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한 것은 인천의 북성포구 장면에서였다. 얼마 전 다녀와서 눈에 익숙한 곳. 그곳을 걸으며 영화의 조직폭력배 씬이 나오면 적합할 것 같다고 했던 곳. 허름한 가건물 양쪽에 횟집이 늘어서 있었고 듬성듬성 문을 열어 손님을 맞았던 곳이었다. 배가 들어오면 배에서 바로 생선을 살 수도 있다고 해서, 물이 들어오고 배가 들어오기까지 서너 시간을 기다렸던 곳이었다.
"여기 영화에 딱 어울리는 장소다."
"좁은 길에 격투씬, 어둠을 뚫고 밝은 곳으로 나왔을 때, 치열한 사투의 흔적을 보여주기에 딱 적합할 것 같은데?"
영상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영화로 연출되기에 최적의 장소로 보이고, 선택을 망설이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우리끼리 얘기했던 장소는 영화에 그대로 나왔다. 지금 그곳에 다시 가면 영화의 촬영지라는 안내가 붙어 있을까.
누아르에서 나올 법한 좁은 길을 따라 늘어선 허름한 횟집. 너무 어두워서 환한 곳에서 사진을 찍었지만,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사진을 찍으면 어떨 것이다 상상했던 그대로 영화의 장면이 되었다. 어두운 미로의 터널 같은 곳. 오로지 한 가지 목적만을 가지고 미로의 세계를 향해 출발하는 다만 악이 등장하기 좋은 장소였다. 또한 단순한 목적만큼 복잡하지 않은 눈빛의 이정재(레이)에게 잘 어울리는 장소였다.
그곳에서 황정민(인남)은 연인이었던 최희서(영주)의 유골을 정리하고 딸을 찾아 방콕으로 출발한다. 이정재는 황정민의 자취를 따라서 인천에 왔고 방콕으로 황정민의 뒤를 따라갔다. 영화의 재미가 꼭 드라마적 요소, 캐릭터의 완벽한 구현이 아니어도 영상 한 곳에 내가 아는 곳, 내가 가본 곳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장소, 다른 출발. 복잡한 눈빛과 단순한 눈빛. 악인과 다만 악일 뿐인 자의 사투.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이후 <다만 악>)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는 악인들의 이야기다. 살인 청부업자면서 딸을 구하려는 남자와 형을 죽였다는 이유로 그와 그의 주변 인물 모두를 제거하려는 재일교포 범죄자의 추격전. 영화의 후반으로 가면 그 이유는 이미 사라지고 다만 악이 될 뿐이지만. 영화는 두 인물과 둘을 돕거나 방해하는 주변 인물을 배치해 사건을 전개한다.
황정민과 이정재 두 배우의 케미는 영화 <신세계>를 통해 익숙하다. 여기서는 대척점에 서 있다는 것이 <신세계>에서 보여준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둘의 연기 호흡이 화합이 아닌 대립을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했다. 거친 액션씬이 나오는 중에도 어색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황정민이라는 배우의 이미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베테랑>에서 거친 액션 연기를 소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만 악>에서의 액션이 전문가로서의 악인의 액션은 아닌 듯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역시 <베테랑>에서 보여주었던 정의의 사도의 이미지가 이 영화를 보면서도 겹쳐졌던 것 같다. 그가 하는 행위의 바탕이 선을 향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살인청부업자라는 악인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그를 응원하게 되었다.
인신매매 현장에서의 어린아이들을 구조하는 장면이나 장기를 떼어낸 아이에게 보내는 연민 어린 시선. 어린 딸을 지키겠다는 일념과, 무수한 사건을 겪으며 상처 입은 딸을 회복시키려는 노력. 그런 것들이 비록 악일 지라도 딸만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기도를 올리는 간절한 아버지의 이미지로 바꾸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반면 이정재의 액션은 그의 옷만큼이나 화려하다. 하얀 셔츠에 낭자한 피. 화려한 무늬의 셔츠를 통해 드러나는 맹수 같은 모습들이 배우와 잘 어울렸다. 다른 영화에서보다 구구절절한 대사도 없었다. 오히려 대사가 어색한 장면도 있을 정도로 그저 악을 구현하는 인물답게 행동으로 모든 것을 표현한 것이 깔끔하다고 느꼈다. 각종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복수의 대상인 황정민에게 다가가기까지 거침없는 직진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박소이(유민)를 트렁크에 싣고 가는 장면에서는 그의 행동이 다소 주춤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악'인데... 그럼에도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액션과 자동차 추격씬은 영화의 볼거리를 충족시켰다. 도시를 난장판으로 만드는데, 그곳이 또한 '악'이 활개치는 세상, 인간다움이 느껴지는 곳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의 시작이 아는 장소 때문에 반가웠고 몰입할 수 있었다면, 영화의 중반 이후는 박정민(유이)이란 배우의 연기 호흡을 따라가며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천연덕스럽고 자연스러우면서도 한 인물의 특성을 드러내는 데 충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흡이 느슨해질 순간이 없는 거친 액션이 계속되는 영화에서 잠시 숨 쉴 틈, 웃음을 제공해주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전혀 주목하지 않았던 배우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나올 때마다 관람석에서는 과한 액션에 긴장되었던 몸을 푸는 듯한 몸짓이 느껴졌다. 악인들이 활보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혼란만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혼란을 동시에 지닌 인물. 그 인물의 당황스러움을 표현하는 짧게 내뱉는 말들은 어쩌면 그 배우가 맡은 배역의 찰떡 같은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는 어린 딸 역할의 박소이(유민)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영화지만 스토리는 인간의 다양한 삶의 형태를 보여주지만, 납치, 인신매매, 청부살인, 어린이 장기밀매 등의 상황을 그리는 영화가 아이에게 괜찮을까 염려되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무표정이, 멍한 얼굴이, 돌봄을 받지 못한 작은 몸이 실제처럼 느껴졌고 영화가 관객에게 가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 포착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충분히 아이에 대한 마음치료를 제작진은 고민하고 병행했겠지만, 악은 선택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대한 연출진의 불가피한 선택과 고민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개연성은 영화에서 설명하지 않는다. 최희서와의 인연에 관한 회상 씬은 너무 간단해서 영상이 아닌 말로 대체되어도 될 것 같았다. 코로나를 겪으며 영화관에 발걸음을 못했던 시간에 비하면 새로 선보이는 <다만 악>은 충분히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