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by Norah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 최진석



영적인 인간은 속세에 찌든 사람을 인정해주지만 물질적인 인간은 도를 논하는 사람을 비웃는다. 이것이 수준 차이다. 인간에겐 무수한 등급이 있다. 그 급을 나눌 수 있는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인생에 대해 끝없이 사유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에는 경계가 확실히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끝도 없이 급과 결이 비슷한 사람을 찾아 헤맨다.


답장은 못 받았지만 10여년 전 교수님께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웬만하면 최교수님의 책이나 영상은 잘 챙겨보려 하는데 신간이 나와서 반갑게 읽었다. 노장 사상을 좋아하기에 제목도 한 몫 했으리라. 자전적 이야기라고 하지만 교수님의 다른 책들의 분위기와 많이 닮았다. 교수님의 정치적 행보에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그 사상이나 철학적 깊이와 맞먹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싶다.




<좋은 문구 발췌>


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내가 별이 되는 것이다. 이 순간의 삶 속에서 내가 영원을 경험하는 것 이것이 삶의 목적이다.


우리는 현살에서 목적보다 목표를 추구하며 산다.


고급스러운 것은 자신만의 자부심을 감추지 못한다.


말수가 적은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의 의사를 세계에 전달하는 방식을 따로 갖는다.


당연한 일상에서 생경함을 발견하는 능력을 가진 자가 천재일지도 모른다.


왜 사람들은 같은 일에 각기 다른 깊이로 반응할까? 그 이유는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근기 즉, 그 사람만의 바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제대로 사는 일은 스스로 불편을 자초하는 일과 같다.


덕이 있는 사람은 타인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덕을 갖추고 있음에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비유하여 말하면 물이 잔잔하게 멈추어 수평을 이룬 상태다. 안에 깊은 고요를 간직하고 출렁이지 않는다. 덕이 출렁출렁하게 드러나지 않을 정도가 되면 사람들은 거기에 이끌려 떨어질 수가 없다. 외적으로 출렁이는 모습은 기능에 갇혀 경박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말한다.


영감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방향을 바꾸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


책임성을 ‘나’가 아니라 ‘우리’에게 두는 한, 진화에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장자의 욕망은 소요유, 즉 자유로운 인간으로 완성되고 싶은 것이었다. 그 욕망이 끊이지 않고 더욱 강해지며 계속되어서 영감을 맞이할 수 있었고 결국에는 삶의 근원을 자세히 살필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인간은 궁금해하는 존재이다. 사람을 그 사람으로 펼쳐 나가게 하는 힘은 욕망이고 궁금증이다. 사람은 모르는 곳에 집중한다. 그런 인간은 지치지 않는다. 모르는 곳에 관심을 표하지 않는 인간은 지친 인간이다.


사람은 끝마치지 못했거나 완성하지 못한 일을 잊지 않고 머릿속에 간직하게 되는데 이것을 자이가르닉 효과, 미완성의 효과라 부른다.


득도한 자는 세상과 우주의 이치에 밝아서 그때그때 상황을 잘 살펴 매우 적절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해를 당하지 않는다 - 장자 추수


노자는 우리가 성공의 기억에 갇히는 것을 경계하라고 다음과 같이 권한다. 공이 이루어지면 그 공을 차고앉지 말아야 한다.


체 게바라에게는 혁명만 있을 뿐 권력이라는 의자에 앉으려는 정주의 욕구가 없었다.


진짜 자유인은 도시에 살면서도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을 관조하며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이란 것을.


침묵은 자신의 성스러움을 드러내며 외부의 성스러움을 영접한다.


실력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 중 하나가 유연성이다. 유연성은 자기 각성과 반성을 통해서 상대에게 양보함으로써 내 이익을 더 크게 실현시킬 수 있는 실력이다.


가벼운 것은 감각적이어서 빨리 오고 두텁고 무거운 것은 느리게 온다. 느리게 오는 것이 진짜에 가깝다.


신념은 각자에게 진리다. 진리를 양보하고 마음 편할 수는 없다.


루쉰은 말한다. 우매하고 연약한 국민은 바로 구경꾼으로 전락한다. 자기 자신의 생명이 좌우되는 일에서도 구경꾼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그는 구경꾼이면서도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옳은 사람으로 조작해버리는 우매한 사람을 아큐라 이름지었다.


공자는 인격을 완성하는 최고의 방법을 말해준다.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


여름벌레한텐 얼음을 말해줄 수 없다.


사회를 움직이는 엔진은 크게 두 개다. 정치와 교육.


두터운 축적의 공, 즉 적후지공을 의식하지 않은 채, 대붕의 자유나 소요유를 흉내낸다면 다 방종에 가까울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117. Having it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