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보다 '기록' 여행

조선왕조실록박물관 다녀와서

by 바람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것이 눈부신 설경이다. 특히 한 해가 저무는 연말에 순백의 풍경을 보며 한 해를 정리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몇 번의 경험이지만, 갈 때마다 세상의 모든 걱정을 날릴 것 같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환상적인 풍경은 하늘 아래 가장 특별한 존재로서의 나를 느끼게 한다.


문학 작품에서 읽는 설경의 묘사는 역시 뭉클하다. "눈발이 세차게 날리던 날, 나는 돌아갈 수 없는 길 위에 서 있었다(윤대녕, <대설주의보> 중)"에서, 눈은 길 위의 사람을 고립시키지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냉정한 거울의 의미로 다가온다. <설국>의 명문장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에서도 마찬가지다. 눈은 밤의 밑바닥까지 삼키지만, 또한 감추어진 감정의 찌꺼기를 끌어올려 다시 정순하게 살아갈 힘을 허락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현실보다 더 실제 같은 문학 작품 속 설경의 묘사는 기록으로 박제되어 무수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무주리조트와 발왕산 정상의 설경은 문학 작품에서의 풍경을 그대로 구현하는 매우 특별한 곳이다. 겨울의 아찔한 찬 기온이 온몸을 감아 도는 순간, 내면의 어수선한 마음은 오히려 정리되곤 한다. 기록이 경험을 돕는 순간이다.


이번 연말에도 발왕산을 향해 새벽을 달렸다. 안타깝게도 정상의 설경은 돌풍 때문에 케이블카 운행이 중단되어 볼 수 없었다. 스키를 타기 위해 온 인파보다는 정상의 설경이 목표인 사람들이 많았고 그대로 발길을 돌려야 했는데, 어떤 이의제기도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새벽같이 출발해서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 이대로 다시 올라가기는 너무 아쉬운 마음에 근처 월정사로 계획을 변경했다. 토요일이었지만 월정사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왔는데 역시나 눈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입구에 조선왕조실록박물관 개관 안내문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그곳을 찾았다.



눈대신 마주한 기록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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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은 세계 최고의 기록유산이다. 기록이 가진 힘을 중시했던 조선왕조는 기록물의 편찬과 보관에 그 어떤 왕조보다 엄격하고 충실했던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조선왕조의궤와 같은 주요 서적이 화재나 전란에 모두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궐내에 있는 춘추관사고 외에도 외사고를 마련하여 따로 보관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임진왜란 이후 접근이 어려운 깊은 산속에 외사고 네 곳(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을 운영했고, 월정사가 있는 오대산사고가 그 중 하나다.


오대산 사고는 1606년(선조 39년)에 지어졌다. 실록을 보관하는 사각(史閣)과 왕실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璿源寶閣) 두 동이 앞뒤로 조성되었고, 한양에서 온 사관이 머무는 청사와, 사고를 수호 관리하는 사람들이 머문 영감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빼앗기며 왕실 기록물은 흩어지거나 소실되었고, 오대산 사고에 있던 실록과 의궤는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2006년과 2017년에 실록이, 2011년에 의궤가 국내로 환수되었고, 110년 만에 오대산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IE003566235_STD.jpg ▲조선왕조실록 사초와 사관명부


전시실에는 오대산 사고에 보관돼 있던 조선왕조실록 75책, 보물 의궤 82책 포함 12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실록은 각 사관들의 사초(史草)를 바탕으로 작성되는데, 실록 편찬을 마치면 사초들은 물에 빨아 내용은 삭제하고 종이는 재활용하였다고 한다. 이는 역사 서술을 공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하게 비밀을 유지한 것이라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중 태조, 정종, 태종실록은 필사본으로, 세종실록 이후는 금속활자(을해자, 갑인자)로 간행되었다. 임진왜란으로 금속활자들이 사라졌을 때, 선조, 인조, 효종실록은 목활자로 인쇄되었고, 이후 숙종, 현종실록은 다시 금속활자로 간행되었다고 한다.


필사본과 인쇄본이 비교를 위해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데 글자의 정교함은 둘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오대산사고본 중 성종실록과 중종실록은 교정을 보았던 흔적도 확인할 수 있다. 원래는 몇 차례 원고를 인쇄하여 교정을 본 뒤 정본을 만들면 교정쇄본은 폐기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유일하게 남은 전주사고본을 기준으로 물자가 부족한 사정으로 교정쇄본을 남겨 오대산사고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IE003566233_STD.jpg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돌아온 조선왕조실록. 경성제국대학의 인장이 찍혀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왕의 일상이나 조정의 주요 안건, 관료의 상소, 외국과의 교류, 자연 재해, 백성들의 생활 등의 내용이 기록되었고 사관의 평가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는 사관의 '직필'을 통해 국정을 냉정하게 평가 받고자 했던 위정자의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한다.



모든 기록은 문화가 된다


조선왕조실록은 현재의 대통령기록물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대통령기록물'이란 대통령(대통령권한대행과 대통령당선인)의 직무 수행과 관련하여 기관이 생산, 접수한 기록물 및 물품을 말한다. 노무현 정부가 대통령기록물법을 제정한 이후, 역대 정부에서 많은 대통령기록물을 남겼다. 대통령기록물은 매 정권이 끝날 때마다 기록관으로 이관해서 보관한다.


이번 이재명 정부에서는 대통령실 업무보고나 수보회의, 각 부처의 업무보고를 실시간 방송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방송을 통해 공개되는 사안들은 대통령기록물로도 남겠지만, 모든 국민이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시청하며 댓글로 활발히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방송은 곧 기록이 되고 국민은 사관이 되는 시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새삼 국민이 참여하는 정치에 대한 효용감도 느끼게 된다.


IE003566251_STD.jpg ▲조선왕조실록 필사본과 인쇄본이 비교를 위해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데 글자의 정교함은 둘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모든 기록은 곧 문화가 된다.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의 문화적 가치를 언급하는 것도 새삼스럽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타일러는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률, 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를 문화라고 정의했다. 방송을 통해 참여하고 소통하는 우리의 태도 역시 가치 있는 문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권력자의 흥망성쇠의 기록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과 성찰, 광기와 이상이 녹아 있는 우리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리하여 외세의 침략과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지식과 관습, 예술과 도덕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가치와 감동은 시공을 초월해서 문화 강국 대한민국의 자부심이 된다. 현재의 기록 역시 미래 세대에게 마땅히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비록 설경은 마주하지 못했지만 조선왕조실록박물관을 본 것은 큰 행운이다. 역사의 과(過)와 실(失)이 있겠지만, 모든 과정이 적어도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었다는 것은 알 것 같다. 모든 정치의 행위를 기록으로 남길 만큼 진심을 다했던 조상의 뜻만큼은 지금의 위정자들이 가장 본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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