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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나는 나

by Norah

나는 나

- 캐럴 피어슨




<좋은 문구 발췌>


이제는 영적 가르침의 발아래 있기보다 소외된 이들과 함께 앉아 통밀로 만든 차파티와 녹두로 끓인 달 수프, 감자 요리를 나눠 먹는 걸 더 자주 하게 되었다. 전사에서 '이타주의자' 의 얼굴로 바뀌어야 함을 깨달은 것이다. 타인에게 기쁨이 되어 줄 때 더 큰 행복이 온다는 진리를.


순수한 행복을 회복하는 것, 그것 외에 인생에 다른 의무는 없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삶이 나에게 묻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은 세상을 향해 던져진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그 물음에 나의 해답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세상이 주는 답에 따라 살아갈 뿐이다. -칼융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 이 '자기 앎'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것 없이는 어떤 행위와 성취도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그 탐구 여정의 끝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융이 자서전 『기억, 꿈, 회상』에 쓴 첫 문장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의 전 생애는 무의식이 자기실현을 해 나간 이야기이다.‘


피어슨의 명저인 이 책(원제 『내 안의 영웅 The Hero Wilbin)은 인간의 영혼, 혹은 마음 세계로의 탐험 여행이다. 융이 말했듯이,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야말로 깨어서 사는 것이다. 내 안의 나가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가 바로 그 탐험 여행을 떠날 때이다.


고아원형, 방랑자 원형, 전사 원형, 이타주의자 원형, 순수주의자 원형, 마법사 원형


마법사 원형은 자신의 미래를 마법처럼 변화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지닌 사람이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삶의 주인을 자신으로 설정하는 유형이다. 마법사는 삶을 선물로 보며, 이곳에서 자신이 할 일은 자신의 선물을 세상에 주면서 삶과 완전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우리 안의 마법사가 만드는 이야기 구조는 '내가 어떻게 나의 세계를 바꾸었는가?이다.


융이 말했듯이,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야말로 깨어서 사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영웅의 여행에는 어느 정도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에고는 필사적으로 안전을 원한다. 반면에 영혼은 진정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한 가지 진리는 이것이다. 모험없이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시련없이는 깊어질 수 없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길이 진정한 길인지 알려면, 그 길이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지 보면 된다.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길을 아는 사람은 오직 당신 자신뿐이다. 행복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행복을 따를 때 여행은 보물을 가져다준다.


당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영혼에 진실하기로 마음먹을 때, 당신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하는 본보기가 된다.


그때는 그 때이고 지금은 지금.


고아의 딜레마는 누군가를 비난하며 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고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고통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경우에는 고통받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필요 이상으로 더 오래 고통 속에 머물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불평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걸 이야기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


지혜를 얻은 사람은 때가 되면 자신이 관계나 장소, 혹은 직장을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때가 바로 성장하고 다음 여정을 향해 나아갈 시기인 것도 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새로운 기회를 얻는 것임과 동시에 젊은 시절이 끝났음을 의미한다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자신에게 펼쳐질 미래와 성장의 기회를 기뻐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지금까지 함께한 사람, 직장이나 학교, 장소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충분히 인정한다. 지나간 일들에 감 사하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애도할 시간을 갖는다.


방랑자는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에서 정체성을 찾는다. 단연코 이들은 무리지어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다. 영적 생활에 있어서도 의심을 품는다. 특히 전통적인 도덕을 따르거나 순종하면 신이 그만큼 보상해 줄 것이라는 가르침에 대해서는 더욱 반발한다.


베푸는 법과 포기하는 법을 아무리 많이 배운다 해도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 그 희생은 의미가 없다.


자기 자신에 더 가까워질수록 덜 외로워진다. 자기 자신과 함께할 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어디든 '내가 먼저'인 곳에서는 자기 파괴적이고 중독적인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본성과 맞서 싸워 영웅이 되려 하지 말고,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믿음으로써 자기 존재의 고귀함을 주장해야 한다. 자신의 여행을 신뢰하기만 하면 틀림없이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도덕성은 종종 비겁함을 감추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 계율이 호소력을 갖는 것은, 그 계율을 따르기만 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힘들게 탐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믿을 때 고귀해진다.


지혜로운 순수주의자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가 아닌,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을 안다.


책 제목에서 순수주의자의 관점이 드러나는 『노래하고 춤추며 집으로 가는 길』에서 매튜 폭스(동서양의 지혜와 현대 과학의 우주론을 통합 교육하는 <창조영성대학>을 설립한 생태신학자)는 최고의 기도는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순수주의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직 갖지 못했을 때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안다. 또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것은 언제든 갖게 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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