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항에서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검색했더니 '곰치국'이 여럿 검색되었다. 이곳은 곰치국이 유명한 곳인 듯했다. 식당을 찾으러 가는 길,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곳에서 차를 멈췄다.
묵호항 활어센터였고 이른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곳으로 갔더니 촘촘히 앉아 회를 떠 주는 아주머니들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였다. 앞에 서서 기다리던 손님들이 차례로 커다란 봉지를 하나씩 받아 들고 차로 돌아가는 모습을 한참 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활기찬 아침을 여는 사람들의 부지런한 모습에서 생생한 삶의 현장이 주는 감동이 있었지만, 아침부터 회는 우리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곰치국을 파는 식당이 늘어선 곳에 도착했다. '원조'라고 표시된 식당에 들어섰고,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을 받았다. 목적이 곰치국, 자연스럽게 곰치국을 말했고 동시에 메뉴판에 적힌 가격이 눈에 들어왔다. 간단히 먹으려던 한 끼 식사로는 과하다고 생각되는 가격이었지만, 물리고 다시 일어설 수도 없어 어정쩡하게 그냥 앉아있었다. 당황스러운 가격이었는데 이미 앉았고 주문도 했고 음식은 빠르게 나왔다.
허연 것이 둥둥 떠 있는 중간에 김치가 드문드문 떠다니는 국. 딱히 곰치국이라는 이름이 없으면 그냥 여느 가정의 평범하게 끓인 국일 것 같은 모양새였다. 생선의 맛이라기보다는 동태보다 맛이 더 밋밋한 흰 살 생선에 김치 향이 더 진한 그 국을 한 사발 먹었다.
미련스럽게, 먹으면서도 가격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음의 소리가 시끄러운 만큼 입은 다물어졌다. 먹긴 먹었지만 애매한 느낌 때문에 맛을 즐기지도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곰치는 그때그때 시세가 달라 음식 값도 유동적이라고 했다. 우리가 간 날은 가격이 조금 더 비쌌던 것이었다. 이럴 땐 빨리 지우는 것이 상책이었다.
마음에 차는 음식으로 이전의 애매함을 만회하고 싶었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아침 식사로 지불한 금액이면 겁날 게 없을 것 같았다. 올라오는 길의 음식점을 찾다 '꼭 먹어야 할 음식 베스트 3'이라고 적힌 사이트를 검색했다. 부지런히 올라오면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점심으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쌀로 유명한 이천의 많은 쌀밥집 중 한 곳.
한정식 한상이었다. 기본 찬에 특별한 메뉴에 따라 음식값이 차이가 났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굴비정식. 아침보다는 만족스러웠다. 반찬도 여러 가지가 입맛에 맞았고 청국장찌개가 특히 맛이 있었다. 그 많은 반찬 중 청국장찌개, 이런 소박한 입맛이라니... '꼭 먹어야 할 음식 베스트 3'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침만큼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올라오느라 시간이 많이 걸려 때늦은 점심이기도 했고 시장 덕분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때마다 먹는 밥이지만 여행 중에는 기대했던 마음에 따라 음식을 먹은 후의 느낌이 다르다. 어떤 때는 선택이 후회스럽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만족스럽기도 하다. 후회도 만족도 없는 특별한 인상 없이 금방 잊히는 선택도 있다. 누군가는 여행은 곧 먹는 것이라고 말한다. 먹는 기쁨이 보는 기쁨의 감동을 더해주거나, 때로는 보는 기쁨을 대체하기도 하는 것이 먹는 기쁨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돌아온 이후 꽤 시간이 지났다. 다시 맛집이 그리워지는 때, 자주 갔던 가까운 식당으로 향했다. 늘 먹던 고등어 구이가 크게 한 마리, 껍데기까지 잘 씹히는 간장게장과 진한 국물의 성게 미역국까지. 다 먹고 난 밥상은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말 그대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빈 상이 남아 있었다. 너무 잘 먹은 우리에게 웃음이 나왔다.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지 않았으니 잘 먹고 환경도 지킨 셈 아닌가. 먹는 것에 너무 몰입한 것에 대한 민망함에 묻는 이도 없는데 급히 핑계를 떠올렸다. 배가 부르니 마음도 뿌듯했다.
여행을 하면 여러 가지가 기억에 남지만 맛있었던 음식의 기억은 더 오래가는 것 같다. 시각이나 청각, 촉각이 순간적이고 자극적이지만, 후각의 자극은 길게 여운을 이끈다. 좋았던 음식의 기억은 향으로 남는다. 코로나 상황에서, 여행 같지 않은 자잘한 여행이지만 새로운 맛을 향으로 채우고 있다. 다음 주, 혹은 다음 달에는 어느 곳의 밥상이 긴 여운을 가져다 줄지 벌써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