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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어로빈 Nov 15. 2020

아이를 왜 낳아야 해?

누구나 생각해봤을, 그러나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있잖아... 난 참 아이를 좋아하고 낳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왜 낳아야 하는지 생각해봤어?"



  혼잡한 퇴근버스 안, 수화기 너머로 전해져 온 갑작스러운 친구의 질문.


"응? 아이를 낳는 이유라..."


  평소에 생각해봤지만, 아직 20대 중반의 사회 초년생이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기는 어려운 질문이었을까. 유미의 세포들 속 머릿속의 생각 맷돌을 열심히 돌리며 짱구를 굴리던  와중에 친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왜, 아이를 낳으면 내가 발전할 수 있고, 가정이 행복해지고... 이런 이유 말고, 다른 이유 말이야."


  친구는 문득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를 낳으면 행복해질 수 있어서, 아이에게 잘 대해 주려고 본인이 발전하게 되어서... 같은 이유만으로는 뭔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를 낳고도 산후 우울증에 걸리거나, 육아 문제로 가정에 불화가 생기기도 하며, 육아를 하기 위해서 부모는 수없이 많은 희생을 치러야만 한다. 정말로 아이를 낳으면 행복해진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걸 아마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으신다면 아마 노발대발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거다. 


"동욱이 네가 우리 집안 장손이야!
우리 고 씨 집안 대를 끊는 거냐?"




  슬프게도, 나를 비롯해 대다수의 '요즘 것들'은 대를 잇고 말고 여부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본인의 행복을 가장 우선시하는 나 같은 세대를 설득하려면 더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하다.




"그래도 아이가 있어야 집안 분위기도 밝아지는 거야!"





  하지만 많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부부끼리 이미 충분히 화목한데 오히려 아이가 있으면 싸워서 집안 분위기가 더 어두워질걸요? 또한 아이가 자라면서 들어갈 막대할 양육비 및 사교육비를 감당하느라 오히려 등골만 휘죠."



  물론 이런 내 생각을 할머니 할아버지께 말씀드린다면 흔한 드라마 속 웃어른들처럼 뒷목 잡고 쓰러지실 수도 있으니 속으로만 생각할 것이다. 난 할아버지 할머니를 사랑하니까.


과연 정말 나와 내 친구만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궁금해서 통계 자료를 찾아봤다.



조사해 본 통계는, 내 생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2017년 기준으로 초혼 신혼부부 중 자녀를 낳지 않은 부부는 48만 1,725쌍으로 전체의 35%에 달한다. 또 같은 해 맞벌이 부부(58만 5,957쌍) 중 자녀 없는 부부는 40.15%(23만 5,260쌍)를 차지했다.
 맞벌이 여부도 자녀의 유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의 무려(!!!) 40%가 자녀가 없었다.
하지만 이는 그럼에도, 여전히 60%의 사람들은 아이를 낳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이를 낳는 이유에 대답하기 어려우니... 반대로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의 이유를 알면 해답이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또 통계 자료를 조사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에서 지난해 20~30대 미혼 성인남녀 87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딩크족 계획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43.9%가 “그럴 계획이 있다”라고 밝혔다. 대부분 응답자는 딩크족 증가를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96.8%)고 답했다.
이들은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48.8%·복수응답) ▲임신, 출산에 따른 직장경력 단절 우려(34.5%) ▲육아에 자신이 없어서(32.7%) ▲배우자와 시간 보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26.8%)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17.9%) 등을 이유로 들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경력이 단절되어서.. 예상했지만 이처럼 사람들이 출산을 망설이는 가장 큰 원인은 이런 경제적 원인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원인만 해결되면 아이를 낳을 이유가 생기는 걸까? 하지만 경제적으로 풍족한 연예인들 중에서도 딩크족이 많은 걸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개그맨 김민교, 김이나 작사가, 배우 김수로 등등... 이들 대부분은 부부의 라이프 스타일 및 둘만의 부부관계에 더 집중하기 위해 아이를 가지지 않는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더라도 꼭 아이를 가져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반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집이라고 해서 아이를 가지지 못할 이유도 없다. 물론 당장 기저귀나 분유 값도 제대로 내지 못할 형편에 아이를 가지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겠지만, 그렇다고 초호화 영어 유치원 등록비와 강남 8 학군에 거주할 아파트를 마련해야만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게 출산의 필수 조건이라면, 나는 세상 구경조차 못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여러분은 나를 아마 뼛속까지 딩크족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딩크족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과는 상반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아이를 가져야 하는 이유를 말하기 전에, 우리 집 가족 코코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점심때 직장 동료와 밥을 먹으면 100원 단위까지 더치페이를 하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웃기긴 하지만,
난 때로는 계산할 수 없는 일도 있다고 믿는다.


  내가 이렇게 바뀔 줄 몰랐었다. 예전에도 공원에 나가면 보호자와 같이 산책 나온 강아지들을 보며 귀엽다고 느꼈지만, 막상 보호자가 되려면 다양한 애견용품부터 시작해서 예방접종, 병원비, 식비 등 들어가는 비용도 많다는 점이 반려견에 대해 주저하게 만들었다. 또한 매일매일 산책도 시켜줘야 하고, 털 날리면 치워야 하고, 배변 훈련도 하고 패드를 치워줘야 하는 등 따져보면 기르지 않아야 할 이유가 길러야 할 이유보다 훨씬 많았다. 코코를 처음 집에 데려왔을 때에도 기쁨보단 걱정이 많았었다.


정말로, 난 내가 동물을 이렇게 사랑하게 될 줄 몰랐다.


  하지만 코코와 같이 살게 되면서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코코와 함께 하면서 그동안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적막했던 예전과 달리, 퇴근하고 집에 오면 꼬리를 양옆으로 힘차게 흔들며 나를 반겨주는 코코를 보면 피로가 싹 가신다. 가족 분위기도 훨씬 좋아졌다. 코코와 같이 산책을 나가기 위해, 코코를 더 챙겨주기 위해 오히려 거실에 더 자주 모이게 되었고 가족들의 얼굴엔 더 많은 미소가 맺혔다. 


  사실 지금도 반려견을 기르라고 사람들을 이성적으로 설득할 순 없을 것 같다. 슬프게도 우리 현대인들은 각박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너무나도 계산을 잘하도록 적응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놓치고 눈에 보이는 통장 속 동그라미 개수를 따지게 되었다. 


  연애를 왜 해야 해? 결혼을 왜 해야 해? 왜 살아야 해?


  나는 아이를 왜 낳아야 하냐는 친구의 질문이 큰 맥락에서는 위 질문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첫 연애를 하기 전까지는,  막연하게 연애를 하면 좋은 점. 연애를 하면 안 좋은 점을 들어서만 알고 있었다. 연애를 하면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라는 나무만 알았지, 내가 그 관계 속에서 더욱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다는 숲을 알지 못했다.


결국 직접 겪어봐야만 안다.


  사실 이 논쟁은 끝도 없고, 정해진 답도 없다. 마치 내가 지금 당장 죽을 이유도 없지만 마땅히 살아있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처럼. 이럴 땐 가끔 과열된 생각 회로를 식히고 질문을 멈추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 친구는 이미 아이를 낳을 수많은 이유와 낳지 않을 수많은 이유들을 알고 있었다. 그 친구에게 1934년 《문학》지() 2월호에 발표된 감상용의 시 마지막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삶의 이유를 찾기보다 그저 웃음으로서 대답하는 여유가 보이는 멋진 구절이다.


왜 사냐건
 웃지요


  내가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구체적이고 계산적인 이유가 없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데 거창한 이유가 딱히 필요 없으리라 생각된다. 다만, 우리가 연어를 먹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하며 웃는 시간들,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라고 입을 뗄 때 지어지는 부모 입가에 잔잔히 번지는 흐뭇한 미소, 그거면 충분한 이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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