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수능 끝난 아이들에게 보내는 말

by 생각의 해우소

수능*[수능]은 사회에 순응[수능]하는 거야! 역시 너가 수시만 쓴 데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그래서 우리 반에서 수능 친 학생들의 수능? *[ ]는 발음 표시


졸업을 앞둔 고3 아이들의 혼란한 심정을 대변하여 대화로 꾸며보았습니다~^^ 얼마 전에 수능이 끝났습니다. 대입은 개인에게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이벤트여서 오직 수험생의 편의만을 위해 공권력이 동원되는 시험이 수능 말고 또 없습니다. 그 전국적 요란함에 대입에 별 관심이 없던 아이들마저 역으로 자신이 인생에 중요한 시기 중 하나를 통과했음을 얼핏 느낍니다.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이라고 이 시기의 의미를 스스로 발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앞날을 논리적으로 예측하는 합리주의자이기보다 실증 앞에 호되게 당하고서 깨닫는 경험주의자일 때가 많아서, 훗날 지금을 돌아보고서야 시류에 잘 편승해왔음을 고백하기도 하고 그게 시류였을 뿐 나의 물줄기는 아니었음을 깨닫기도 합니다. 물론 학교에서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제발 시류든 뭐든 좀 하나 붙잡고 타기나 하라고 말하고 싶은 답답한 마음이긴 합니다.


문명은 양육에 가장 많은 품과 시간이 드는 동물인 인간을 위해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식을 고안했고, 우리는 온실 속에서 자라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너무 따듯하게 자라 냉혹한 실존을 마주하는 연습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르트르는 인간 삶이 태어나면서 내던져진 것이라 말하는데 문명의 아이들은 보통 고등학교 졸업이 가까워서야 실존 비스무리한 아지랑이를 어렴풋 손으로 헤쳐 봅니다. 주로 앞으로는 뭐 하고 사나에 대한 고민들로서 그 아득한 감정들을 처음 맞닥뜨립니다. 좋은 대학에 간 친구들은 그들대로 감정을 유예해 뒀다가 뒤늦게 쓴맛을 보기도 합니다. 게임에는 고수가 초보자를 도와주는 ‘쩔’의 개념이 있습니다. ‘쩔’을 받는 초보자는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하지만 고수 옆을 따라다니기에도 벅차 자신이 지금 무슨 플레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게임의 본질과 멀어집니다. 제도권의 쩔을 받은 아이들은 사회 적응에 필요하다는 온갖 능력치들을 빠르게 습득하지만(정말 그랬는지조차, 정말 그것이 적응에 필요한 것인지조차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인생이란 게임의 본질이 무엇인지 놓칩니다.


그래서 교사는 입시 중심 교육을 누구보다 혐오하며 동시에 누구보다 앞장서 공고히 하는 슬픈 운명을 가진 직업입니다! 수능은 사회에 순응하는 거야! 그러니 수능 특강 170쪽을 펴서 속히 사회에 순응하도록!, 같은 아이러니와 매 순간 쎄쎄쎄합니다. 옳지 못한 일은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시절을 지나, 삶은 차악을 선택해가는 과정임을 깨닫고서, 교사의 신념이 때로는 아이들에게 폭력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신념을 교육과정화 할만큼 내가 대단치 않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관성을 그냥 따르는 것도 좀 구려서 소시민적 교사의 타협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이건 기억해),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게 안 중요하다는 말은 아니야, 우리 지금 눈앞에 보이는 대입을 준비하지 않을래? 그에 설득되었건 달리 길이 없었건 오롯이 1년을 입시에 받친 아이들, 어린 왕자는 잠시 넣어 두고 판단중지 상태로 수능만 보고 달려온 아이들의 11월 마지막 날, 후련함과 아쉬움과 헛헛함이 함께 스미는 교실을 보며 그동안 너와 내가 느껴온 모든 기분과 감정을 한 마디로 퉁치면 고생했다가 나옵니다. 졸업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차가운 시절에 맞춰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 한 소절을 제목에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