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극 참고하려 봤는데, 어느새...

권석천, <최선의 철학>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by 바람

요즘 낭독 동아리에 열중하는데, 목소리 연기에 관심이 많다. 우연찮게 낭독극을 준비해야 할 상황도 있어 낭독에 몰입해야 할 이유도 생겼다. 단순한 문장, 한 마디 목소리에서 비롯된 감정의 깊이와 파급력 같은 것들도 있어야 할 것 같고. 그런 이유로 소문이 무성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에서의 배우들의 연기가 궁금했다.


영화 '왕사남' 관객수가 1500만을 돌파할 즈음 뒤늦게 영화를 봤다. 이미 유튜브를 통해 영화의 내용이 많이 알려져 있어 새삼 스포랄 것도 없을 정도로 내용은 훤했지만, 디테일을 확인하고 싶었다. 짧은 영상에서 잠깐 본 배우들의 연기에서 보이는 절망과 비탄과 슬픔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장면의 연결은 얼마나 매끄러운지, 실제로 봤을 때도 무척 협소해 보였던 청령포라는 무대의 활용은 어땠는지 등 궁금한 게 많았다.



엄흥도와 안티고네

IE003593801_STD.jpg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쇼박스


'왕사남'은 계유정난 이후를 다룬다.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고 난 후, 어린 왕 이홍위는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길에 오른다. 강원도 영월 산골 마을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는 마을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자신의 마을 광천골을 유배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이홍위의 유배지는 청령포로 결정이 된다. 보수주인이 된 엄흥도는 수염이 성성한 대감이 아닌 삶의 의지를 잃은 소년 이홍위의 첫 모습에 의아하면서도 마음을 쓴다.


영화의 결말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다. 숙부인 금성대군은 이홍위의 복권을 위해 반정을 계획하지만 실패하고 이홍위와 같은 날 생을 마감한다. 영화에서 이홍위는 엄흥도의 도움을 받아 자결하고 조정은 시신을 동강에 방치한다. 세조는 그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고 어명을 내리지만, 엄흥도가 시신을 수습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실록은 죽음의 과정이나 상황을 묘사하지 않고 오직 '수습'이라는 결과로 기록했다. 영화의 죽음이 상상의 영역일까 싶었는데, 권화(權和)·박경여(朴慶餘) 등이 쓴 <장릉지>에 "세조 3년(丁丑年) 10월 24일 유시(酉時)에 공생(貢生)이 활끈으로 노산군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하였다. 노산군의 옥체는 청령포(淸泠浦)의 강물에 던져 버린 것을 영월호장 엄흥도(嚴興道)가 몰래 거두어 영월군 북쪽 5리쯤의 동을지(冬乙旨)에 매장했다"라고 기록하여 영화 속 죽음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영화는 엄흥도의 '수습'이라는 행위를 인물의 신념으로 해석한다. 또한 엄흥도의 행위에는 '군사부일체'의 감정이 깊이 투영된 듯하다. 엄흥도는 조정이 부여한 새로운 질서에 따른 명령과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도리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영화는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질문을 던진다.


엄흥도는 폐위된 임금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며 "위선피화(爲善被禍) 오소감심(吾所甘心)"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이는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더라도 나는 달게 받겠다"는 뜻이다. 영화에서도 개인의 안위보다 인간의 도리를 앞세운 충의 정신을 보여준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러한 상황은 무수히 많았겠지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안티고네의 이야기는 엄흥도의 선택과 비슷한 상황을 보여준다. 안티고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바이 왕 오이디푸스의 딸이다. 안티고네는 전쟁터에서 죽은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조국의 배신자로 규정하여 매장을 금지한 섭정 크레온의 명령에 따르기를 거부한다. 그녀는 폴리네이케스의 시체에 모래를 뿌려 장례의식을 행하였다가 사형을 당한 인물이다.


권석천이 쓴 <최선의 철학>에는 침묵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말한다.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행동하지 않을 때, '무력감이 정신을 녹슬게 하고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신을 신뢰하기 어렵게 되며 급기야 '삶의 맥락'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라고 한다. 그리하여 논쟁의 한복판에 서야 할 필요는 없으나 신념을 위해 침묵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며 그 용기를 어떻게 배우고 익혀야 할지를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통해 밝힌다.


오이디푸스 왕은 출생의 비밀과 자신이 처한 참혹한 진실을 알게 되자 스스로 실명하고 방랑길에 오른 인물이다. 왕이 떠나자 안티고네의 두 오빠의 왕위다툼이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형제는 죽고 외삼촌 크레온이 왕이 된다. 크레온은 두 명의 조카 중 하나는 영웅으로 장사를 지내지만 하나는 반역자로 규정해 시신을 방치하고, 누구든 수습하면 죽음으로 다스리겠다고 선포한다.


시신마저 버려지는 죽음에 대해 안티고네는 반발한다. 그녀는 죽은 가족의 매장은 신들이 부여한 신성한 의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신의 법이 인간의 법보다 우선한다는 믿음'과 사자(死者)가 사자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설파한다.


이 행위로 안티고네는 서구 법철학에서 저항의 상징이 되고 시민불복종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주목받게 된다. 신념을 위해 침묵하지 않는 것이 논쟁의 중심에 서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어떤 문제의식을 지니고 사느냐는 삶을 달라지게 하고 사회적 의견이 되며 여론이 된다. 나아가 시대의 방향이 되는 셈이다.


나 또한 한낱 인간에 불과한 그대의 포고령이 신들의 변함없는 불문율들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그 불문율들은 어제오늘에 생긴 게 아니라 영원히 살아 있고,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나는 한 인간의 의지가 두려워 그 불문율들을 어김으로써 신들 앞에서 벌받고 싶지 않았어요. 이런 운명을 맞는다는 것은 내게 전혀 고통스럽지 않아요. 내 어머니의 아들이 묻히지 못한 시신으로 밖에 누워 있도록 버려두었더라면 내게 고통이 되었을 거예요.(<최선의 철학> p.48)


엄흥도의 신념


영화를 보기 전에 생각했던 낭독극과의 관련성 혹은 준비는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잊고 말았다. 다만 역사적 인물의 비극적 상황과 주변 인물들의 행위에 몰입했던 것 같다. 특히 마지막 엄흥도의 선택과 그의 신념은 깊은 인상으로 다가왔다.


이성적 판단이라고 해서 불변의 진리가 될 수는 없다. 또한 옳다 그르다의 판단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고 본다. 가슴으로 느끼는 감정은 때론 이성을 초월한 판단과 선택을 하게 하는데, 엄흥도는 자신의 신분과 위치, 가족을 생각하며 갈등하지만 끝내 감정에 따르는 선택을 한다.


재판에서 안티고네의 판단 또한 다르지 않다. 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의지를 펼치고, 가슴으로부터 비롯된 신념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을 갖는다. 안티고네의 감정에 공감하는 순간 그녀의 행위는 '부당한 권력에의 저항'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전쟁과 폭력, 죽음과 삶의 위협을 안방에서 목도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세계는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는데, 이런 시대에 감정과 이성이 어우러진 공감은 세상을 이해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생각한다. 계유정난이나 그리스 신화의 비극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바는 분명하다. 광기가 세상을 희롱하지 않도록 우리의 선택은 언제나 중요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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