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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성 Mar 17. 2023

M#1 사랑, 행복, 선의 <행복한 라짜로>

행복은 성취가 아닌 행동 속에 있답니다


"행복한 라짜로 볼래?"

"그게 뭔데?"

"이탈리아 영환데 평이 엄청 좋아."

"그래? (포스터를 보고) 음... 근데 내 스타일은 아닌데."

"이 영화, 봉준호 감독님이 인상 깊게 본 영화래. 최고의 영화 중 한 작품으로도 꼽았어."

"(눈이 커지며) 그래? 그럼 무조건 봐야지"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장르일 수도, 배우 일수도 혹은 포스터 일수도. 나에겐 포스터였다. 첫 만남, 제목과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 끌리는 게 중요하다. 이것 때문에 안 보고 건너뛴 명작들도 정말 많을 거다. 그 유명한 신세계, 올드보이처럼 안 본 영화가 많다.


 물론 첫 끌림의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무엇이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순 없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행복한 라짜로>가 내 첫눈에 끌리는 작품은 아니었다. 단순하게도 이것이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았던 이유였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싶었던 이유도 정말 단순했다. 봉준호 감독님 때문이었다. 한국 영화의 거장이신 '봉준호 감독'님께서 이 영화를 최고의 영화로 꼽았다고 하니 너무 보고 싶었을 뿐이다.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최고의 영화라고 꼽았을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못 보면 거의 미칠 것 같을 정도로. 나는 바로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봉 감독님이 이 영화를 왜 최고의 영화로 꼽았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봉 감독님이 이 영화를 보시면서 세 번의 눈물을 흘리셨다는데…. 나도 정확히 세 번 울었다. 아마 같은 포인트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건 내 추측이다. 영화 하나로 봉준호 감독님과 내적 친밀감이 생겼다. (영화 스포일러 하기 싫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영화를 보고 난 직후, 나는 포스터를 다시 보고 싶어 졌다.


다시 봤을 땐 포스터 속 라짜로의 선한 눈에 시선이 멈춰 계속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 1초, 2초, 3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영화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포스터가 아니었을까?’


처음에 첫인상 때문에 보기 싫어했던 내가 오만했구나 싶었다. 그놈의 첫인상이 뭐라고. 첫인상은 별로였어도 마지막 인상은 최고였다. 아무리 첫인상이 좋다 한들 마지막이 별로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뭇잎으로 하관을 가린 이유는 라짜로의 선한 눈을 더욱 담으려던 의도였을 것이고, 제목 그대로 라짜로의 행복한 모습을 담는 게 이 영화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포스터였겠지. 처음에 나의 이목을 끌진 못했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계속해서 시선을 머물게 하는 최고의 포스터였던 셈이다.




 이렇게 <행복한 라짜로>는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영화가 되었다. 정말 안 봤으면 어쩔 뻔했는지.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해 준 영화였고, 라짜로를 보며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또 라짜로처럼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부럽기도 했다.






 라짜로는 노예 중에서도 노예, 사람들이 만만하게 보고 자기가 하기 귀찮은 일들을 모두 그에게 시킨다. “라짜로!” 여기저기서 하루 종일 라짜로를 부른다. 이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이 들은 대사가 라짜로 일정도로. 어느 날 새벽, 닭 농장 주인은 늑대로부터 밤새 동안 농장을 지키는 게 귀찮아 그에게 일을 넘기고 휴식을 취하러 간다. 라짜로는 밤을 새웠지만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하루 종일 거의 먹지도 않고 일만 한다. 그렇게 일만 하다가 열병을 앓게 되는 라짜로. 일손이 필요할 땐 수시로 “라짜로!”하고 부르더니, 이젠 자기가 잘 곳이 없다며 침대 하나 내어주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라짜로처럼 사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주변에서 본 적도 없다. 멍청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선한 의도로 행동할 수 있는 라짜로가 부러웠다. 계산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순수한 의도로 베푼다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걸 잘 알아서.



 선의를 베풀었을 때 고맙다는 한마디의 말도 어쩌면 보상에 포함될지도 모른다. 내가 선행을 베풀었는데 상대방이 당연하게 여긴다면? 과연 도와준 것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할까? 나는 그동안 정직한 의도로 진실한 선의를 베풀었던 적이 있었나 되돌아보게 되었다.


 식당에 갔을 때 나는 자연스레 물을 따르고, 수저를 놓는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고 내 자유의지로 한다. 내 앞에 앉은 친구들은 별생각이 없다. 나도 별생각 없이 하는 행동이지만 한두 번 반복되면 뭔가 기분이 찜찜하다. 왜 기분이 이상하지? 억울하진 않지만 억울함과 비슷한 감정이 든다. 그냥 아무도 안 하길래, 내가 해도 상관없어서 한 행동도 계속 반복이 되면 뭔가 기분이 이상해진다. 이럴 때 라짜로라면 어떻게 했을까. 순수한 표정으로 물을 따르고, 수저를 놓았겠지. 그리고 그것만으로 만족했겠지. 어쩌면 나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라도 바랬을지 모른다. 기브 앤 테이크, 주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사실 영화 속 라짜로는 예수를 빗대어 표현해 성자로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이라 나랑 비교할 수는 없다. 나는 평범한 사회 속 평범한 사람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선한 행동 속 의도가 무엇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조금은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하나하나씩 생각하고 재고 따지다 보면 어느샌가 나도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있을 것 같아 무섭다. 행동 속 담긴 의도 그대로, 만족하는 연습을 해보자. 나를 위해서.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혼나는 듯한 기분이 드는 영화. 영화 초반엔 제3자, 관찰자의 시점으로 라짜로를 바라보게 돼서 당하고만 사는 라짜로가 답답했다. 하지만 점점 라짜로의 시점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이 이것저것 시키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라짜로에겐 행복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라짜로에겐 행복이 될 수 있다. 단 한 명이라도 타인에게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인 것이다. 보답받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하는 행동이 아니라 행동 속 담긴 의도 그대로, 도와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하는 라짜로처럼 살고 싶다. 사실 생각해 보면 행복이란 건 참 간단한 것 같다. 성취가 아닌 행동 속에 있는 것, 그것이 내가 라짜로와 함께 찾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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