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개정교육과정이 시행되던 2009년, 새 교과서 소단원에서 이중섭 평전을 만났다. 정확히는 그 평전의 저자의 이름을 만났다. 아는 이름이었다. 이름의 주인이 내가 아는 그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몇 번의 검색을 통해 기억의 퍼즐을 맞추듯 이름의 주인을 확인하였고 휴대전화 주소록에 지워지지 않은 이름 중에서 한 명을 찾아냈다. 며칠을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저자의 누이, 나의 선생님. 학창시절 서울 변두리 가난한 교회의 중등부 전도사님.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오랜 세월을 마치 어제처럼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금은 교수님으로 불리는 그분의 소식도 들었다. 통화 끄트머리에 꼭 한번 보자는 수식어를 덧붙이며 통화는 종료되었다.
방 한 칸에 부엌이랄 것도 없는 여유 공간 조금. 알루미늄 문틀에 물결무늬의 불투명한 유리창이 끼워진 현관문이 그 집에 들어오는 유일한 입구인 단칸방. 지금 생각하면 보잘것없는 그곳이 내게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남아있는 것은 책 때문이었다. 네모난 방. 네 벽에 빙 둘러있는 책장. 단칸방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크게 생각되던 방은 사방에 책장이 빼곡히 둘러있었고 촘촘하게 책이 꽂혀 있었다. 세로줄로 꼽힌 책장 앞으로 다시 가로줄로 나란히 늘어서 차곡차곡, 이중 주차된 책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통제된 불규칙함. 책은 자기 자리를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방은 단정해 보였다.
당시로써는 드물게 석사 논문 준비 중인 국문학자의 연구 자료들은 나름의 배열에 따라 한 자리씩 뭉텅이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학자의 연구실 겸 서재이며 가족의 내밀한 공간인 그곳 단칸방을 맞는 이도 민망해하지 않았고 찾는 이도 민폐로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나 사는 것이 그러하던 시절이었다. 매일 그곳을 찾았고 서로가 편했다. 그곳에서 강렬하게 나를 유혹한 것은 책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강한 이끌림이었다. 책이 벽이 되어버린 상황에 압도당했고 수많은 책에 주눅 들었다. 읽어 본 책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나는 행복했다. 오래된 책에서 뿜어 나오는 냄새에 정신없이 취했고 그 쿰쿰함이 향기로웠다.
방 한가운데 앉으면 책들이 어지럽게 소용돌이치고 폭포수처럼 넘쳤다. 그 방은 단번에 나의 로망이 되었다. 무엇보다 누구도 볼 수 없게 단단한 책 껍데기에 들어있어 인정할 수 없는 권위를 저 홀로 뽐내는 양장본이 아니어서 더 좋았다. 첫 장을 열면 ‘누구누구에게 드립니다’로 공손하게 시작되는 그 문구도 부러웠다. 책에 욕심을 갖게 된 시작이었다. 젊은 학자는 수입의 20퍼센트를 책 사는데 쓴다고 했다. 실제 수입은 많지 않아 살 수 있는 건 얼마 안 된다고도 했다. 그래도 돈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서점으로 달려간다는 이름 없는 시인이며 평론가이자 대학 강사인 그의 말은 낯선 세계였고 날카로운 충격이었다.
시간이 흘러 처음으로 돈을 벌게 되었을 때 그와 같은 비율만큼의 비용으로 책을 샀다. 수입은 적었고 그의 말대로 책은 몇 권 안 되었다. 사회 초년생의 쓸 곳은 많았고 돈은 항상 부족했다. 그렇게 두세 달, 하다 보니 계속하기 어려웠고 그만하고 싶었다. 일정한 비율만큼 책을 사는 것은 바로 그만두었고 이후 생각나면 서점에 갔고, 몇 권씩 사며 나의 책 욕심은 색이 연해졌다.
몇 년 쉬고 두 번째 직업을 갖게 되었을 때, 다시 수입의 일정 부분을 떼어 책을 샀다. 규칙적으로 사는 건 서너 달 정도, 다시 띄엄띄엄 책을 사들였다. 이런 어설픈 수집벽 덕에 꽤 많은 책을 모을 수 있었다. 사 면의 벽을 가릴 수는 없었지만.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가 많았다.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떻게 읽는지, 정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책에서 무얼 찾아야 하는지,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물어올 때면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던 그때 그 방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수입의 20퍼센트는 책을 사려고 해.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할 책, 제목이 멋진 책, 표지 디자인이 있어 보이는 책. 내가 고르는 책들이야."
멋으로 산 책은 책장에서 오래오래 자신의 멋을 뽐냈다. 눈을 스치다 잠깐 언뜻 보아도 흐뭇했다. 제목이 멋진 책은 좀 달랐다. 책을 읽기도 읽지 않기도 했다. 두 경우 모두 검색을 통해 줄거리와 작가를 정리해서 기억했고, 그 얕은 지식을 가지고도 어디서든 아는 체할 수 있었다. 지적 허영이었다. 그런 허영은 꼭 필요한 순간이 있었다. 읽고 싶은 책은 읽고 난 후 다른 이에게 추천의 말과 함께 선물해 주었다. 주로 아이들에게 주었고 교육이란 목적보다는 마음이었다. 읽어야 할 책은 목차와 필요한 부분을 중심으로 읽고 꼼꼼하게 정리하고, 그 후에는 그것들의 존재는 시야에서 멀어졌다. 당시 읽어야 할 책이었으니 시간이 지나며 없어도 찾지 않았고 그렇게 구석에 쌓아 두다 도서관으로 가곤 했다.
두서없이 던지는 쓸데없는 이야기에 아이들은 더 집중을 잘했다. 있어 보이는, 아는 체, 지적 허영, 수입의 20퍼센트, 거기에 추천 선물, 마음, 도서관까지 가면 약간의 탄성과 함께 아이들을 웃게 했다.
그 방에서 처음 꺼내 읽었던 책이 기억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조금 어려울 수도 있으나 중학생 수준에 읽기 좋은 책이라고 추천해 주었다. 처음 읽는 것 치고는 버거웠다. 그래도 무척 열심히, 읽기의 어려움을 감추며 읽었다. 읽다 옆길로 새고, 다시 읽다 이해가 안 가서 되돌아오고, 그렇게 끝까지 붙들고 있으니 중반 이후부터는 약간의 재미를 느끼며 어찌어찌 읽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읽고 책의 감상을 물어왔을 때 허무하게도 “재미있었어요” 한 마디였다. 짧은 감상이 부끄러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후 나는 『데미안』을 읽은 학생이었고, 사면을 책으로 채우고 그 속에 사는 꿈을 꾸었다. 국문과를 나오면 책과 함께할 수 있겠다 싶었고 국문과를 졸업했다.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쳤고 책의 즐거움을 이야기했다.
젊은 학자, 지금쯤은 깊어가는 중년의 자리에 있을 교수님과의 기억은 깊지 않다. 사십 년 가까이 지녀 온 그 강렬했던 책의 기억의 끝은, 그의 누이이며 내 선생님을 향해 있다. 마치 갚아야 될 빚처럼 지금까지 터트리지 못한 맵싸한 향기의 진한 여운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날의 상투적 약속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읽은 책과 쓰려고 하는 글의 모든 출발은 어쩌면 ‘단칸방’ 그곳에서의 기억들이 문 열어준 것은 아니었나 싶다. 글이 지난 나의 삶을 좀 더 품위 있게 만들어 줄 수 있게 되었을 때, 꼭 보자던 이전의 기약을 핑계로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