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참사가 벌어졌지만 학교는 이상하게도 조용하다. 검은 리본을 달고 들어갔지만 누구도 묻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얌전히 잠을 자는 학생과 옆 친구에게 계속 말을 걸며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도 눈에 들어왔다. 시작을 미루고 쳐다보면 눈치를 보며 조용해지기도 하지만, 교사의 시선에 전혀 개의치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런 학생을 만나면 갈등이 시작된다. 모른 척 수업을 진행할 것인지 아니면 수업을 멈추고 학생을 바로잡을 것인지. 대부분 한두 번 차분하게 얘기하고 그만두는 편이다. 한발 더 나가거나 끝까지 행동을 바로잡아 보겠다는 생각은 눌러 참는다. 경험을 통해 얻은 결과다.
그저 조용히 다가가 서로의 마음 상하지 않도록 제지하는 정도다. 시간은 되도록 짧게. 불편한 대화의 과정이 길어지면 수업의 흐름이 끊기게 되고 잘 듣던 학생들까지도 영향을 받는다. 진심을 담아 타이르는 것까지, 길어지면 수업도 학생지도도 놓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학급이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무질서해졌다면, 그것은 학생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야. 자네에게 교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그저 그곳이 부패한 독재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통제가 안 되는 것이지. 독재자가 이끄는 조직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네.(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극단적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지만 학기말이 되니 무질서한 학급이 느는 것 같다.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이런 상황을 학생의 문제도 교사의 자질 문제도 아니라고 말한다. 만족스러운 수업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과 학생 하나 어쩌지 못하는 교사가 된 것 같은 자괴감과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그만해야 하는지 고민은 개인의 몫이다.
그래도 학생들의 일탈을 팔짱 끼고 강 건너 물구경 하듯 할 수 없어서 부딪쳐 보지만 예상치 못한 반항을 만날 때도 있다. 그 과정에서 학생과의 힘겨루기는 교사에게 큰 상처로 돌아온다. 선생과 학생을 구분하고 도리를 따지는 대화는 옛날 얘기이거나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일 뿐이다.
칭찬도 하지 않고 야단도 치지 않는 교육, 자주성이라는 이름 아래 학생들을 방치하는 교육, 그런 것은 교육자로서의 직무를 유기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지난 금요일 서울 도심 궁궐로 체험학습을 갔다. 자유로운 복장으로 느긋하게 먼 길을 온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내가 담당하는 학급의 아이들 중 학생생활 교육위원회를 거쳐 징계를 받은 학생도 왔고 이성 친구와의 갈등으로 몇 달 전에 자퇴한 학생도 함께했다.
또 바로 전날까지 엄마에게 반항하며 자신의 요구조건을 관철시키기 위해 가출을 협박으로 내걸었던 학생도 체험학습에 참석했다. 그 학생의 요구조건은 집에서도 담배를 필 권리였다. 말이 안 되지만, 학생은 담배를 끊을 수 없었고 부모님은 적어도 집에서는 용납할 수 없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린 학생을 강제하니 마지막 수단이 가출이었다.
가출 후 하루 정도는 버릇을 바로잡는다고 부모도 모진 마음을 먹고 버텨보지만 이틀 삼일이 지나면 부모의 가슴은 애가 탄다. 학교로 친구 집으로 경찰서로 연락이 닿는 곳은 모두 수소문하며 학생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한다면 어떤 것이라도 수용할 마음을 먹게 된다. 그렇게 체험학습 전날 집으로 들어간 학생은 해맑은 얼굴로 체험학습에 참여했다. 아이들에게 특별하지 않은 가출이 부모에게는 극약처방과 같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 조선시대 왕실 골칫거리인 사고뭉치 왕자들을 왕세자로 만들어야 하는 극한 중전의 분투기를 다룬 드라마 <슈룹>을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다. 역사 왜곡이나 중국풍이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역할의 배우 김혜수(중전 화령 분)의 연기는 빛을 발한다.
화령의 네 아들들은 서로 간에 우애는 두텁지만 공부에는 영 흥미가 없고 철부지의 모습이다. 다소 통제가 안 되는 것 같은 네 명의 왕자들을 이끄는 방법은 어머니의 사랑과 존중이었다. 사랑과 존중은 성 정체성을 인정하며 품어주기도 하고, 궁궐 밖에서 오랜 시간 떨어져 살아야 했던 아들이 다시 궐 밖으로 나가겠다고 했을 때 아들의 마음을 돌리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교사도 때론 부모의 마음이 된다. 열정이 넘치게 교육에 열의를 하는 교사는 학생에게 애정과 관심이 많다. 그렇지만 학생을 향한 사랑과 관심은 학생과의 갈등을 만들고, 결국 학생을 통제하지 못하는 교사로 만든다. 학습에 모든 학생을 참여시키기 위해 애를 쓰면 쓸수록 학생들을 괴롭히는 교사, 결과적으로 무능한 교사가 된다.
사회의 탄생, 그것은 즉 '고뇌'의 탄생입니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충돌, 경쟁, 질투, 고독, 심지어 열등감 등 다양한 고뇌에 직면합니다. '나'와 '그 사람' 사이에 불협화음이 울려 퍼집니다. 이제 그 포근하고 따뜻한 양수 안에 있던 고요한 나날로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어요. 시끌벅적한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는 수밖에는 없다고요.(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시끌벅적한 학교, 학생들이 보이는 돌출 행동은 그들 사이에 용감한 행위로 인식되기도 한다. 교사와의 기싸움에서 이겼다거나 교실의 분위기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몰아갔다는 생각을 한다. 학생들은 '평범해질 용기'보다는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담배에 호기심을 갖는 것도, 일체의 수업에 관심과 흥미를 보이지 않고 편하게 즐기는 것도 이들에게는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눈에 드러나는 수치로 교육을 말하는 요즘이다. 대통령은 "줄 세우기라는 비판 뒤에 숨어 아이들의 교육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기초학력 저하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수준 높고 학생들을 끌어들이는 교육, 모두가 참여하는 교육을 해야 하지만 지금의 교실은, 학생들의 절반은 흥미도 없고 따라오지도 못한다. 모두의 학력 향상을 위해 애쓸수록 학생과 교사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철학자 : 몇 번이고 말했지만,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라고 주장하지. 즉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고, 인간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하네. 하지만 우주에서 혼자 사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해. 생각이 여기에 이르렀다면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결론은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라네.청 년 : 뭔데요?철학자 : 단적으로 말해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일세.(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이런 세상에서 <미움받을 용기>에서 말하는 아들러의 교육은 뜬구름 잡는 것처럼 막연하고 어렵다. 그러나 학생들이 있기에 이러한 고민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학생들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결단과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인내하고 기다리는 용기, 더불어 여러모로 아이들에게 미움받을 용기를 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