... 하지만.
아깝다는 이유로 계속 쥐고 있기엔,
나는 이미 너무 많이 닳아버렸다.
더 이상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
여전히 친구는 별로 없지만. 차라리 나에게 시간을 돌려주는 편이 낫겠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내 몫이다.
이제는 넘기자.
내가 아니어도 그 자리는 다른 사람이 채울테니 나는 이만하면 됐다.
시절인연이다.
그 인연이 이어진 동안 나는 그저 최선의 마음을 다했을 뿐이라고 여기고,
이제는 이 생각에서조차 벗어나 애쓰지 않아도 되는 쪽으로 가보려고 한다.
내가 바보같아 억울한 마음이 치밀 때도 있지만.
(배경사진 출처 - Unsplash의 casey-hor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