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비망록'을 읽은 것은 스물넷은 아니었다.
아마도 서른을 한참 넘어 넘실거리는 나이에 다소 숨이 차던 시기였을 것이다.
열넷 어설픈 문학소녀에서 절필을 결심한 이후 시를 다시 읽게 한 시였다.
스물넷이 아니었고 스물다섯도 예저녁에 지나버려 쓰다만 편지를 다시 쓸 수도 없었지만 나는 스물다섯이 아닌 서른다섯에도 절벽에 피우고 물 위를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 일 없는 그 무심한 젊음의 시간들이 갑자기 횟집 수족관에서 끌려 나와 온 힘으로 파닥거리는 횟감처럼 파닥거렸다. 나는 그 긴장과 벅참에 시집을 사서 집으로 가는 666번 버스를 타고 가면서 계속해서 심호흡을 했다.
우연히 지나가다 들른 서점에서 우연히 손 끝에 닿은 그 시를 나는 사랑하게 되었다.
나에게 몇 초 만에 시와 사랑에 빠지게 한 시였다.
다시 이십몇 년 만에 '비망록'을 읽었다.
이제는 시를 읽지 않아도 젊음을 추억하지 않아도 숨이 가쁜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슬프게도 숨차지 않고 슬프다.
그것도 아프지 않은 바늘로 가슴바닥을 살살 간지럽히는 것 같은 슬픔이 서서히 퍼져서 온 가슴으로 가득 찬다. 긴장과 벅참과 설렘이 안개처럼 슬픔으로 퍼져든다.
사춘기 딸에게 엄숙하게 엄마를 시에 빠져들게 하 시라며 추천하고 싶은 마음에 시집을 딸아이 책상 위에 놓았다가 액자에 가득한 딸아이 얼굴을 보자 현타가 왔다. 니가 내 딸이다 싶게 한 번씩 시니컬한 딸이 이 시를 읽고 할 말이 상상이 된다. 아니 아이는 이 시를 나처럼 그렇게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 시 비망록은 내 인생의 비망록의 한 페이지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