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면 돌은 내 삶의 일부가 된다. 주변에 정말 많은 돌들이 보인다. 그 돌은 구멍이 있다. 구멍이 불규칙하게 많이 있다. 이쁘지 않다. 울퉁불퉁 못생겼다. 대리석과 강가의 자갈같이 이쁘지 않다. 난 이 못생긴 돌들과 항상 함께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성인이 되어도 그 돌들과 항상 함께 했다. 육지에는 선남선녀가 많고 반듯하고 잘 사는 사람이 많다는데.. 그들은 대리석 자갈과 함께해서 그런가 보다. 나는 그 못생긴 돌과 함께해서 그런지 얼굴도, 옷도, 집도 구멍이 숭숭 나있다. 이름도 할아버지 같다. '현무암'이다. 다이아몬드, 큐빅 이렇게 이름을 지었으면 좋지 않을까? 제주 어른들은 뭐가 좋다고 이 현무암으로 집을 두르기까지 한다. 창피하다. 나는 애꿎어 길가에 있는 작은 현무암을 찬다.
현무암은 어린 시절 나의 화풀이 해소제가 되어주었다. 하굣길에 문구사에 들려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사 먹으러 갔다. 항상 궁금하던 것이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어찌 다른 곳에서 온 듯 항상 돈이 많은지 문구사에 오면 분식으로 끝나지 않았다. 대리석 같이 빛이 나는 금모터가 들어 있는 미니카를 사며 자랑했다. 친구들이 즐거워할 때 나는 돈이 없어서 친구의 빛나는 눈빛을 현무암처럼 바라보곤 했다. 그들이 부러웠지만 내 속을 내 비출 순 없어 꾹 참고 있다가 집에 돌아가며 시기심에 현무암을 발로 찼다.
성인이 되어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맡아 수행을 하게 되었다. 그 프로젝트를 처음 맡는 거라 어렵기도 했고 헷갈리기도 했다. 나는 잘하고 싶었다. 신입사원이면 신입답게 물어보면서 해야 할 프로젝트를 내 마음대로 만들어 제출하였다. 혼자 알아서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일까? 신뢰를 얻고 싶어서일까? 하지만 상사는 내 프로젝트를 보며 이게 뭐냐며 화를 내었다. 그날도 현무암처럼 서있었다. 퇴근시간, 생을 다한 사람처럼 말라비틀어진 채 길을 걸었다. 난 길가에 애꿎은 현무암을 멀리 차버렸다. 오늘은 그 현무암도 짜증 났다. 언제나 나에게 발로 차여도 대굴대굴 굴러가는 모습이 신나서 통통 튀는 아이 같았기 때문이다. 달려가 힘껏 한 번 더 차버렸다.
제주의 현무암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함께한다. 집을 지켜두는 울타리가 되어주었고 죽을 땐 무덤 주변에 돌담을 쌓아 무덤을 지켜준다. 그리고 현무암은 나의 화나고 아픈 마음과 함께한다. 나의 아픔, 슬픔을 발끝에 모아 차버리면 그 돌이 내 감정을 측정해 주듯 멀리 날아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준다. 성큼성큼 다가가 쭈그려 앉아 눈을 감고, 돌을 만졌다. 나는 잠시 현무암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차여도 그 자리에서 우직하게 기다려주는 현무암 나는 그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