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만 세

새내기 낭독모임에서 '함께'의 의미

무카이 가즈미, <다정한 나의 30년 친구, 독서회>

by 바람

새해를 맞았다는 느낌도 막연한데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새해가 되면 늘 새로운 계획이나 다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일정한 규칙이 없는 예순의 하루하루는 조금만 마음을 풀어도 삶의 의욕이 떨어지는 것 같다. 사는 게 뭔지, 나는 무엇이고 여기는 어딘지,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하는지 '의문의 지옥'에 갇히는 순간이다. 경계 경보가 울리면 마음은 어둠이 지배하고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2026년은 새해가 주는 부담에 사로잡히지 않고 첫 달을 무사히 잘 보낸 것 같다. 그 모든 공은 낭독 동아리 모임 덕분이다. 지난해 6월에 시작한 동아리 모임에 용감하게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책이 가진 힘 때문이었다. 소리 내서 책을 읽으면 마치 맛있는 글을 꼭꼭 씹어 야무지게 소화 시키는 것 같았으니까.



쿵쿵 맥을 뛰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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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 정은문고관련사진보기


무카이 가즈미 <다정한 나의 30년 친구, 독서회>는 책의 세계를 공유하며 35년간 이어온 독서회에 대한 애정이 듬뿍 들어있는 책이다. '독자를 기쁘게 하려는 속셈이 보여 여우 같은' 책의 마법에 홀라당 빠지게 만든 독서회 지침서이면서 인생살이 지침서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낭독도 출발점은 비슷하다. 일단 소리 내 읽기 시작하면 책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매력적인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신랄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이 더욱 진하게 다가오며 쿵쿵 맥을 뛰게 한다.


그러나 낭독의 매력은 책이 전부는 아니다. '의문의 지옥'에 빠지지 않도록 나를 지탱해 준 것도, 새해라는 거창한 문에 주눅 들지 않고 하루의 평정심을 갖고 지내올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모임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혼자는 결코 이어갈 수 없었던 낭독에 대한 열의, 다양한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뭉근한 어우러짐이 나를 잘 지탱해 주었다.


<다정한 나의 30년 친구, 독서회>는 번역가이면서 사서인 저자의 30년 독서회의 모든 여정을 압축하고 있다. 작가는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살아온 것은 책이 있었기 때문이고 독서회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라"라고 고백한다. 저자의 30년의 독서회 여정을 고작 7개월의 동아리 여정과 견줄 수는 없다. 그러나 함께하는 참여는 삶의 감각을 일깨워주고 위로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저자는 혼자는 절대 읽지 않았을 책을 독서회원들과 함께 읽었다고 고백한다. 낭독 모임도 저자의 독서회와 다르지 않다. 모임 초기에 우리는 낭독할 책을 각자 고르고 소개했다. 이때 소개되는 책은 나로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분야의 것들이 많았는데, 낭독을 위해 정성스럽게 발췌하고 배경이나 앞뒤 맥락을 소개하며 목소리에 진심을 담으니 관심이 가고 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낭독이 주가 되지만 책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이번에 함께 낭독한 김연수 작가의 '풍화에 대하여'(책 <너무나 많은 여름이> 중)를 읽고, 누군가는 등장인물 관계의 어색함과 부조화를 생각하며 지독한 '코믹' 같다고 말했는데(그래서 가볍게 읽었다고), 어떤 이는 쇠퇴와 몰락과 풍화를 가져오는 나이 듦의 본질을 생각하며 슬펐다고(그래서 낮고 묵직한 느낌으로 읽었다고) 말했다. 같은 내용도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대화를 통해 이해의 폭을 확장한다.


아직 새내기 모임이라 진행하며 여러 고민을 나누게 된다. 책의 선정이나 낭독의 방식, '목소리냐' '목소리 연기냐'의 문제 등. 그 와중에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참여하는 사람들과의 '거리' 문제였다. 너무 낯설면 긴장돼서 얘기를 나누기 힘들고, 간혹 사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서로에 대해 어디까지 파고들어 의견을 내야 할지' 고민이 된다.


너무 친해져 긴장감이 사라지는 것도 분명 경계할 부분이다. 모임의 시간이 사담으로 이어지면 본질을 잃게 된다. 때문에 '적당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책과 낭독'에 집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개개인의 몇 줄 이력에 관심을 거두면 감춰 있던 각자의 전문적인 영역이 빛을 발하게 된다. 책을 이야기하는 데 직함이나 이력은 상관없다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저자가 책에서 알찬 토론을 위한 방법으로 소개한 것을 우리 모임에 적용하기도 한다. 모임이 오래 지속되고 모두가 즐기기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이 필수다. 가능한 한 결석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 낭독하는 책은 반드시 소리 내서 읽어보고 올 것,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부정하지 않는 것, 나눔의 시간은 혼자 차지하지 않을 것, 그리고 잡담을 많이 하지 않을 것. 책을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모임의 규칙을 얘기했고 모두 공감할 수 있었다.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하는 모임


처음 혼란스럽던 낭독 모임은 이제 조금씩 틀을 만들어가고 있다. 올해는 전문 강사를 초빙해서 낭독의 세계를 깊이 공부할 계획도 잡혀있다. 독서회가 토론의 방향을 잡기 위해 다양한 생각을 모으는 것처럼, 우리 또한 낭독을 위해 새로운 계획을 마련하고 발전 방향을 논의한다. 다행히 시에서 진행하는 동아리 지원 사업에 신청서를 냈고 계획서가 통과돼서 4월 중 집중 강의가 시작될 예정이다. 목표는 다르겠지만, 모임 방향을 논의하는 동안은 하나의 목표를 갖는 든든한 동지가 된다.


덧붙이면, 책에서 독서회를 '민주주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모임은 혼자가 아닌 우리가 되게 하고, 각각의 생각이 모여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연대를 이룬다. 일관된 생각을 주입하는 독재와는 거리가 멀다. 책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점령 하의 건지섬을 배경으로 한다. 고립되고 위태로운 시간 속에서 책을 통해 마음을 나누며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문학은 그들에게 삶을 바꾸는 힘이 되고 생명을 지키는 명분이며 존재의 이유가 된다. 낭독을 통해 그들의 방법은 곧 우리의 방법이 된다.


모임을 끝내고 돌아오는 버스 안, 94세 할머니와 70대 할머니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70대 할머니가 다니는 모임에 94세 할머니가 참여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스스로 수영 강습도 다닐 만큼 활동에 대한 열의가 있지만, 그럼에도 무언가를 함께 도모할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한다는 말씀이었다.


이제 7개월 차 모임. 할머니의 나이까지 모임이 이어진다면, 이어질 수 있다면 어떨까. 그동안 모임은 다양한 변주를 거쳐 무수한 가지를 뻗고 무성한 잎을 드리우겠지. 매년 가지치기를 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겠고, 그러는 동안에도 줄기는 더욱 굵고 단단해질 것이다.


그 모임에 나는 어디쯤 자리하고 있을까. 94세 할머니의 이야기가 귀를 쫑긋 했던 것은 내가 모임에 참여할 때마다 고민하는 부분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 함께할 수 있다는 기대, 거기에 내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감각이 나를 뛰게 할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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