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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토끼 Sep 04. 2020

층간소음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정신 승리만이 답이다

 

“저년 또 시작이네?” 


1년 전이었다. 교통이 편리하고 주변 상권이 발달한 곳을 찾아 현재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시작된 것은 따갑게 귀를 때리는 전투기 소리뿐이 아니었다. 아이가 떼를 쓰며 방바닥을 수차례 찍는 것부터 묵직한 성인의 뒷발꿈치 소리, 아이 울음소리, 싸우는 소리, 저녁 12시란 시각이 우스울 정도로 심각한 층간소음은 인간의 공격성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다. 처음엔 지성인의 넓은 아량으로 ‘아이가 있어서 그렇겠지, 저렇게 우는 아이도 얼마나 힘들까?’라고 생각하고 넘기려 했다. 하지만 잠잘 시간이 다 되어서도 놀이터가 마냥 뛰어다니는 발걸음 소리에 우리 가족은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해버렸다. 



우리는 단체로 위층에 항의하러 올라갔고, 엄마는 삿대질과 고성방가로 케케묵은 분노를 쏟아부었다. 이렇게 해도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몇 일간은 소음이 줄어들더니 일주일이면 다시 원래대로였다. 그러면 참고 참다가 문자와 전화를 하고, 그것도 안 통하면 위층으로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위층 사람은 증오와 원한의 대상이 되었다.      



아무리 항의를 한들 줄어들지 않는 소음에 스트레스만 더 커질 뿐이었다. 우리는 큰소리로 노래를 틀어보고 노래도 부르고, 악을 질러보고 별짓을 다 해도 층간소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결코 위층 사람을 바꿀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소음을 상쇄하기 위해 항상 분위기 음악을 틀어놓고, 아이가 시끄러운 오후 2시 이후로는 가능하면 외출을 하고, 잠자리에 들 때는 소음차단용 귀마개를 착용했다. 층간소음은 우리 집의 삶의 방식까지 바꿔놓았다.      



 바뀐 것은 나의 생활방식뿐이 아니었다. 시끄러운 소리를 멈출 수 없는 윗층집 가족의 굴레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소리는 단지 소리의 문제가 아닌 복잡하게 얽힌 그들의 관계의 문제였다. 내가 겪는 층간소음은 단지 하나의 뿌리로 연결되어있는 고구마를 하나 캐낸 것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어떤 개입이나 도움도 줄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 그들의 불행을 간접 체험한 뒤엔 얼마나 지금 나의 상황이 감사한 것인가 새삼 깨닫기도 했다. 그들의 처지는 어떨까 생각해보니 달리 보이는 것이 많았다. 놓고 보자면 그들을 동정하거나 가엽게 여기는 것은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소음폭탄을 주었던 적군의 입장에서 헤아리는 것이 불편하고 어색했을 뿐이다.     



 본의 아니게 층간소음을 통해 큰 폭의 감정, 생각의 변화를 만나 신기하고 감사하는 마음도 든다. 맘에 안 드는 사람 투성인 일상엔 스트레스를 주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이때, 스트레스의 원인을 없애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을 통제할 수 없다면 얼른 포기한다. 그리고 생활방식을 바꾸던, 생각을 바꾸던 내가 바뀌지 않으면 고통이 계속된다. 적을 없애버리지 못한다면 적군 속에서 적응하며 어떻게든 잘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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