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킨스의 지혜
-데이비드 호킨스
<좋은 문구 발췌>
처음에는 영적인 것에 호기심이 생깁니다. 그러다 어느새 자동적으로 영적 성장과 영적 개념에 끌리고 그런 것을 이해하여 혜택을 얻으려는 욕구에 끌립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장할수록 세상에 혜택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전 세계가 우리에게 혜택을 받습니다.
너무 간단해서 맨날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 어느 때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게, 자애롭고 친절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관대하고 온화하고 생명에 힘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빠르게 영적으로 진보하려면 생명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존재가 되기로, 온갖 것으로 나타나 있는 생명의 아름다움과 완벽함을 목격하는 존재가 되기로 결정합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먼저 괜찮은 인간이 되세요. 그렇게 해보세요. 사려 깊은 괜찮은 사람이 되세요. 나갈 때 문을 닫겠다고 했으면 꼭 그렇게 하세요." 사람들이 나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직해야 하고 현명함을 중시해야 하고요.
현명한 사람들은 상냥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함께 있기에 안전합니다.
진정한 영적 스승은 배우려는 사람에게 자유를 주지만 소위 돌팔이들은 구속하려 듭니다. 소유하고 통제하려 들고 뭘 하라고 시키려 듭니다. 영적 진실은 무상으로 주어지고 그 진위는 조건에 따라 바뀌지 않습니다. 누가 믿든 안 믿든 달라지지 않습니다. 증명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증명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증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심성은 지혜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조심성은 두려움과 다릅니다. 조심성은 합리적입니다. 반면에 악몽을 꾸어 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듯이 두려움은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공황 상태 같은 것으로 닥칠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자기 보호를 없애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불합리한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합리한 두려움은 직면하면 많이 극복됩니다.
나의 능력을 다해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될 때 나의 의무가 완수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그에 따른 결과들은 더 이상 내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신성에게 달려 있습니다.
사실은 좋은 유머 감각이 도덕적인 척, 고결한 척하는 성가신 선행들보다 영적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관상은 예리한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생활 방식입니다. 관상에 가장 가까운 고전적 가르침은 마음챙김입니다. 마음챙김은 항상 알아차리는 것, 자기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늘 의식적으로 알아차리는 것, 자기 내면의 정신적 작동을 알아채지 못해 의식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 음에 대해 익히 알게 됩니다. 마음에 대해 점점 더 익히 알게 되면 마음은 실제로 변화합니다.
관상적 생활 방식이 더 효과적입니다. 관상은 세상에서 존재하는 태도입니다. 자기가 공부한 대로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높은 의식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기능하지 않습니다. 사실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통계적으로 정말 이례적인 일입니다. 대부분 영구적인 은거처에 머물거나 아쉬람에서 삽니다.
사람들은 분개하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피해자가 되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피해자가 되는 일에 푹 빠집니 다. 피해자 행세를 합니다. 대중 매체에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도취를 미화하는 모습이지요.
의식 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소유에 관심이 아주 많아서 가진 것에 따라 사람을 이렇게 저렇게 평가합니다. 중간 수준의 사람들은 활동에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는지, 그 활동에 따라오는 직함은 어떤 것인지에 따라 사람의 지위를 평가합니다. 높은 수준의 사람들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존재가 되어 있는지에 관심 있습니다. '~인 상태', '존재 상태', 나라는 존재에 관심 있습니다. 사람의 위상, 그 사람의 중요성에 관심 있습니다.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에 관심 있고 내가 되어 있는 존재에 관심 있습니다.
병이란 것이 치유되기 위해 생기는 어떤 것이 됩니 다. 그래서 병을 교훈을 주는 것으로 봅니다. 병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봐. 내가 나타내는 것, 내가 상징하는 것을 치유해 줘. 당신의 죄책감을 치유해 줘. 당신의 자기혐오를 치유해 줘. 당신의 한정된 생각 형체를 치유해 줘. 내가 치유될 수 있도록 나를 사랑하는 수준으로 올라와 줘." 병은 영적으로 성장하라는 요구입니다. 병은 무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내게 알려 주는 그칠 줄 모르는 잔소리꾼입니다. 무언가를 다른 식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알려 줍니다.
우울증의 기저에는 두려움이 있거나 두려움들의 조합이 있습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방법 하나는 두려움을 모두 살펴보는 것입니다. 우울증은 제쳐 놓고 두려움만 처리합니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에 대한 신의 사랑과 뜻이 존재한다는 가장 좋은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