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 인상 깊었던 장면(1)- 지금 우리 학교는

지금 우리 학교는 명장면

by 생각의 해우소


어떤 작품이 좋다 말할 때 메시지나 플롯 같이 거창한 걸 근거로 대야 할 것만 같다. 평론가처럼 전체를 조망하고 요약해서 비평해야 되지 싶다. 그런 시도를 안해본 것은 아니라 참고서의 정련된 말들처럼 허세 섞인 분석도 해보았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어떤 작품에 빠지는 건 늘 한 장면 때문이었다. 작품을 관통하는 무엇이 아니라 어떤 대사가, 행동이, 그것의 충격이 나를 작품에서 헤어나오기 힘들게 했다. 그런 장면들은 작품이 끝나고도 다시 찾게 된다. 근래에 나를 작품에 빠지게 한 장면들을 모아보겠다.


이 장면이 눈물나는 까닭은 집에 가지 못하게 된 사람이 집에 가자고 앞장서는 아이러니에 있다.


첫 번째는 가장 최근에 본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10화에 나온 희생 장면이다. 사진의 주인공은 극 중 브레인을 담당하는 전교 2등 오준영이다. 주인공 무리와 학교 체육관을 탈출하다가 좀비에게 물린다. 성인 키 만한 철망을 방어막 삼아 둥그렇게 둘러 전진하는 와중이었다. 철망 너머로 비집고 들어온 좀비로부터 친구를 구하다가 손을 물렸다. 수 분 내에 자신도 좀비로 변하게 될 거란 걸 알았고, 홀로 철망 밖으로 넘어가 전진을 방해하는 좀비들을 떼어낸다. 친구들을 마주보고 철망을 끌어당기며 "가자, 집에 가자"고 절규한다.



자신이 곧 좀비가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의 반응은 보통 어떠할까? 극 중 다른 인물들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남을 탓하거나 공포에 질려 있기 마련이었다. 오준영은 좀비가 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처지보다 친구들의 상황을 먼저 생각했다. 어차피 좀비가 될 마당이니 나가서 방패 역할 해주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막상 그 상황에 그처럼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몇 없을 것이다. 그는 결단을 내렸고, 친구들은 좀비에게 물어 뜯기는 그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머금고 철망을 민다.



생존 본능 앞에서 우리는 자신이 과연 추악해지지 않을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한다. 자기 목숨만을 우선시하는 이기적인 인물들의 모습에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을 마냥 비난하지만 못한다. 주인공 무리가 비록 가장 인간성을 잃지 않은 생존자들임에도, 근원적으로 그들 한 명 한 명이 무엇보다 자신의 구원을 바라고 있을 것임을 우리는 부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에는 동물의 생존 본능마저 뛰어넘곤 하는 강력한 무언가가 있다. 생사고락을 함께하고, 도움을 주고 받고, 누군가의 희생으로 나머지가 구원받는 경험을 반복해오면서, 어느 새 학생들은 다 같이 살지 못하느니 다 같이 죽자는 말 같은 걸 내뱉는다. 좀비로부터의 탈출은 곧 나의 탈출이었겠으나 어느 샌가부터 그것은 우리의 탈출이 된다.



'집에 가자'는 외침은 자신의 구원이 좌절된 상황에서 본능이 주문하는 말이 아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충동적이고 반사적이기 마련인 인간의 행동들은 생존 본능이 이끄는 것기도 하지만 잠재 의식의 소관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친구들과 우리가 눈시울을 붉히는 것은 오준영의 결단에서 깊이 잠재되어 있는 그의 마음을 엿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의식의 표면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오던 이의 숭고한 결심이 아니라, 자각하지 못하는 새 시나브로 생겨버린 마음이 벌인 충동이기에 더 진실되고 슬픈 것이다. 집에 가지 못하게 된 사람이 집에 가자고 앞장서는 아이러니. 그러나 친구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 이에게는 그것이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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