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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Oct 17. 2023

무언의 스승

처음으로 내 명의로 된 집으로 이사하는 날이었다. 물론 임대 아파트였지만 그동안 대안학교에서 단체생활을 하며 지친 나에겐 혼자 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더없이 기쁜 날이었다.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힘든 줄도 모르고 단숨에 이사를 마치고 집 정리했다. 아무것도 없는 빈집에 가구를 들이고 청소를 며칠 동안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현관문을 열어놓고 집 청소를 하고 있던 나에게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오셔서 물었다.    

 

“젊은 사람이 어떻게 여기 들어왔대?”

“아, 저요?”


가볍게 웃어넘기려 했으나 아주머니는 본인의 궁금중이 풀릴 때까지 집요하게 질문했다.


“젊은 사람이 이런데 들어오기 어려울 텐데...”

“저 새터민이라 정부에서 임대 아파트 알선해줘서 들어왔어요.”

“아~그렇구나. 고생 많았겠네. 필요한 거 있으면 이야기해요.”   

  

아주머니는 궁금증이 풀려서인지 갑자기 격하게 반겨주며 앞으로 필요한 거나 궁금한 거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끝으로 아주머니와의 대화를 마쳤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적적한 마음에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했다. 털이 뽀글뽀글한 하얀색 포메라니안이었다. 하얀색 솜뭉치에 검정색 단추를 박아놓은 인형처럼 하얀 털에 새카만 코가 귀엽고 앙증맞은 나의 첫 반려견이었다. 뽀글뽀글한 털이 귀여워 이름은 뽕이라고 지어줬다. 뽕이를 입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머니로부터 강아지가 너무 짖고 울어서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강아지 때문에 시끄러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죄송하다고 정중하게 사과를 드렸다. 아무래도 강아지가 혼자 집에 있으면 많이 짖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날이 갈수록 아주머니의 민원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내가 정중하게 사과를 한 후에도 몇 번이고 불편하다며 이유 없는 민원을 제기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뽕이를 가족이 있는 집으로 입양을 보내게 되었다. 더 이상 강아지를 핑계로 이유 없는 민원을 듣지 않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뽕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크다. 조금 더 책임감이 있고 내가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이었을 때 입양을 했어야 했는데, 혼자 지내는 것이 외로워 입양했다가 끝까지 책임도 못 지고 다시 입양 보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뽕이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가족이 있는 집으로 입양 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문제는 뽕이가 집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주머니는 민원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알 수 없는 괴롭힘이 시작됐다.

      

당시 나는 대학생이라 낮에는 수업을 들어야 했기에 평일에는 집에 거의 없었다. 어쩌면 강아지가 많이 짖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문이 드는 건 그렇게 시끄러웠으면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시끄러웠을 텐데 정작 옆집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없는데 우리 집과는 엘리베이터를 사이에 두고 그 반대편에 그것도 가장 안쪽에 사는 사람이 시끄럽다며 민원을 제기하는 것부터 이상했다. 그때부터 아주머니가 조금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그때부터 아주머니의 괴롭힘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당시 대안학교 때 함께 공부했던 언니가 방학 동안 잠깐 우리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그거 관련해서도 시비를 걸어왔다. 이 집이 누구 명의로 되어있는데 마음대로 사람을 집에 들이냐느니, 여기 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느냐, 벌금 못 내면 감옥 갈 수도 있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로 나를 협박했다. 나중에는 함께 지내던 언니도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자기가 빨리 나가겠다고 할 정도였다. 우리 집을 감시하는 것도 모자라 어떤 날은 현관 문을 쾅쾅 두드리거나 창문을 통해 소리치기도 했다. 나와 언니는 말도 안 통하고 비상식적인 그 아주머니 때문에 한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할일 없이 하루종일 우리 집에 오가는 사람이 누군지 감시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주머니의 이유 없는 지속적인 괴롭힘에 너무 화나고 속상해서 담당 형사님께 이 사실을 말씀드렸지만, 형사님은 증거가 있지 않는 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그냥 조용히 넘기라고 했다. 그 말에 또 한 번 상처를 받았다. 도대체 법이 왜 있고, 경찰은 왜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정신적으로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데 증거가 없어서 처벌할 수 없다니 너무 황당하고 실망스러웠다. 처음 이사 온 날 나를 반갑게 맞아주던 아주머니의 모습은 이젠 악마의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 혹여나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기라도 하면 아주머니는  나를 겁주기 위해 말도 안되는 내용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다. 


“여보세요? 어 나야. 너 저기 법원에 아는 사람 있지? 있잖아, 그 사람.” 

“......”     


엘리베이터 안 거울을 통해 나를 쳐다보며 들으라는 식으로 혼자만의 연기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헛웃음만 나왔다. 복도에서나 엘리베이터에서 혼자 있다가도 나를 만나면 갑자기 핸드폰을 들어서 연기를 하는 아주머니의 연기를 보면서 처음에는 너무 화나고 억울했지만, 나중에는 안타깝고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뭐라고 저렇게 연기까지 해가며 공들이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뭐때문에 나를 그토록 미워하고 싫어하는지 모르겠지만, 짐작하건대 내가 새터민이라는 이유로 임대 아파트에 혜택을 받고 들어온 게 배가 아팠던 것 같다. 그것 말고는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미워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아주머니의 연기는 몇 달간 더 지속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본인도 지쳤는지, 아니면 지금의 남편이(당시 남자친구) 따끔하게 혼을 내줘서인지 더 이상 나를 협박하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     


순진한 마음에 호의를 베푸는 감사함에 나에 대해서 솔직하게 다 보여주었지만 돌아오는 건 알 수 없는 비난과 괴롭힘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게 바라봐 줄 것 이란 기대를 해본적도 없지만, 적어도 내가 살면서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그때 또 한 번 했다. 물론 나를 괴롭힌 아주머니는 아주 예외적으로 나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딜 가나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까. 나는 그 일로 한동안 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육체적 고통만큼이나 정신적 고통도 컸으니까. 혹시라도 엘리베이터에서 그 아주머니 얼굴을 마주칠까 걱정되기도 했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얼굴 보는 것조차 힘들고 역겨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그런 마음조차 없다. 

     

내 인생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도 않을 뿐더러,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내 자신이 흔들리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그 시간 또한 나에겐 무언의 스승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이보다 더한 일들도 많을 테니까.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낼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이 생겼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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