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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나무 May 07. 2023

'사흘'이 사라져 간다.

-그러니까  이 약 다 먹이고 사흘 뒤에 다시 오라는 말씀이죠?-

삼십 대의 젊은 엄마들이 가득 찬 소아과 대기실에서 그들 보다 한 ~참 나이 많은 오십 가까운 나이의 나는 간호사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한 번 들으면 기억한다고 자부심이 넘치던 기억력은 가물거리고 들어도 자꾸만 깜박거리는 나이라는 슬픈 자각을 한 나는 아이의 병원에서 더 긴장했다. 혹시 약 먹는 시간이나 방법 등이 잘못될까 봐 바짝 긴장하고 다음 진료일을 되물었을 때 


-아니요.-

단호하고 흔들리는 듯한 간호사의 목소리에 나는 놀라서 바라보았다.

-삼일 뒤에 오시라고요.-


순간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뭐지 하는 마음으로 우물쭈물 "그러니까 사흘..."과 단호한 간호사의 '삼일'이 몇 번 오가다가 간호사는 핸드폰에서 날짜를 가르치며 "이날 오세요" 했다.


괜한 실랑이가 생긴 것 같은 분위기에 앞에 앉은 젊은 엄마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나는 그냥 

- 아.. 네... 감사합니다.-


하고 나오는데 내 발음이 이상했나. 혹시 저 간호사가 사흘이라는 말을 모르나. 그럴 리가. 이게 뭐지 하는 복잡한 생각을, 약국에서 뽀로로 비타민 사러 가자고 조르는 아이에게 이끌려 약국으로 들어서며 아이의 번잡스러움에 잊어버렸다. 하지만 두고두고 한 번씩 그 기억은 선명했다.


몇 년 뒤 신문 기사에서 요즘 사람들이 '사흘'이라는 단어를 잘 모른다는 기사가 도배된 듯 나왔고 텔레비전 뉴스에서도 나왔다. 나는 내 자존심이 회복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혼자서 그럼 그렇지 그 간호사가 사흘이라는 단어를 몰랐던 거야. 웅얼거렸다. 그리고 나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지만 듣는 사람들은 뭐 그런가 보다 하는 듯 심드렁했다.


그리고 나자 갑자기 좀 쓸쓸해졌다.

이제 어쩌면 사흘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사흘... 사흘.. 자꾸 되뇌어 본다. 더 아름답고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나 이틀과는 또 다른 의미가 사흘에는 있다.

사흘은 정확한 의미의 72시간이 되는 3일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다. 하루나 이틀은 너무 가까운 거 같고, 나흘이나 닷새는 너무 먼 거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때 심정적으로 사흘은 가장 적절한 시간이 되고는 한다.  그런데 그 사흘이 사라져 간다. 아니 어쩌면 내 딸아이가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사흘'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예전에 시용했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뒤엔 잊힌 아름다운 단어에 적힐지도 모른다.


아이가 말을 배울 때 일 이 삼을 가르치고 하나 둘 셋을 백까지 가르치고, 하루 이틀, 사흘을 가르쳐서 확인했다.  그때는 우리 아이가 요즘 아이들처럼 편한 말만 사용하고 그 말들을 잘 쓰지 못할까 봐 걱정했지  이렇게 사라져 가는 말이 되어 쓸쓸해할 줄은 몰랐다. 


내가 '사흘'이 사라진다고 애석해하는데 사춘기 딸은 그 말 배울 때 힘들었다며 '삼일'이라는 말을  쓰면 되지 엄마는 지나치게 선생님 같다고  따끔하게 말하고는 룰루랄라 거리며 방으로 들어간다.


언어는 언중(언어를 사용하는 대중)이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단어가 살아남거나 사라지는 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느냐 아니냐에 따른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은 시간을 흘러 세대를 넘어 사용되고 그렇지 못한 말은 사라지는 것이다.


순수한 우리말은 훈민정음 창제 때와 비교해서 70퍼센트 이상이 한자어나 다른 언어로 대체되었다고 언젠가 책에서 읽었다. 언어는 계속 변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어릴 때 우리 할머니나 우리 엄마가 사용하던 그 생생한 언어들이 이제는 예스럽거나 참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렇게 변해 가고 사라져 가는 것이 어쩌면 순리일 지도 모른다는 나름 합리적인 사고를 해 보지만 그래고 내가 사랑하는 이 아름다운 단어들이 사라져 간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쓸쓸해하는 것은 내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이 든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사람들이 사용하면 살아서 반짝거리며 이야기를 만들고 역사를 만들어 가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말도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으면 잊힌다. 억지로 어떤 단어를 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사용되면 살아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라진 단어들도 시나. 노래 가사에 사용된 단어들은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지고 살아나기도 한다.


문득 내가 사용하는 단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사흘'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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