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인간관계, 두 가지를 함께 생각할 때
누군가 나에게 결혼을 준비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고민 없이 대답할 수 있다.
결혼은 새로운 사람들과 가족이 되어야 하는 일, 다시 말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은 '결혼식'이 끝난 나중의 일이다. 결혼 준비 과정 중에는 기존의 인간관계를 십분 활용해야 한다. 그들이 없이는 결혼 준비가 진행되지 않는다. 결혼은 기존의 인간관계를 기초로 삼아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것과 같다.
결혼과 인간관계를 함께 두고 생각할 때, 흔히는 청첩장을 돌리면서 자연스레 정리되는 관계를 생각한다. 실제로 청첩장을 돌리면서 앞으로 내가 '관계 유지를 위해 에너지를 쏟아야 할' 사람들이 명확해진다. 더 이상 에너지가 필요 없다 여겨지는 관계들은 결혼을 준비하는 내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얼마 간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단골 주제로 등장하기도 한다. 내 인생에 생긴 새로운 관계들을 축하받아야 하는 결혼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인생에서 영영 사라져 버리는 관계를 두 눈 뜨고 바라봐야 하는 것이 결혼이다.
그런데 결혼이 끝난 후 그 과정을 찬찬히 돌아보았을 때, 내 눈에 도드라졌던 것은 이미 끝나버린 관계가 아니었다. 내가 결혼을 준비하던 약 6개월의 시간 동안 곁에서 나의 결혼을 알차게 채워준 사람들이었다. 돌아보면 결혼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나'의 결혼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돈, 인내와 정성을 내어준다는데 있었다.
앞서 여러 번 밝혔다시피 우리는 신학생 부부였다. 한창 결혼을 준비하던 2018년 1학기 당시, 서로가 학업과 사역, 조교 일을 똑같이 병행하고 있었다. 결혼 준비까지 얹어진 상황에서 우리는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다. 오빠의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오빠에게조차 민폐를 끼쳤다. 물론 오빠는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는 수업 또는 근로 조교 업무 시간으로 꽉 차있었다. 그러다 보니 저녁 시간을 이용해 과제와 결혼 준비를 동시에 해야 했다. 과제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청첩장을 돌리기 위해서, 스튜디오에 다녀와야 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근로 조교 할당 시간을 반절도 채우지 못했다. 과제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 날이면 교수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고, 조교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한 학기 내내 나는 '언제 이 시간을 다 채우지'라는 부담감에 쌓여 있었다. 내가 가지 않는 사이,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해야 했다. 나는 그들에게 민폐를 끼쳤다.
교회에서, 나는 결혼을 준비하는 그 몇 달간 예민하고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 한 청년이 "전도사님, 이제 좀 여유가 생겼나 봐요. 표정이 풀렸네."라고 하는 말을 듣고는 깨달았다. 내가 지금까지 그런 얼굴로 아이들을, 선생님들을 보고 있었구나. 얼굴 표정에서만 정신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매주, 적어도 격 주에 한 번은 작성해야 할 보고서를 약 한 달 정도 작성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결혼식이 끝난 후 목사님은 '너무 정신없어 보여서 말하지 않았다'며 이제 보고서를 제대로 달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들에게 민폐를 끼쳤다.
하나하나 세세하기 옮길 수 없으나 마치 나사 하나 풀린 사람처럼 지냈던 그때,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고 그들은 그런 나를 이해해주고 포용해주었다. 결혼을 준비하느라 얼마나 힘드냐고, 바빠서 정신이 없지 않냐고 말해주었다. 서로가 언짢은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그들은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헉헉 거리며 간신히 시간을 쫓아가고 있는 나를 지켜봐 주고 기다려줬다. 나는 그들에게 민폐를 끼쳤는데, 그들은 버텨내고 있는 나의 시간을 세세하게 채워줬다.
준비 과정에서도, 결혼식 당일 순서에서도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웨딩 촬영 전날, 늦은 저녁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 도시락을 쌌다. 피곤해서 서로가 예민한 채로 김밥과 과일을 정성스레 포장했다.
웨딩 촬영 때 보통 도와줄 친구가 같이 간다는 사실을 전 날이 돼서야 누군가에게 들었다. 혼자 가도 괜찮겠냐는 물음이었다. 웨딩 촬영 하루 전, 혹시 내일 함께 가겠느냐고 20년 지기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그들은 오전 일정과 오후 일정 사이의 빈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와주었다. 드레스를 피팅할 때는 먼저 함께 가겠다고 말해주었다. 같이 드레스를 고르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축가를 섭외해야 했다. 모 교회의 제자에게, 오빠의 친구들에게, 또 나의 친구에게 부탁했다. 그들은 우리 교회에 직접 와서 연습을 했고, 노래방에서 연습하는 영상을 찍어 보내오기도 했으며, 직접 곡을 쓰고 가사를 붙여 축가를 준비해주었다.
예배로 드려지는 예식이다 보니 친구의 피아노 반주가 필요했다. 친구는 반주를 해주었고, 부케를 받아주었고, 예쁘게 말려 조명으로 만들어 주었다.
담임 목사님은 축도 순서를 맡아주셨고, 함께 사역을 하는 전도사님은 질 좋은 종이를 직접 공수하여 예식 순서지를 만들어 주셨다. 전도사님 부부는 신혼 여행지의 맛집과 관광지 등의 정보를 세세히 알려주기도 했다.
오빠 친구들의 몫이 컸다. 사회를 맡아주었고, 하객을 맞았고, 예식 시간보다 훨씬 일찍 와서 부족한 모든 부분을 매워주었다.
이사 날,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오후 네다섯 시쯤 신혼집에 도착했다. 짐을 나르기 전 청소를 해야 하는데 벌써 해가 졌다. 동생 셋이 전부 모여 늦은 밤까지 구석구석 닦아주었다.
절친한 친구들이, 추억이 가득한 장소에서 깜짝 파티를 열어주었다. 사람들을 만날 때, 웃는 얼굴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던 내가 유일하게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며 펑펑 울었다. 그들은 함께 공감해주고 함께 울어줬다.
결혼과 관련해 직접적으로 받았던 도움들만 떠올려 적어보았는데도 그 수가 많다. 다 적지 못했으나 이외에도 많은 이들이 있었다. 결혼을 준비하는 나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 정보를 직접 찾아보고 전달해주던 사람들, 부정적인 언어와 푸념을 짜증 하나 없이 들어주던 사람들, 바쁘다는 핑계로 무례히 약속을 취소하거나 제대로 잡지 못했는데도 이해해주던 사람들. 가족이나 친구들이 나의 결혼식에 '당연하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리를 채워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고자 선택했다면, 그만큼 나의 결혼식과 일상이 힘들어졌으리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는 나 스스로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민폐를 끼친다고 생각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이 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돈과 정성을 쏟은 것이다. 그 덕에 나는 그것을 기초 삼아 무사히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결혼을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맞이할 수 있었다. 나의 인간관계에 있어 그들이 탄탄하게 아래층을 받쳐주고 있는 덕에 나는 새로운 층을 쌓아나가는데 힘을 쏟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바라기는 결혼과 인간관계를 연관 지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정리된 관계가 아니었으면 한다. 정리된 관계를 곱씹으면서 자책하거나 후회하는 대신, 길고 길었던 결혼의 대장정을 함께 밟아준 사람들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결혼이라는 중대사를 혼자 힘으로 해결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극히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결혼이 단순히 개인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을 당연하게 집안, 가문, 가족 단위의 영역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각도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결혼은 '개인의 영역'이 아니라 '관계의 영역'이다. 내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가 결혼을 통해 발휘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고, 그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나의 경우 결혼을 통해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제한다면, 남아있는 것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나의 모습이다. 이쯤 되면 나에게 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글을 빌어 나와 함께 '나의 결혼'을 준비해주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그들이 있어서 내가 무사히 결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