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지옥에서 오셨나요?
"사실 이번에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난 것은 맞아요.
그렇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무슨 일이 있으신데요?"
"함께 하는 친구가 여기까지만 하겠다고 해요.
지금까지 버티고 온게 힘들었다고 말이죠."
"어떡해요? 그래 내가 봐도 그 친구 좀 힘들어보였어요. 어떻게 괜찮으세요?"
"사실 괜찮지가 않아요. 제가 그 친구에게 해준게 어딘데.."
문득 그녀의 얼굴에 주의깊게 보지않으면 보이지 않을만큼 미세한 표정의 변화가 보인다.
"그렇죠. 저는 이해합니다. 저도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늘 말썽이죠.
힘내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진심으로 도우려는 이가 있었다.
그녀는 모든 힘을 다해 죽음을 향해 가는 그의 온몸을 내 품으로 안아주었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누구도 그의 의지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기찻길을 타는 전속력을 향해 가는 기차가 멈추기위해 필요한 것은
브레이크만은 아니었다.
다른 그 무엇도 간절히 필요하다.
바로 저항의 시간.
그 저항의 시간을 배려받지 못한 기차는 스스로를 멈출 수 없다.
그렇다. 그녀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낸 착한 사마리아인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인다. 심지어 건강해보이기까지 하다.
충분히 위로해주는 이와 마주보는 사람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야기의 끝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 경우가 있다.
진실을 언제나 어두운 곳과 밝은 곳을 구별하지 않는다.
모든 곳을 비추기 마련이다.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 그녀는 생각한다.)
'그럴줄 알았지. 그렇게 힘들게 프로젝트를 이끄니깐.
잘 되어도 그렇게 반대급부가 올라오는 거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나는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잖아.
차라리 잘 안되어도 사람잃지 않는게 낫다니깐.'
'그렇게 잘난 척 하더니. 결국 그렇게 되는구만. ㅋ'
우리 곁에 또 다른 사마리아 인이 있다.
그들은 지옥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에게 지상은 남아야만하는 다른 별이었다.
자신이 이 곳에서 적당히 존재하기위해서
공감과 연민이라는 무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녀는 사마리아의 가면을 기꺼이 자신의 얼굴에 칭칭 둘러매기 시작했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슴 깊이 담긴 연민의 상처를 만져대길 시작한다.
그의 교모한 기술은 워낙 뛰어나서, 그들의 속내는 결코 쉽게 드러나질 않는다.
위장 사마리아인은 겉으로 보기에 선해보이는 눈매를 지니고 있다.
누구든 쉽게 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해주고, 연민감을 가질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녀의 연민에는 또 다른 마음이 담겨져 있다.
우월의 씨앗을 품은 그 마음은 연민을 빌미로 스스로를 위로 하는 장치가 된다.
타인의 불행을 보며 안타까워 하다가도 이내 돌아오는 길에 썩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아픔을 양식삼아 나의 우월감을 확인한다. 그들의 몸속에 담긴 지옥의 DNA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들은 경쟁해야 하는 사회에서 무럭무럭 자라났고,
타인의 아픔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사회에서 마침내 꽃피울 수 있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위장 사마리아인이 있다.
그들을 구별 할 수 있는 방법은 쉽지가 않다.
다만 공감의 패턴이 행동으로 잘 이끌어지지 않는 이를 생각해보면 좋다.
나의 속내를 드러내라며, 자신의 속내는 정작 쉽게 보이지 않는 사람.
공감의 기술이 뛰어난듯 보이지만, 정작 내가 아플때 내게 다가오지는 않는 사람.
말하고나서 왠지 모른 찝찝함 만을 남겨주는 사람.
그들의 표정은 진실되어 보이지만, 훈련 된 그 얼굴에는 진실된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다.
종잇장 처럼 그려진 낙서같은 얼굴로 내 마음을 훔쳐보는 그 눈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그렇기에, 악한 사마리안에게는 당신의 진짜 아픔은 드러내지 마라.
그 아픔은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먹잇감이 될 테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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