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이 닿는 곳 어디든

by 이소원


가끔, 아무 계획 없이 발길이 닿는 곳으로 떠나보는 것도 참 좋은 여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요즘 코로나로 여행을 못하면서 과거에 여행했던 추억이 계속 떠오르네요. 그중에서도 제가 대안학교에 있을 때 일이 생각나요.




강원도 원주에서 대안학교 다니던 시절 하루 일과라고는 기숙사에서 학교를 오가기를 반복하는 특별할 것 없는 지루한 일상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여러 가지로 마음이 울적해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기숙사 사감 선생님께 서울에 있는 친구 집에 놀러 다녀오겠노라고 거짓말을 하고 원주 시외버스터미널로 갔어요. 당시에는 미성년자라 어딜 가도 항상 선생님들의 허락을 받아야 했어요. 그분들이 곧 저의 선생님이자 보호자였으니까요.



저는 학교를 마치고 바로 터미널로 가서 부산으로 가는 가장 빠른 버스표로 끊었어요. 부산에 도착하니 이미 늦은 저녁이었어요. 학생이라 돈이 많지 않아 사우나에 가서 하룻밤을 보냈어요. 꽤 괜찮은 방법이었어요. 다음날 해운대로 가서 추운 겨울 꽁꽁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여 줄 어묵과 어묵 국물을 머셨어요. 떡볶이도 함께요. 포장마차 사장님이 혼자 왔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왔다고 하니까 “혼자 청승맞게 친구 같이 오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저는 어묵 국물을 마시며 가볍게 웃어넘기고 바로 나왔어요. 아저씨의 말이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 걸리긴 했지만,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어요.




저는 곧장 해운대 해변으로 갔어요. 다정하게 손 잡고 거니는 연인들,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하하호호 웃고 떠들며 이야기하는 친구들, 이제는 본인의 의무를 다해 자식들을 자신의 품에서 떠나보내고 홀가분한 마음과 한편으로 서운한 마음이 있는 어머니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누구 하나 사연 없는 사람이 없었어요. 저는 홀로 겨울 바다를 걸으며 셀카도 남겨보고 멍하니 바닷가도 바라보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그 순간에는 머릿속을 비우고 싶었어요. 불투명한 저의 미래도, 언젠 만날지도 모르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볼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생각도, 지난날의 저의 과거도 모두 내려놓고 그 순간에는 온전히 저에게 집중하고 싶었어요. 차갑지만 아주 상쾌한 겨울바다의 냄새와 공기가 저의 머릿속을 깨끗이 씻어주는 느낌이었어요. 한참을 바닷가를 거닐다 해변에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앉았어요. 해변가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울적했던 마음이 차분히 정리가 됐어요.




이유가 있더라고요.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듯이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에도 모두 이유가 있더라고요. 긍정적 감정이든 부정적 감정이든 말이죠. 갑자기 어딘가로 가고 싶어 무작정 버스 티켓 하나 끊어서 도망치듯 떠났던 부산여행은 저에게 아주 큰 깨달음을 줬어요. 물론 사감 선생님에게 선의의 거짓말 한 것은 잘한 일은 아니지만, 저에게는 아주 의미 있고 돈 주고도 못 살 값진 경험이자 아름다운 추억이 됐어요.



가끔 그럴 때 있잖아요, 모든 게 버겁고 지쳐만 갈 때 그럴 때 어디든 좋으니 발길이 이끄는 곳으로 떠나보셨으면 좋겠어요. 계획하고 이뤄가는 그 과정도 좋지만, 때로는 알 수 없는 일들을 궁금중을 품고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도 꽤 재미있고 도전해볼 만하거든요. 혹시 모르잖아요? 그 무계획 중에 둘도 없는 나의 인연을 만날 수도, 또는 아주 값진 경험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요즘처럼 갑갑하고 답답한 시기에 잠시라도 좋으니 어디든 다녀오시길 추천드려요.


저도 어디든 가고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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