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머니가 빨래를 삶을 때, 비눗방울이 퐁퐁 튀어 오르며 가스레인지 주변으로 온통 비눗물이 튀고, 심지어 바닥에 까지 튀어 닦아내야 하는 그것이 그때는 싫었다. 스텐 대야를 불에 올리고 오래 삶아야 한다고 그대로 두라고 하면 비눗방울이 퐁퐁 튀기도 전에 나는 그대로 가스불을 잠갔다. 옆에서 지키며 뒤적뒤적 안과 밖의 것을 바꾸어주는 그 수고가 귀찮았고 지켜보는 것이 지루했다. 빨래를 삶는 것의 효용은 물론 그 묘미도 모르던 때였다.
특별히 세제가 좋았던 것도 아니고 섬유유연제나 향수가 흔한 시절도 아니었으니 빨랫감에서 나는 땀냄새를 바꾸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자주, 여러 종류의 빨래를 삶으셨다. 이불 홑청을 바꾸고 빨고 삶고 풀먹이고 다림질하고 바느질까지 해야 하는 그 과정을, 대식구의 이부자리를 모두 그렇게 하셨다. 옆에서 보기만 했는데도 그것도 귀찮고 싫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하루걸러 빨래를 삶는다. 물론 무더운 날씨 때문이다. 어머니처럼 여러 종류를 삶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수건과 솟옷만 삶는다. 커다란 들통이 불위에 올리고 빨래가 삶아지는 아침을 연다. 하얗고 노랗고 파란 수건과 속옷들이 들통 속에서 폭폭 비눗방울을 머금었다가 내뿜기를 반복한다. 푹푹 소리가 나며 바쁜 김을 뿜어내고 실내 전체를 온통 후끈하고도 상쾌한 향으로 덮는다. 들통을 불에서 내린다.
빨래를 삶을 때 세제가 옷 속으로 스미고 다시 뿜어져 나오고 할 때의 향이 기분을 좋아지게 한다. 그냥 그대로 얼굴을 파묻어도 될 것 같은, 뜨거운 스팀 타월을 얼굴에 가까이 하기 직전의 보송한 느낌이 나를 사로잡는다. 푹푹 끓이는 것만으로 섬유들은 새것보다 더 좋은 색감을 입는다.
날이 습할 때는, 세제와 물이 하나가 되어 증기로 뿜어 나오는 그 향기가 기존의 습기의 무겁고 눅눅한 색깔을 바꾸어 놓는다. 맑은 날에는, 높은 기온과 뜨거운 바람이 뿜어내는 먼지 냄새가 순식간에 자연산 향수를 적당히 뿌려 놓은 실내로 바꾼다. 그래서 아무 날에나 열심히 빨래를 삶는다.
삶아진 것들을 세탁기에 돌려 탈수까지 마치면 마구 뭉친 빨랫감들을 공기 중에 탁탁 턴다. 그때마다 분무기에서 물이 뿜어지는 것처럼 물 분자가 흩어진다. 빨래한 것을 펼치고 옷걸이에 가지런히 거는 동안에도 섬유속 비누향이 은은하게 나온다. 덩달아 좋은 기분도 계속 유지된다. 옷걸이에 정리하고 베란다로 가져가 나란히 걸어 놓으면 다시 그곳으로부터 바람을 타고 온 집안에 상쾌한 냄새가 퍼진다. 바람이 지나는 방마다 계속해서 깨끗한 공기로 바꿔주는 듯하다.
빨래 삶는 냄새는 쉽게 섬유유연제로 헹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치 새로운 비법의 향수를 개발한 것 같은 마법이다. 덕분에 삶는 빨래가 힘들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산에 오르면 같이가는 일행에게 매미 냄새나 풍뎅이 냄새가 난다는 말을 한다. 처음엔 뜨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의 냄새가 난다고? 실제 그 냄새가 그것들의 냄새인지는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산속에서의 미새한 생물의 냄새를 매미 냄새 풍뎅이 냄새라고 말한다. 이어 다른 것들의 냄새도 시간차로 다가온다. 흙냄새와 풀냄새, 나무 냄새, 이름 모를 열매들의 냄새도 난다.
길을 걷다 보면 시멘트 바닥에서의 횟가루 냄새와 폐타이어를 이용해 포장해 놓은 자전거 길에서 고무 타는 냄새도 난다. 흩날리는 먼지 냄새와 운동기구에서 나는 쇠의 냄새도 맡아 진다.
산과 들, 자연의 냄새가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수히 많은 것들의 냄새 가운데 빨래 삶는 냄새가 단연 최고다.
자연에서는 풀과 나무, 꽃 등 좋은 향과 함께 다른 것의 냄새도 후각을 자극한다. 여러 가지의 것들이 뿜어내는 각각의 냄새가 조화롭게 느껴지지 않고 각각 다른 느낌으로 나를 건드린다. 좋은 것을 따라오는 안 좋은 냄새는 좋은 것이 만들어 준 상쾌함을 급하게 사라지게 만든다. 좋지 않은 것이 좋은 것을 잠식하는 경우다. 밖에서는 어느 하나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거기에 시각이 더해진다. 풀도 꽃도 나무도 열매도 보이지만 다른 것들도 많이 보인다. 곤충이나 자잘한 이름 모르는 생명들. 따라오고 살갗에 붙어 따끔거리게 하는 그것들을 경계하기 때문에 좋을 것을 즐기다가도 그것들을 마주할 때면 좋았던 기분이 싸늘해진다. 경계하는 마음으로 만나는 상쾌함은, 마음껏 즐기기 어렵다. 산에 오르는 쾌감과 그곳에서 만나는 좋은 기운들이 마냥 좋게 즐길 수 없는 이유다. 후각과 시각이 만나면,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감이 된다.
그러나 집에서는, 다른 감각을 닫고 후각에 집중할 수 있다. 불안하고 경계할 것이 없으니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감각을 향해 집중한다. 아침 일찍부터 삶는 이 향기가 집안을 오래 깨끗하게 해 줄 거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들통 안의 빨래를 뒤적인다.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빨래 향과 집안에 퍼지도록 뚜껑을 열어 증기가 퍼지게 한다. 어느새 공기는 빨래 삶는 향으로 가득 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