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 문자가 왔다. 남편이었다. 하던 일 마치고 집에 가서 밥을 먹겠다고 답했다. 톡이 울린다. "점심은?" 이번엔 딸이다. 다들 끼니를 걱정한다. 특히 요즘 들어 딸은 엄마의 끼니를 챙긴다. 아직 안 먹었다고 답하고 까르보 불닭면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도착할 시간에 맞춰 그것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은근히 표시했는데 찰떡 같이 알아듣는다.
지난번 딸이 해준 까르보 불닭면이 제법 맛있었다. 매운 불닭면을 가지고 매운맛은 덜하게, 생크림에 우유를 가미한 느끼한 맛이 싫지 않았다. 거기에 ‘남이 해준 음식’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오는 시간에 맞춰서 해주겠다고 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밥상 앞에서 느긋하게 음식을 기다린다. 주방은 분주하다. 베이컨 대신 햄을 잘라 넣고, 생크림 대신 우유를 듬뿍 넣은 까르보 불닭면이 완성됐다.
양은 하나인데 스파게티 면 삶듯 오래 삶았나 보다. 두께가 두 배. 양도 두 배다. 점심때가 지난 시각이니 집중해서 먹는다. 다른 날보다 더 느끼하고 양도 더 많다. 더운 날씨에 힘들어서 잘 못 먹는 것 같다며 천천히 먹으라고 말하고 선풍기도 돌려준다.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가끔 누리는 호사다.
이따금 딸은 음식을 하겠다고 나선다. 주방 기구를 총동원하고 냉장고에서 재료도 다 꺼내서 뚝딱거리며 한참을 부엌을 오간다. 주로 하는 것은 스파게티, 종류별로 돌아가며 만들고 가족들을 먹이는 재미를 들인 것 같다. 한식 파인 남편만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딸의 스파게티를 잘 먹는다. 남편이 없는 시간에 우리는 그렇게 딸의 요리를 맛본다. 들어가야 할 것이 골고루 들어가서 맛이 없을 수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하는 나와는 다르게 정석대로 요리를 한다.
스파게티는 딸이 자신 있어하는 메뉴다. 크림 파스타는 소스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맛을 내고, 로제 파스타에는 간 고기를 마늘, 양파와 볶아 넣어 풍미를 더하기도 한다. 부모의 눈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를 것 같은 노파심과 어설픈 손의 움직임을 보며 다칠까 염려되는 마음에 불안하지만, 열심히 만들고 제법 맛도 낸다.
요즘 감자 가격이 어때?
어떤 날은 뜬금없이 감자의 가격 변동을 묻는다. 올해 감자는 늘 비슷한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냥 쪄서 먹어도 맛있고 감자채 볶음, 감자조림, 감자전, 감잣국 등 음식의 주재료여도, 된장찌개에 다른 야채와 함께 넣어 끓여도 맛있어서 늘 부엌에 있는 식재료다.
다만, 나의 재료 선택 기준에 가장 중요한 것, 많이 비싸면 사지 않는다. 이 원칙을 알고 말하는 것 같아 뜨끔했지만 여전히 저렴하게 아직은 많이 나온다고 말해 준다. 올해 유독 고구마 가격이 비싸서 지난해처럼 박스 채로 사다 먹지를 못했다. 자잘한 것 몇 봉지를 사다 말다 했을 뿐이다. 지금도 여전히 고구마는 비싸서 같이 장에 갈 때 사지 않고 망설였던 것을 기억하고 하는 말이다.
감자 가격이 괜찮다고 하니 감자를 가지고 새로 생각해 둔 메뉴가 있다고 한다. 감자 피자란다. 그것을 해주겠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며칠이 지나 딸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든다. 한참을 뚝딱거린다. 모양도 크기도 다르게 채를 썰고 물에 담가 감자의 전분기를 뺐다. 기름을 두른 팬에 물기를 뺀 감자채를 넓게 펼쳐 얹었다. 거기에 소금 후추 간을 정당히 하고 감자의 색이 투명해질 때까지 약불에 굽는 것처럼 익힌다. 적당히 익으면 달걀을 풀어 그 위에 덮어주고 재료를 뒤집어서 익힌 후 그 위에 피자 소스를 듬뿍 바른다. 적당한 토핑 거리를 고민하다 마땅한 것이 없으니 그냥 치즈만 왕창 덮는다. 프라이팬 뚜껑을 덮고 치즈가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기다리니 감자 피자가 완성되었다.
말은 간단하지만 시간은 꽤 걸렸다. 힘들게 만든 음식이라 들인 시간만큼 의식을 갖춰 먹어야 할 것 같은데, 기다리다 지친 손길들이 바빠진다. 순식간에 음식은 사라졌는데, 맛의 평가는 간단했다.
괜찮아. 맛있네. 먹을 만 해.
이 정도의 평가로도 딸은 좋아한다. 과하지 않은 말투에 길들여져 이만해도 칭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먹방에서 하는 것 같은 디테일한 묘사가 없는 담백하고 건조한 평가지만 모두 만족했다는 것을 안다.
딸을 보며 지난날의 나를 돌아본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한 결혼. 혼수로 준비한 요리책을 꼼꼼히 보며 가족을 위한 집밥을 만들었다. 가끔은 특별한 음식도 하고 싶어 특별한 양념도 이것저것 샀지만 한 번의 요리실습으로 끝나고 버려지는 것도 많았다. 긴장하며 가족의 반응을 기다렸고 오랜 시간 준비한 요리가 잠깐만에 사라지는 것이 뿌듯했지만 과정은 힘들었고 결과는 허무하기도 했다. 매 끼니를 책임감으로 만드는 음식 만들기는 많이 힘들었다.
요즈음 신혼부부들은 서로의 역할을 바꾸기도 하는 것 같다. 부부가 같이 직장에 다니니 음식 만들기 좋아하는 남편이 저녁 준비를 하기도 하고, 일찍 퇴근하는 사람이 음식을 만들거나 요일을 정해 번갈아가며 만들기도 한다고 들었다. 나의 신혼시절과는 많이 달라진 세태다.
언젠가는 딸도 나름의 방식으로 살림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딸의 음식 만들기는 천천히 조금씩 즐겁게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매 끼니를 가족을 챙기기 위한 부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했으면 좋겠다. 되도록 잘 갖춰진 주방에서 한다면 더 좋을 것 같다.
맛은 아주 훌륭하지는 않았으면. 적당히 먹을 만하고 괜찮은 맛을 앞으로도 냈으면 싶다. 부엌에서의 삶도 다른 곳에서의 삶과 균등하게 '1/n'로 나눠지길. 매일을 부엌에서 매달리는 것이 아닌 상대가 깜짝 놀라 반길 만큼 아주 가끔 음식을 만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