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깨달음은 없다
-U.G. 크리슈나무르티
<좋은 문구 발췌>
사람들은 나를 '깨달은 사람'이라고 합니다만 나는 그런 식의 표현을 아주 싫어합니다. 그들은 내가 기능하는 방식을 적절하게 서술할 만한 다른 말을 찾을 수 없어서 그렇게 말합니다. 한데 나는 깨달음 같은 것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나는 깨달은 사람이 되고 싶어 평생 깨달음enlightenment을 좇아왔고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특정한 어떤 사람이 깨달았는가 깨닫지 못했는가 하는 따위의 의문은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외부에는 어떤 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두려움에 몰려서 신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신이 아니라 두려움입니다.
나는 깨달아야 할 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우쳤습니다. 내가 말하는 깨달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행위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 드러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여러분의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부르는 겁니다. 추구는 이미 존재하는 그것이 자체의 고유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을 방해합니다.
찾으려는 노력은 항상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하기 때문에, 여러분 이 아주 심오하고 성스럽다고 여기는 모든 것은 의식에 달라붙은 때에 불과합니다.
나치케타Nachiketa: 서사시 형식의 인도 경전인 《카타Katha 우파니샤드》에서, 죽음의 신 야마 다르마라자Yama Dhararaia의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야마에게 궁극의 진리와 죽음에 대해 집요한 질문을 던져 마침내 해탈을 얻은 소년의 이름.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을 상징.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모든 종교적 시스템은 헛짓이요 사기며, 자각을 통해서 심리적 변화과정에 이른다는 식의 모든 이야기는 헛소리라는 말 말고는 인류에게 줄 특별한 어떤 메시지도 나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심리적인 변화를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연스러운 상태'란 오로지 생물학적 변화를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애정affection은 어떤 감정이 자신에게서 어떤 것을 향해 흐른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든 것에 영향을 받는다be affected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 자연스러운 상태는 엄청나게 민감한 상태입니다만 이것은 타인들에 대한 정서적 교감이 아니라 감각들의 물리적 민감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게는 어떤 타인들도 없고 따라서 어떤 분리도 없다는 의미에서의 교감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한데 피안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피안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주워들은 것, 그런 것에 관해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런 지식을 투영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피안beyond'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러분 이 갖고 있는 지식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피안에 관해 여러분이 갖고 있는 지식이야말로 여러분이 앞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없고 궁금한 것이 없을 때 그것이 곧 깨달음입니다. 할 일을 다 마친 겁니 다. 여러분은 여기서 걸어 나갈 겁니다. 자신의 상태에 관해서 설명하는 어떤 사람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깨달음에 관한 어떤 질문도 하지 않을 겁니다.
문화나 문명 같은 것들은 늘 우리를 일정한 들에 맞추려고 합니다. 그럴 때 인간은 인간이 아닙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일러 '진기한 동물'이라고 부릅니다. 문화의 구속을 받고 있는 한 인간은 진기한 동물 정도에 머무르고 말 것입니다.
생각은 우리를 소모시키며, 불행히도, 우리가 생각을 그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방법은 우리를 더욱 더 소모시키는 결과를 빚어냅니다.
문화는 개성이 스스로를 자기답게 표현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도덕적인 사람은 겁쟁이입니다. 도덕적인 사람은 겁 많은 사람, 새가슴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남들의 행실을 비판합니다.
참으로 도덕적인 사람(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면)은 도덕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도 않으며, 남들의 행실을 비판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은 항상 이기적이며, 그가 이타적임을 미덕으로 삼고 있는 한 끝내 이기적인 사람으로 남을 겁니다.
성자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려고 애쓰며, 따라서 그는 늘 이원 성의 장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반면에 현자는 분리되지 않은 의식 상태 속에서 존재합니다. 현자는 자기가 자유롭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따라서 그는 남들을 해방시켜 줘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그냥 존재할 뿐이고 그 상태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조용히 사라집니다.
진정한 길은 자기 자신의 길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길을 다 버려야 합니다. 다른 누군가의 길을 따라가는 한 그 길은 생각의 소산이며, 따라서 사실은 새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에 늘 다니던 옛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