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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na Dec 05. 2019

아직, 이직이 어려워서

광고회사 일기 #1

이직을 했다. 첫 회사에서 6년을 보낸 뒤 맞이한 첫 이직. 광고회사 힘들다고 그렇게 하소연해 놓고, 나는 결국 다시 이곳이다. 역시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다시 찾은 광고회사는 어딜가나 비슷한지, 처음 오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모습이었다. 야근을 하고, 주말 출근을 하고, 또다시 밤샘을 하는 일상의 연장. 모든 광고회사의 숙명인가 싶다.


나는 입사한지 고작 일주일의 병아리로, 아니 경력직이니 중닭쯤 되려나. 중닭으로 이 팀에서 칼퇴 요정을 맡고 있다. 불편하고도 달콤한 휴식이 얼마 가지 않을 거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앉아만 있자니 답답하긴 하다. (일 생기면 더 답답할 일이 많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직을 하고 나서 달라진 건 거의 없다. 하필이면 위치도 비슷한 곳에 취직을 해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출근길도 똑같고, 걸리는 시간도 비슷하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우체국을, 여기서도 이용한다.


(이전글 참고 : 저거 완공되면 퇴사해야지 - https://brunch.co.kr/@wkdtpgml20/22)


이쯤되면 내가 저 우체국이랑 무슨 인연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진지한 고민이 들 정도다. 그밖에도 하는 일도 이전과 거의 비슷하고, 심지어 연봉까지 같다. 말하자면 그냥 앉는 위치만 바꾸어 리프레쉬하는 셈이다. 이직을 했는데도 안 한 기분이랄까. 그런데 왜 이 곳을 왔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 회사를 선택한건 순전히 불안감 때문이었다.


내가 갈만한 회사가 있을까? 취직할 수 있을까? 연봉을 더 올릴 수 있을까? 새로운 회사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연봉을 올리면 그만큼 능력을 보여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 회사를 거절하고 나면 갈 곳이 없는 건 아닐까? 


물음표로 시작되는 수많은 불안감은 선택의 기로에 안개를 끼게 만든다. 불안감에 기인한 물음에는 답이라는 것이 없다. 물음표에 고리 걸리듯 수많은 물음표가 얽혀 꼬일 뿐이었다.


잦은 이직으로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이런 불안감이 조금 덜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처음 이직을 해보는 나 같은 초보 이직자에겐 아직 이직이 어려웠다. 다행히 몇 군데의 회사에 붙었지만, 그럼에도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완벽한 회사란 없다더니, 어디가 마음에 들면 어딘가는 꼭 마음에 걸렸다. 붙었던 모든 회사가 그랬다.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할까봐 그것이 두렵고 불안했다. 주변에 수 차례를 묻고, 종이위에 장단점을 사각거리다가, 나중에는 온라인 운세에라도 의존해본다. 동쪽이 길하다고? 아, 이 회사인가. 


하지만 그 안에 답이 있을리가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내 마음이 향하는 방향이 진짜 답이라는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그 어디로도 향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직의 목표가 없었던 탓이었다. 쉬고 싶어서 쉬었고, 돈 떨어져서 구했다. 그러니 성공적인 이직이란건 사지도 않은 복권이 당첨되길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국 나는 입사했다. (물론 오늘의 운세를 가지고 고른 것은 아니다) 입사를 결정하고, 출근을 하면서도 수많은 물음표는 아직도 나를 괴롭힌다. 좋은 선택이었을까?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제와서 뭘 어쩌겠는가, 그냥 똑같이 광고회사에 다니는 거지 뭐. 에라 모르겠다 식의 말로 애써 불안을 삼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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