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한 여중생
나는 중학생 때 성적관리는 잘하는데 눈물샘 조절은 실패한 아이였다. 학원에서 공부하다 보면 뜬금없는 타이밍에 눈물이 나올 때가 많아서 처음에 한두 번 받아주던 선생님도 지쳐서 끝내 그만 울라고 화내게 만드는 여중생이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점은 시 짓기 대회나 졸업식 연설에서 유용하게 쓰였다. 나에게 문학대회 수상이나 졸업식 연설자라는 지위를 주었다.
한 번은 아빠의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문득 죽음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의 소멸을 말하는 것인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일까? 길바닥에 있는 전봇대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죽음이란 아마도 가볍지만 축축하고 어둑한 모양일 거라고 상상했다. 봉고차의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죽음에 대한 고뇌는 깊어져만 갔다.
이런 나에게도 추모해야 하는 날이 왔는데, 바로 언니가 교통사고로 떠나간 날이었다. 죽음은 이렇게 문득 예상하지도 못한 순간에, 뜻밖의 방향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부정했다. 언니의 장례식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일부러 다른 생각에 빠져 보았다. 내가 예상하는 시나리오 말고 다른 전개가 있을 거야, 이 차의 도착지점은 다른 곳이어야 해.
외면해 보았지만 막상 언니의 영정사진을 보니 하늘이 무너졌다. 나는 언니의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다. 열심히 현실에서 도망 다녔다. 이게 현실일 리가 없었다. 컴퓨터라는 가상공간에 빠져서 게임도 하고, 친구들과 고스톱을 치면서 놀기도 하면서 내 슬픔을 애써 부정했다. 오히려 남동생이 언니의 영정사진 앞에서 울고 있었다. 정신을 놓아버린 나를 보면서 일부 어른들은 내가 미친 거 아니냐면서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언니의 죽음을 체감한 건 영안실에서 천으로 덮인 언니의 시체를 보았을 때이다. 언니의 겉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다시 일어나서 말을 걸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의사 말로는 자동차와 부딪쳐 몸이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뇌가 다친 거라고 했다. 운전자가 처음에는 무서워서 도망갔다가 차를 유턴했다고 한다. 의사가 아버지에게 중얼거리는 말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나를 덮쳤다.
나는 여러 방식으로 언니를 추모했다. 하늘에 있는 언니를 대상으로 장문의 편지를 써 보기도 하고 언니를 기리는 시를 지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슬픔을 달래기 위해 하는 어떤 행동도 언니를 잃은 여중생 가슴속의 공허함과 씁쓸함을 달래주지 못했다. 그렇게 언니는 내 곁을 떠났다. 술 마시고 남자 만나는 거 좋아하고 일부는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동급생들 괴롭힘에서 동생을 지켜주던 언니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나는 형제를 잃은 슬픔을 가슴속에 묻어 두고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아빠는 여전히 돈을 벌러 나갔다가 한 달에 한 번 집을 방문했고, 엄마는 마트와 집이 전부인 거리를 왔다 갔다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장보기에 지쳐서 누워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에 엄마는 날마다 야위어 갔다. 가정일은 내팽개치고 교회에 나가 기도드리는 엄마의 모습은 살짝 미쳐 있었다. 집에 싸여가는 담배꽁초와 맥주병.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 어떤지 그때는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