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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r 04. 2020

영화 두 교황, 코로나 사태와 한국 교회에 던진 화두

[영화 리뷰] 두 교황(The Two Popes)

시장에 들기름을 짜러 가서 어떤 상인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는 곡물과 농산물을 납품하는 중간도매상인 듯 싶었다. 그는, 앞으로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돈을 주체할 수 없이 더 벌어들일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 종일 고된 노동에 시달려도 그 가난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시장에서 , 상인에게서 듣는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고찰은 가볍게 흘려지지 않았다. 이제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불평등에 관한 인식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그 인식의 저변이 넓어져서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만연해 있다는 것과 사람들 모두 그런 생각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이 무서웠다. 그렇게 널리 퍼진 사람들의 인식은, 불평등의 문제가 해결 불가능한 일로, 부정적으로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고, 뿌리는 더 단단해지고 있다는 생각에 더 두려웠고 공포스러웠다.


영화 <두 교황(The Two Popes)>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도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독재는 탄압일 뿐 아니라 억압이며 공포입니다. 불공정한 경제구조의 횡포는 엄청난 불평등을 만들어 내고 있어요. 세계 인구의 단 20%가, 빈곤 국가와 미래 세대가 생존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강탈하는 수준으로 소비하고 있습니다.


전에 읽은 책 <경제적 공포(비비안느 포레스테)>에서 "죽음의 순간까지 빈곤이나 혹은 빈곤이 바로 코앞까지 가져다 놓은 위협과 동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뿐만 아니라 비를 피할 수 있는 집마저 빼앗기고, 사회의 관심조차 잃어버리고, 스스로를 배려할 여유마저 박탈당하는 참담한 상황과도 맞닥뜨려야 한다"는 경고를 만난 적이 있다. 모두가 불평등을 알고 있지만 누구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미 해결할 수 없도록 멀리 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해결의 희망마저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외출이 이전처럼 자유롭지 않고, 모임도 모두 취소되었다.  도서관도 휴관 상태를 이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가족은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공부하거나 잠깐 동안만 외출하거나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행동반경이 제한된 상황에서 시간 죽이기의 새로운 대안으로 나는 넷플릭스를 선택했고, 영화관에서 즐기지 못하는 것들을 하나씩 고르는 중에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두 교황>을 보게 되었다.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교황의 자리가 주는 무게를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다. 신에 대하여, 인간에 대하여, 관용과 나눔에 대하여 뿐만 아니라, 독재에 대하여, 불평등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끊임없이 신과 소통하고 응답을 얻는 성직자의 모습이 깊은 울림을 주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인간 생명의 가치를 보호하고자 경계를 분명히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배타적이고 돈을 우상화하는 불평등한 경제에 외쳐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경제적 살인에 관한 외침은 한국 교회에 말하는 경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교회는 이미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라고 말할 수 없다. 한국 교회는 권력화 되어 있고, 그들은 부를 축적하고 그것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권력과 결탁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대중에게 보란 듯이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하고, 교단이나 권력은 그들의 편에서 법과 여론을 형성한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보며,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라'는 말을 경제적 살인을 자행하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로 바꾸는 교황의 모습에서 진정한 종교인의 역할과 참된 종교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19의 확산 원인이 '신천지'로 인해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으며 '심각'단계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또 그들의 교리와 포교의 방식, 코로나 19에 대응하는 그들의 태도는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모습이다. 국가적 재난의 수준까지 몰아넣은 그들의 잘못의 크기에 비해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모습이나 사태의 수습을 위한 협력이라는 것은 종교집단은 고사하고 상식 있는 집단의 행동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에 오르고 난 이후 파격 행보를 이어간다. 세계 여러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 소외받는 사람들, 약자를 만나며 그들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고 그들의 편에 선다.


모든 공동체는 가난한 자들의 해방과 옹호를 위해서 장벽이 아니라 다리를 지어라.


공동체의 가치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소통과 통합이 필요하다. 개별화되고 개인화된 사회에서는 공동체적 가치를 이해하는 것도 실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구성원끼리, 단체끼리 더 단단하게 결속하고 그들만의 세상을 만든다. ‘신천지’에서 보듯, 더 높고 더 견고한 장벽을 세우고 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단단한 "장벽이 아니라 다리다". 팔레스타인 장벽에 쓰여 있는 글귀를 가지고 교황은 통합과 소통을 이야기하고 가난한 자들의 해방과 돌봄을 말한다.


약국에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왜 서있는지 궁금하여 줄을 따라가니 약국 문 앞에 마스크 판매 팻말이 붙어 있다. '(오후) 7시 40분부터 30명에게 5매씩, 7천 원에 판매'. 마스크를 사기 위해 내가 그곳을 지나던 시간이 판매 2시간 전, 이미 30명은 서 있는 것 같다. 아침에 방송에서, 마스크의 공급량을 계산해 보았을 때 시중에 내놓은 양이 이미 상당하고 따라서 마스크를 사지 못해 품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진행자는 말한다.


우리 집에도 남은 마스크가 없다. 마스크를 살 수가 없으니 방한용 마스크 몇 개를 빨아가며 사용하고 있다. 이게 바이러스 퇴치의 효용이 있는지 없는지는 다음 문제다.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장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따가운 시선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마스크를 착용해야만 하고, 그럴 때를 대비해 준비해두는 것이다.


자신을 벗어나서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기가 어려울 때도 있지.


줄을 선 사람들 중에는 당장 사용할 것만이 아니라 내일 쓸 것도, 모레 것도, 가족들 모두가 사용할 것도 사야 하고, 이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니 수고하는 김에 더 많이 장만해두려는 생각일 수도 있다. 평범한 사람이 자신을 벗어나서 이타적이기는 어렵다. 교황이 되는 분도 이렇게 말하는데 하물며 평범한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삶은 출렁인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를 맞으면서도 생각한다. 살아가다 보면 새로운 물결이 다가오고 그 물결에 휩쓸려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요행히 안전한 배를 타고 위기를 넘길 수도 있다. 간신히 위기를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삶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잠시 행복하기도 하고, 잠시 고통스럽기도 하다. 인생은 고요하지 않다.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사람들에게는 전투적이며 역동적인 힘이 솟는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살아남은 이후라야 가능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젊은 시절 아르헨티나 군부 쿠데타에 협력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가까운 사람들을 지키지도 군부독재에 맞서지도 못했다. 자신이 행한 잘못된 행동과 그로 인한 가까운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안고 살아온 삶을 베네딕토 16세에게 고백하지만, 베네딕토 교황은 더 이상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이유로 사임하고 그는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된다.


이전의 잘못을 고백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저지릅니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건 신의 영역이다. 어쩌면 신 또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까. 신이기 때문에 누구도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단죄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시작이 있고 원인이 있다. 그것을 밝히지 못하거나 밝히지 않거나, 누구도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고 회피한다. 그렇다면 벌어진 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잘못의 수습은 누구의 몫일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면 모두의 잘못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다면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불평등에 대해서도, 사회적 재난에 대해서도. 모두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지 살아남았다면, 이제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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