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의 독서 모임에서 사담이 이어지다 '웹소설 커밍아웃'을 했다. 아무렇지 않게 한 얘기였는데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조심스러운 반응은 그래도 뭔가 아는 사람들의 말이었다. 대부분은 그게 뭐냐고 그런 소설도 있냐고 물었다. 매일 밤을 웹소설을 보며 웃고 울고 잠을 설치는 입장에서는 내가 이상한 건가 싶어 당황스러웠던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로 잠정적으로 웹소설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잘 파악하는 남편도 웹툰에 이어 웹소설까지 본다며 조금 퉁명한 반응을 보였던 걸 생각하면, 내 재미와는 별개로 자랑할 만한 것은 안 되는가 보다 생각하기도 했으니까.
화제의 드라마, 이미 웹소설로 봤는데
그럼에도 나의 웹소설 읽기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웹소설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는 현상을 보며 내가 결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나름의 확신도 있었다. 화제가 되었던 작품들, <내 남편과 결혼해 줘>, <선재 업고 튀어>, <정년이>와 내 취향은 아니지만 배우를 향한 호기심에 봤던 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 o난감>이 웹소설 기반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열광하는 것을 선도한다는 혼자만의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게다가 시간을 내 맘대로 조정할 수 있는 나이가 주는 여유도 웹소설을 즐겨 읽는데 한몫 했다.
이밖에도 한참 빠져서 시청했던 <사랑의 불시착>과 <재벌집 막내 아들>이 웹소설 기반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놀랍기도 했다. '극본이 곧 드라마'라는 공식은 내 안에 꽤 완고하게 자리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웹소설이나 웹툰이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쉬운, 드라마의 새로운 방향은 아닐까 생각한다.
60의 나이에 웹소설을 읽는다는 것, 웹소설을 즐긴다는 것이 두루 어색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웹'이라는 접근성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오래된 통계이기는 하지만, 실제 웹툰/웹소설 앱을 이용하는 주 연령층은 10대와 20대가 압도적이다. 이후 30대와 40대로 이어지고, 50대 이후는 수치화하기도 민망한 정도다(2017.2.25. 서울경제 기사https://v.daum.net/v/20170225070115415).
키오스크의 사용도 불편한 세대에게 웹을 기반으로 하는 소설 읽기는 생각조차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키오스크의 보급과 사용이 일반화되며 이제는 60, 70대도 무리 없이 이용하는 것을 보면, 웹소설도 결코 넘기 힘든 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장 확장을 위한 운영진의 친절한 홍보와 시니어를 위한 디지털 교육 차원의 안내가 이어진다면 적어도 40대 만큼의 참여 정도는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한 번도 안 볼 수는 있어도 한 번만 볼 수는 없는' 매력 넘치는 시장이기 때문에.
최근엔 인기 웹소설 <중증외상센터>가 넥플릭스 드라마로 방영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언론이나 관련 업계의 큰 관심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따로 챙겨 볼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너그러운 독자인 나는, 웹소설을 읽었을 때 이미 충분히 즐겼고, 웹툰으로 보며 나름의 드라마적 검증도 끝냈으니까. 또한 실사판 인물의 등장이 원작의 감동을 희석시켰던 예가 있기도 했으니 굳이 봐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드라마의 반향이 큰 것을 보면서 지금은 시청을 고민한다. 넷플릭스 투둠(Tudum) TOP 10 웹사이트에 따르면 '중증외상센터'는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2일까지 11,900,000 시청 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공개 10일 만에 글로벌 TV쇼 (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2025. 2. 11. SPOTV NEWS)고 하니 웹소설과 웹툰에 이어 드라마까지 비교해 볼 시점인가 싶다.
기꺼이 돈 내고 웹소설 보는 이유
웹소설에 입문한 것은 1년 안팎이다. 웹소설을 써 볼까 관심도 갖고 관련 강의도 들었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은 창작의 고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수한 웹소설 작품을 중 다소 허술한 구성, 잦은 우연, 황당한 설정은 웹소설을 지적하는 포인트가 된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나름의 설득력과 개연성은 물론 꽉 찬 플롯을 갖춘 작품 또한 넘친다. 나는 그런 작품을 잘 고를 줄 아는 독자다.
웹소설을 보며 지난 2년간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한 학기 책 쓰기' 활동에 참여했던 아이들 중 소설 쓰기에 관심과 자신감을 보였던 아이들의 대부분은 웹소설을 읽으며 자신감을 키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단문도 아닌 한 단어 중심의 대화로만 이십 쪽 이상을 빼곡하게 채우는 모습을 보며, 서사가 드러나지 않는 글을 읽고 피드백을 하는 내내 피곤한 마음을 누르며 스토리 라인을 거듭 강조했던 터였다.
아이들의 글은, 인물의 심리나 대화는 지나치리만큼 사소하고 세밀하게 이어가는 경향이 많았다. 반면, 인물이 처한 상황이나 배경이 가진 특징이나 분위기는 쉽게 간과하였고, 사건이나 캐릭터의 설정도 빈약하고 허술했다. 아마도 그들이 읽었던 웹소설의 특징 가운데 인물간의 대화가 길게 이어지는 것에 대한 주목도가 컸다는 것을 나는 웹소설을 읽으며 뒤늦게 깨닫기도 했다.
아이들과의 첫 해의 강의가 이런 상황을 모르는 채로 끝났다면 이듬해의 강의에서는 따로 웹소설 분야에 대해 추가해서 설명하기도 했다. 플롯의 중요성, 작품 전체를 흐르는 서사, 회귀나 상태창 등의 기본 클리셰에 대한 설정, 독자들이 만족하는 포인트나 기억에 남는 장면 등 독자들의 기대감에 주목해서 강조하기도 했다.
반응이 좋은 웹소설은 독자들이 좋아하는 포인트가 종이로 출판한 소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스토리는 탄탄하고 등장인물의 개성은 살아있으며 사람들의 욕망도 대리 해소할 만큼 상황은 풍부하고 구성은 치밀하다. 또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하니 독자들은 기꺼이 돈을 내고 읽는다. 또 나처럼 밤을 새우며 울고 웃는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산하 한국출판독서정책연구소가 조사한 '2023년 독서문화 통계'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출판 콘텐츠를 한 번이라도 읽거나 들은 경험이 있는 성인은 응답자의 85.4%로 집계됐다고 한다. 세부적으로는 종이책이 79.1%로 가장 많았고, 웹툰(38.5%), 전자책(34.9%), 잡지·웹진(32.4%), 웹소설(24.7%), 오디오북(22%), 학술지 논문(19.8%)이 뒤를 이었다.
결과를 놓고 보면 웹소설은 단순히 심심풀이로 읽는 콘텐츠를 넘어선 것은 아닐까 싶다. 매화 짧고 강렬한 에피소드, 긴장감을 유발하는 방식과 감동 포인트, 목숨을 건 위기와 예상치 못한 반전 포인트 등은 현실과 달라 오히려 무덤덤한 일상에 강력한 자극이 된다. 출판된 소설이 사회의 현상과 인간의 삶을 깊이 고민하게 한다면, 웹소설은 이룰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가장 완벽한 형태인 이상을 마음속에 품어보게 한다.
60대도 누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때 책을 구입하는 것에 돈을 아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수입의 10%는 무조건 책을 사자고 호기롭게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그 각오는 빠르게 지울 수밖에 없었다. 생활인의 삶은 늘 '입금' 보다는 '출금'할 것이 넘쳐났고 마음은 빈곤했기 때문에.
종이책 한정 호사스러운 독자라도 상관없다. 웹소설은 100원이라는 소액으로 구매할 수도 있다. 각각의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쿠키나 캐시 뽑기, '기다리면 무료' 같은 무료 제공 이벤트도 활용할 수 있다.
무료 기회를 통한 검증이 끝나면 본격 독서는 본인의 소비 역량에 따라 조절하면 된다. 60대의 생활력이라면 '덕질'도 조절 가능하다. 모든 소비가 그렇듯 가끔은 통제할 수 없는 욕구가 생기는 작품이 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웹소설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생산과 소비, 손쉽게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창작의 등용문이면서 수익 창출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기도 한다.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나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나, 꿈을 꾸게 하거나 꿈을 이루게 하는 것이라면 이미 훌륭한 문화 콘텐츠인 것, 60대도 누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