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를 구부리지 말고 젖히고 고개를 똑바로 하고, 허리의 라인이 완만하게 들어가도록 곧게 펴고 앉아!"
"그게 쉬운 줄 알아? 너도 내 나이 돼 봐!"
한 달 전 바닥에 앉아 필사에 몰입하고 있는데 딸이 갑자기 크게 소리친다. 소리가 커서 놀랐고 뭔가 큰 잘못이라도 했다는 듯이 달려들어 말하는 바람에 억울한 사람처럼 즉각적으로 말대답이 튀어나왔다.
집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식탁과 책상을 겸하는 낮은 탁자를 이용한다. 늘 위에 올라와 있는 컵과 물병, 휴지 등을 한쪽으로 정리하고 책을 펴고 읽거나 필사를 한다. 노트북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집에 있는 날은 하루 두세 시간은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아있는다.
한 시간 정도 흐르면 자세가 무너지기 마련이다. 처음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지만 시간이 지나면 허리가 둥글게 말아진다. 다리도 불편해서 쭉 뻗기도 하고, 드러눕듯이 비스듬한 자세가 되기도 한다. 이 단계까지 가면 거실 바닥에 밀착하거나 소파 위로 올라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몸이 편한 자리를 찾을까 싶은 상황이 되었을 때 정신 차리고 얼른 일어선다. 여기저기 움직거린다. 물도 떠오고, 차도 한 잔 마시고, 오가다 정리가 안 된 것이 보이면 치우기도 하면서 허리를 펴는 시간을 갖는다. 딴짓을 시작하면 또 시간이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난다. 그러고는 다시 자리에 앉고는 했다.
그런 과정 중의 한 단계를 딸이 목격한 것이다. 건강에 관한 한 딸은 병적으로 반응한다. 아직 팔팔한 나이인데도 비타민도 챙기고 간에 좋은 약도 챙긴다. 눈 건강 약에 장 건강까지 챙기면 먹어야 하는 건강보조제가 한 움큼이다. 그런 딸의 눈에 완전 불량인 나의 자세가 눈에 들어왔으니 예민한 반응은 너무 당연했다.
나의 강력한 맞대응에 딸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나도 민망해서 식당에서 주로 쓰는 앉은뱅이 의자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하자마자 허리에 좋은 의자를 사야겠다고 딸은 반응했다. 아주 가끔 그런 의자 생각이 났지만, 일부러 사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금방 톡이 온다. 집에서도 톡으로 하는 대화다. 어느새 검색을 통해 디스크 의자를 찾았다. 사진을 보내오고 색상을 고르라고 말한다. 급한 주문에 얼떨결에 색을 골랐다. 알았다는 대답과 함께 '주문 완료!’ 톡이 왔다. 속도전이다.
순식간에 무엇을 샀는지도 모르게 벌써 주문 완료란다. 그제야 가격은 얼마가 되는지 묻는다. 자주 이용하게 될지 돈만 버리는 것이 될지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미리 가격을 알았다면 절대 주문하지 말라고 극구 말렸을 것이다.
주문 후 3일 만에 큼직한 박스가 배달됐고, 딸이 사준 의자에 앉아 오늘도 탁자를 마주하고 있다. 집안 청소를 마치고 차 한 잔과 함께 책을 펴는 시간은 상쾌하고 뿌듯하다.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사무실 책상에 앉아 하루의 업무를 시작하는 사람처럼, 나도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다.
집에 있는 날, 낮시간은 되도록이면 눕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이 들어서인지 누워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이 감기고 깜빡 조는 순간이 생기는데, 그렇게 잠깐 조는 것도 밤에 깊이 잠들지 못하는 원인이 되곤 한다. 눕는 자세가 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신경 쓰곤 했다.
딸이 사 준 허리에 꽉 끼는 의자. 절대 드러누울 수 없도록 허리에 압박을 가하는 의자다. 도서관을 이용할 때는 거실 한 구석에서 따로 놀고 있어서 괜히 샀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은 제 역할을 단단히 한다. 무너지는 몸을 받쳐주는 의자와 함께 오늘 나의 글쓰기 목표도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