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야기 변천사

by 바람
“할머니 또 시작이다. 내가 옆에서 지켜본 사람인데 내가 아는 사실과 다른데? 모르는 사람들이나 열심히 들어.”


시어머니의 생신에 가족이 함께했다. 식사를 마치고 둘러앉으니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오래된 이야기가 나온다. 들을 때마다 이야기의 방향이 조금씩 바뀐다. 흐려진 기억에다 어머니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 더해져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한다. 당시 상황을 아는 사람은 이야기가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방향은 어머니 편에서 볼 때 긍정적이다. 좋지 않던 일들이 좋은 기억으로 바뀌고 불행했던 사건도 안타깝거나 아쉽거나 행복한 결말에 이른다. 물론 어머니 편에서다. 외가와 친가가 넘나드는 이야기의 각색을 남편은 싫어하고 자리를 피한다.


어머니의 남동생, 막내 외삼촌은 3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나의 시아버님은 그 옛날 이런저런 사정으로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그로 인해 박정희 시절 공무원에서 잘렸다고 했다. 어머니의 오늘 이야기에서는 아버님의 이러한 이력 때문에 당신의 막내 동생인 외삼촌이 육사에 지원하여 필기시험은 합격했는데도 불구하고 면접에서 탈락했고, 어쩔 수 없이 3사관학교를 지원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그간 들었던 것과 다르게 풀어내신다. 듣는 남편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에게는 돌아가신 당신의 남편보다 살아있는 동생이 아직은 안타까운 것 같다.


이전까지의 이야기에서는 아버님으로 인해 안타깝게 탈락했다는 말은 없었다. 면접에서 탈락했다는 이야기는 전에는 정권에 비협조적이었던 당시 어머니 쪽의 형제들 때문이라는 좌우익의 갈등 측면에서 가정사를 언급한 적은 있었지만, 나의 시아버님(어머님의 남편)이 연루되어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흐려지는 기억 속에서(나는 사실 이렇게 이해하고 싶다.) 지난 시간을 붙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각색이 필요하다. 드문드문 사실에 입각한 재창작.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어머니의 재능이 각색을 통해서 있었던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들려준다.


시할아버지는 내가 결혼하고 3년을 뵈었다. 종손이자 맏손주가 맞은 아내여서 예뻐해주셨고, 때문에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작은아버지 댁을 자주 방문해야 했다. 내겐 인자하셨던 시할아버지의 사연도 어머니 입에서는 다르게 탄생한다. 당신의 시아버님은 성격이 괴팍해서 세상 착하신 분이었던 시어머님을 그렇게 구박하시고 주먹 쥔 손으로 시어머님의 머리를 쥐어박았다는 말씀을 하신다. 집 앞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밥 먹고 가라고 붙잡았던 시어머님의 행동을 양식을 축낸다는 이유로 뒤에서 조용히 타박하셨다는 말씀이다.


처음 듣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분, 내게 다정했던 분이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도 없다. 그리고 어머니의 이야기는 믿고 말고의 문제는 이미 아니다. 때로는 6·25 때 열다섯열여섯 살이던 당신이 소 한마디를 때려잡아 해체해서 피란 가는 사람들에게 가마솥으로 끓어 국밥을 먹였다는 말씀도, 지금 당장 가마솥에 국밥이 절절 끓고 있는 것처럼 맛깔나게 당시 상황을 재현하며 말씀하신다. 비참한 전쟁의 이야기가 야리야리하면서도 강단 있는 여주인공의 휴먼 드라마로 재탄생했고 정말 실감 나고 재미있게 들었었다. 조금 더 긴 시간을 앉아 있으면 다른 이야기도 계속 나오지만, 하루 분량의 이야기로는 이미 넘치고, 평일 저녁 늦은 시간이었기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어머님은 당신의 기억 속에 만들어 놓은 이야기 틀을 가지고 모든 이야기를 재구성하신 것 같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어머니에게는 기억의 조각품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의 기억을 하나의 작품으로 감상한다. 어떤 작품도 ‘팩트 체크’가 필요하지 않다. 옛날 옛적의 이야기로 잘 감상하면 족하다. 우리 모두도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의 조각품으로 남게 될 것이고 그때도 사실 확인은 이미 필요없을 테니.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한밤중에 강을 건너는 위험을 언급하며 물소리는 듣기에 따라 퉁소 소리, 산이 찢어지고 절벽이 무너지는 소리, 개구리 떼가 다투어 우는 소리, 벼락과 천둥 치는 소리, 한지를 바른 창에 바람이 우는 소리, 찬물이 끊는 소리 등으로 바뀐다며 이는 모두 바른 마음으로 듣지 못하고 이미 가슴속에 자신이 만들어 놓은 소리를 가지고 듣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야기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이야기에서도 그랬지만 열하일기를 읽을 때 이 대목에서 마치 내가 계곡에 앉아 물소리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후로 오래 기억에 남아 있었고, 여름에 휴가차 계곡에 가게 되었을 때 소리의 변화를 포착하고 싶어서 밤새 밖의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기억이 있다. 밤새는 거짓일 것이다. 휴가의 기억은 어쩌면 내 편에서 기억하기 좋게 각색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기억도 오락가락한다. 실제는 비가 너무 쏟아져서 계곡 물소리가 단 하나의 소리로만 들렸던 것 같고, 높은 습도로 인해 쾌적하지 못한 주변 상황에 짜증을 내며 잠을 설치고 쏟아지는 비를 원망하기도 했던 것 같다.


각색된 이야기가 비극으로 향하지 않는 것은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비관적으로만 흐른다면 노년에 흐려진 기억 속에서 삶을 살아가기가 더 힘들 것 같다. 역시 가물가물한 나의 기억도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이야기가 재탄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딸의 말에 의하면 나의 이야기도 기승전결이 완벽하다고 했으니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은 이미 검증된 것이고, 이제 나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줄 나의 팬을 포섭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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