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이 필요한 순간

by 바람

어스름이 가시지 않은 아침, 늘 같은 길을 걷는다. 이른 시간이라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항상 마주치는 이가 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쳐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사람. 십 미터쯤 앞, 아직은 어둠에 잠겨있는 곳으로부터 빨간 불빛이 다가오며 자전거 신호음이 들린다. 정면을 보고 서로 경계할 수 있도록 하는 친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오래가지 않았다. 빤히 보고 한 걸음 옆으로 옮기고 있는데도 굳이 신호음을 맹렬하게 울린다. 이건 무슨 뜻일까?


눈이 쌓인 어느 날, 미끄러운 길을 피해 사람들의 발길이 닿아 눈이 녹은 흔적이 있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걷는다. 어제의 그 자전거가 온다. 다른 쪽으로도 여유가 있는데 굳이 내 앞으로 달려오며 마찬가지로 신호음을 멈추지 않는다. 한쪽 벽으로 붙는다고 붙었는데, 앞에서 멈춰 서더니 기어코 한 소리 한다. "거참! 비켜야지!" 그러고는 쌩 다시 간다. 아침부터 반말, 거기에 정색하는 말투도 황당하다. 은근히 화가 치미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너무 기가 막혀 말문을 막아 버렸나 보다. 참을 수 없어 바로 뒤를 돌아서는 것까지는 자동반사였는데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자전거 그 사람과의 부딪침은 꽤 여러 번이었고 내게는 늘 아름답지 못한 채로 마무리됐다. 그 후로도 몇 번의 마찰 후에 마주치는 시간대를 피하기로 했다. 일방적인 양보도,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것도, 울컥 치솟는 답답하고 억울한 듯한 상황도,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부터 벌어지는 스트레스도 피하는 선택이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킥보드와 충돌한 한 여성의 일화를 들었다. 어렵게 취업의 문을 통과하고 첫 출근날 골목에서 튀어나온 킥보드와의 충돌. 그 사고로 그녀는 전치 6개월의 진단을 받았고 이후에도 정상적인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녀의 꿈은 멈췄다. 더구나 그녀의 병원치료비를 포함한 보상은 관련 법령이 없어서 청구할 수 없다는 것. 물론 사고를 낸 당사자(고등학생)에게 죄를 물을 수도 없다고 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자전거는 내려서 걸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횡단보도에서 자전거에서 내려서 건너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2, 3초 남은 시간에 쑥 튀어나와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건너가는 경우도, 빨리 출발하는 차와의 위험천만한 상황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자전거보다 빠른 킥보드의 운행 방법은 사실 아는 바가 없다.


인도로 다니지만 사람은 아니고 오히려 걸어 다니는 사람을 위협하는 것들. 좁은 도로에서 사람과 탈 것의 공존을 오로지 사람들의 선의에 기대는 것은 옳은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이제는 조금 더 공공의 안녕을 위한 안내와 촘촘한 법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어렸을 때 배운 동요 <자전거>(목일신 작사·김대현 작곡)는 사람보다는 명백히 자전거에 초점을 맞춘 가사다. 1933년에 작곡된 이 노래는 자전거를 탄 어린이의 시각에서 전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라는 시간과, 자동차나 자전거가 흔치 않았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그 시대의 자전거는 동경이거나 선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을 타고 다녔던 사람들, 주로 일본인이나 순사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도보로 보행하는 사람들의 안전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 가사라는 생각이 든다. 이 노래는 지금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요즘은 특히 조금씩 모양을 달리 한 이동수단 전성시대다.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는 자주 마주치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주로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겠지만, 자전거 도로가 마련되지 않는 곳에서는 언제나 인도로 이동한다. 보행을 돕는다는 취지에 맞게 속도에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보행자와의 원만한 이동이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보행자들을 지나쳐 보다 더 빠르게 가려고 한다는 것이 언제나 문제다.


한동안 목에 지속적으로 담이 걸린 적이 있었다. 자전거와의 심한 충돌 사고 이후로 위험 요소를 피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따르릉 소리가 나면 습관적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고는 한쪽으로 비켜서기를 반복했던 때였다. 미처 소리를 듣지 못해 주춤하면 기어이 비키라는 냉정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뒤어서 오든 앞에서 다가오든 신호음을 울리며 일방적으로 비켜주길 바라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것도 인도에서, 일방적으로 자전거가 우선시되는 동요 가사의 상황은 필히 수정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요즘 소설에서 특히 자주 주목하는 단어는 '다정함'이다. '정이 많다', '정분이 두텁다'로 간단히 설명되는데 소설을 읽고 받아들이는 의미는 그보다 훨씬 더 크고 풍성하게 다가온다. 그러니 다정함은 정이 많아 생기는 다양한 상황과 관계, 두텁게 쌓이는 정으로 만들어지는 인간과 사회의 변화가 다정함에는 함의되어 있다.


tvN에서 방송하는 <보검 매직컬> 방송을 잠깐 봤다. 꼬마 손님이 머리를 깎는데 20분이 지나가니 꼬마의 한계가 다가왔다. 지루하고 힘드니 그만하겠다고 말하는 꼬마를 향해 박보검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부드럽게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꼬마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마침내 커트를 완성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꼬마와 박보검의 대화는 오래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도 하기 힘든 배려와 다정함이 깃들어 있어서 너무 좋았던 것 같다. 신체적, 감정적 에너지가 부족하면 헤아리고 표현할 수 없는 다정함을 그 젊은 연예인은(물론 방송이었지만, 또한 편집의 힘도 있었겠지만) 그 어려운 것을 하고 있는 모습에 새삼 감탄했던 것 같다.


어느새 나도 귀가 순해진다는 나이가 됐다. 이 나이에 날 선 대화와 적대적 감정소모라니... 부끄럽고 민망하다. 삭막한 내 신체와 메마른 내 감정에 아쉬움도 크다. 그런데 이해인이 쓴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에는 다른 해석이 있다. 지성으로 무장해서 타인을 누르려는 태도는 결국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 선택일 뿐이라는 것.


'다정함은 상대를 무안하게 하지 않는 배려와 상대를 안심시키는 반듯함이다. 똑똑함을 자신을 위한 지능이고 다정함은 타인을 위한 지능이다.'(<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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