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이라인과 서울로를 비교하는 것은 꽤 무리가 따르는 것 같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불공평하다. 서울로에게 훨씬 불리한 조건이다.
일단 고가도로와 철길의 문제다. 고가도로는 철길에 비해 가로 폭이 훨씬 넓다. 폭이 좁은 길이 더 페널티가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명확한 프로그램이 없는 공중 보도는 규모가 크면 클수록 황량해지기 마련이다. 폭이 2미터 남짓한 보도와 양 옆의 화단으로 구성된 하이라인은 딱 ‘걷기에’ 적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에 비해 서울로는 ‘여길 걷기만 한다고..?’의 의문을 자아낼 만한 가로폭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는 건물의 밀도와 도시계획이다. 하이라인의 주변은 훨씬 더 빽빽한 밀도를 가지고 있다. 열 걸음만 움직여도 각기 다른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눈을 한 순간도 쉴 수 없다. 혼자 걸어도 이 정도인데 일행과 도란도란 이야길 하며 하이라인을 걷는 다면 정신 차려 보면 풍경이 바뀌어 있는 독특한 경험이 가능하다. 또한 맨해튼은 격자형의 도시계획을 하고 있다. 때문에 하이라인을 걸으면 건물 - 도로 - 건물의 구성이 반복되는데 도로의 경우에 시야가 끝도 없이 확장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다채로운 건물을 보다가 일순 나타나는 도로 저편의 모습은 그야말로 다이나믹이다. 자동차와 사람이 이동하고 도시가 약동하는 모습이 내 발아래에서 지평선 끝까지 보이는 것이다.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에 비해 서울로는 훨씬 떨어지는 건물 밀도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굽이치는 것 같은 골목길을 위에 놓여있다. 내 시야와 나란하지 않은 골목길은 길 자체가 주는 매력은 높지만 평행한 길에 비해서는 눈 안에 들어오는 것이 상대적으로 적다. 즉 경험할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이 좀... 단편적이다..라고 느껴진다.
세 번째는 교통 상황이다. 맨해튼의 교통상황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귀가 떨어질 것 같은 클락션 소리를 견뎌야 하고 두 블록에 하나씩은 있는 공사장을 피해, 신호를 위반하는 차를 항상 경계하며 걸어야 한다. 하이라인은 이 모든 것들로부터의 해방이다. 이것이 주는 평화는 상당하다. 보행환경이 좋지 않은 도시라는 것이 하이라인에게는 이점으로 작용한다. 그 복잡한 것들로부터 상승하여 오직 사람과 반려동물만이 있는, 양 옆에 화단을 두고 걸을 수 있는 길. 특별한 프로그램 없이도 하이라인이 맨해튼 시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이유라 생각된다.
나머지는 부차적인 문제라 생각된다. 하이라인은 만들어진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건물들이 하이라인을 염두에 두고 입면을 계획한다던가 하이라인의 노드점들에 유명한 파빌리온이 생겨난다던가 하는 것은 서울로도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문제 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설계 얘기를 하지 않을 순 없다. 위니 마스가 서울의 기후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서울의 한 여름은 그야말로 한증막이다. 습도와 온도가 모두 높은 서울은 장마기간 또한 가지고 있다. 비를 피하고, 더위를 피할 수단을 갖추어야 했다. 또한 고가도로라는 시멘트 길의 지면 온도를 낮출 방안을 계획해야 했다. 하이라인에서 부분적으로 페이빙이 다르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부분적으로 철길을 그대로 두고 그 레벨은 흙을 촘촘히 깔아 식물을 심고 보행로를 약간 띄운 것이다. 보행로의 바닥은 얇은 철판을 세워 앵커링 한 것으로 흙길이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쉴 새 없이 바람이 드나들어 온도가 적절하게 유지된다. 시멘트 바닥인 서울로에서도 이러한 고려가 필요하다 생각된다. 뭐 개인적으로 서울로의 동그라미 일색의 화분들도 이상하다 생각하지만 이건 취향 문제라 차치하고.
서울로가 가진 장점 또한 있다. 서울로는 서울에서 위계가 가장 높은 길 중 하나인 퇴계로를 따라 나있다. 모빌리티가 가지는 역동성은 서울로에서 더 극적일 수 있다. 또 가로폭이 넓기 때문에 더 여유로운 것은 있다. 하이라인은 다소 사람이 빽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