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7분이면 그냥 10시까지 미뤄버리는 나

by Ms 윤

새해가 되어도 더 이상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다.

지키지도 못하는데 은근히 부담은 되어서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달쯤 지나고 나니 올 한 해 진짜 이대로 가버릴 것 같다.

아니지. 꼭 필요한 일만 처리하는데도 너무 바빠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나만 나이 들고 소진될 것 같다는 표현이 맞다.



왜 이렇게 바쁘고 왜 이렇게 남는 게 없지?


일단 내가 원하는 상태는 이런 것이다.

새해가 되었으니 한시간 정도는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시간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이는 감성충전이든 나를 위한 소중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재충전의 시간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기력을 회복한 후에,

나머지 시간은 열심히 하루치의 노동에 전념한다.



하지만 현재의 상태는 이렇다.

내가 쓸 수 있는 자투리 시간은 보통 덩어리가 아닌 자투리로 이루어진다.

현실적인 단위는 7분, 10분, 길어야 15~30분이다. (일정하지도 않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때의 나는 지쳐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멍한 표정으로 짬짬이 핸드폰을 보면서 충전한다. (아니. 빠르게 방전되고 있는 것 같다.)



얼음도 덩어리보다 잘게 쪼개진 것들이 빨리 녹듯이,

내 시간도 잘게 쪼개져 가속도로 녹아 내린다.



시간이 1시간 단위로 흐르는 것보다

30분 15분 단위로 흐르는 게 더 빠르고 무섭다.

1시간은 그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거나 일을 시작해서 중간까지는 갈 수 있다.



그런데 15분은 다르다.

뭘 하기엔 애매하고, 푹 쉬기엔 너무 짧다.

문제는 이 순간들이 연속으로 쌓일 때마다 “조금 있다가 하자”라는 말이 반복되고,

“이따가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 하루를 점령한다는 것이다.

집중도, 휴식도, 몰입도 않은 시간들이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출처 - 챗지피티로 그림



일을 미루게 만드는 뫼비우스의 계단


내가 유독 공감하는 그림이 하나 있다. 일을 미루게 만드는 뫼비우스의 계단이다.

그것은 시간에 대한 이상한 강박이 작용하는 계단이다.

9시 정각에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9시 7분이 된다.

깔끔하게 30분에 시작하자고 생각하고 잠시 쉬었다 시계를 보면 38분이다.

뭔가 애매해서 완벽하게 10시에 시작하자 마음먹고 보면 다시 10시 7분이 되어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뫼비우스의 계단은 끝이 없고 나름대로 일정하다.

늘 지금이 아닌 조금 이따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왜 그럴까? 문제는 이 짧은 순간들이 거대한 인생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 정각 강박은 1월이라는 달을 만나면 더욱 대담해진다.

1월 1일에 세웠던 작심삼일의 계획들이 20일쯤 지나 흐지부지된 걸 발견하면,

마음 속엔 ‘숫자 결벽증’이 다시 도진다.

‘이미 1월은 지났어. 차라리 2월 1일부터 새사람이 되자’는 유혹이다.

정각에서 30분으로 미루던 습관이, 이제는 1월에서 2월로, 올해에서 내년으로 덩치를 키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새출발 효과(Fresh Start Effect)라고 부른다는데,

내게는 그저 완벽한 시작을 꿈꾸며 현재의 시작을 짓밟는 고도의 수법일 뿐이다.

사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정각에 집착하는 이유는, 정각이 되기 전까지의 그 어정쩡한 시간을 ‘책임감 없이 놀아도 되는 면죄부’로 쓰고 싶기 때문이다.



뫼비우스를 계단을 부수는 유일한 방법은,

가장 어정쩡한 숫자의 순간에 그냥 발을 내딛는 것뿐이라는 걸 알면서.



지금 이 계속되는 뫼비우스의 계단을 버티고 있으면,

미래에는 정말 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퉁퉁한 치약같은 통덩어리의 시간이 올까?



내 시간을 컨트롤하고 싶은 마음


시간은 대개 깔끔하고 산뜻하게 흐르지 않는다.

그리고 내 의지대로 자유롭게만 살 수는 없기에 항상 정해진 타임라인이 있다.



가장 힘든 것은 내 시간을 내가 쓰는 게 아니라,
계속 끌려다니고 있다는 감각이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시간에 붙잡혀 다니는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지치게 한다.



내가 원하는 건 거창한 통제나 완벽한 루틴이 아니다.
아주 잠깐이라도
‘이 시간은 내가 쓰고 있다’는 통제감이다.



그래서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본다.



첫째, 주어진 시간에는 딱 한 가지만 한다.
15분이면 15분치 일만, 10분이면 10분 동안 할 수 있는 것만.
집중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흩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둘째, 정각을 시작의 기준이 아니라 마침의 기준으로 삼는다.
정각에 뭔가를 시작하지 못했다고 하루를 버리는 대신,
정각까지 무엇을 했는지를 기준으로 시간을 닫는다.
시작을 미루는 숫자가 아니라,
마무리를 가능하게 하는 숫자로 시간을 다시 쓴다.



셋째, 가끔은 시간을 통으로 쓰는 날을 만든다.
매일이 아니라, 일부러 비워둔 날에.
잘게 부서진 시간 속에서 주워 모은 생각과 자료들을 한 번에 꿰어내는 날이다.
구슬은 미리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고,
꿰는 일은 반드시 한 번에 해야 하니까.



비누 뭉티기처럼, 슬러시처럼.
조각난 시간은 형태가 없지만 모이면 분명한 무게를 가진다.



출처 - 챗지피티로 그림



끝내 아무것도 안 한 날은 또 아니었다


아마도 나는
시간을 완전히 내 뜻대로 쓰는 사람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여전히 하루는 7분 단위로 쪼개질 것이고,
끝없이 쏟아지는 마감시간은 계속 나를 시험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한다.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건
모든 시간을 통제하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엉망진창인 시간 속에서도
가끔은 “그래,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어차피 내 하루는
정각에 시작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도 이상하게,
끝내 아무것도 안 한 날은 또 아니었다.


어차피 내 시간은
정각에 오지 않는다.
대신 늘 이렇게,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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