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살 일대기 2

엄마가 사라지던 날

by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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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의 세계는 성적관리와 친구가 전부였다. 나는 우울한 가정을 벗어나기 위해 매일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갔다. 그곳에는 곰팡이 핀 벽지도, 쥐머리가 보이는 천장도, 다 무너져 내려가는 싱크대도 없었다. 따뜻하고 안락한 소파와 만화 잡지로 가득 찬 벽장, 꿈의 세계가 친구네 집에 존재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30분 거리를 걸어서 친구네 집에서 놀다가 밤늦게 되어 집에 돌아갔다. 집 거실에는 엄마가 소리 없이 잠들어 있었고, 피다 만 담배꽁초 냄새만 가득했다.


아빠가 오는 날 저녁에는 잠시 분위기가 화기애애했지만, 아침이 되면 다시 엄마 아빠가 싸우는 소리가 동네에 울려 퍼졌다. 아빠는 주로 엄마의 돈 관리 문제를 지적했고,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 자기의 젊음에 대해서 아빠를 탓했다. 엄마는 평소에 하고 싶은 게 많은 여자였다. 그리고 아빠와의 결혼으로 자신의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결혼은 현실이었고 끊임없는 출산과 육아에 엄마는 지쳐갔다.


엄마는 본인의 꿈을 자식을 통해 이루고자 했다. 언니는 아주 어릴 적, 엄마의 말에 따라 교회를 따라다니고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태권도 학원에 다녔다. 처음에는 언니도 엄마 말을 잘 따랐다. 하지만 끊임없는 성적 압박과 육아 스트레스 분풀이에 언니는 엇나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밖에 나가서 술을 마시고 남자를 만나러 다니고, 집에 남자친구를 데려와 같이 자기도 했다. 하루는 엄마가 언니를 집 옥상에 데려가 매섭게 패대기쳤다. 나는 언니 뒤에서 엄마를 무서워하며 벌벌 떨었다. 엄마의 통제와 언니의 반항. 그리고 둘의 싸움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떠는 나. 한동안 이런 패턴이 집 안에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부엌에는 엄마가 피다 만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고, 싱크대 밑에는 맥주병이 일렬로 서 있었다. 엄마의 밥상은 사람이 먹을 수 없을 만큼 부실해졌고, 엄마의 행동은 점점 괴이해져 갔다. 특히 언니가 세상을 떠난 후로 엄마는 점점 아파졌다. 어느 날은 엄마가 남동생과 나에게 소리를 지르지 말라고 주의 준 적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다고 했다. 그때 나에게 하던 엄마의 손가락질과 표정을 지금까지 잊을 수 없다. 나는 반항심에 일부러 더 소리를 지르고 장난을 치고 다녔다.


엄마가 집에서 사라진 건 어느 날이었다. 엄마의 정신병원 입원은 아빠와 할머니가 이미 약속한 문제였다. 엄마는 친척 집에 간다는 아빠 말에 속아 정신병원에 가는 차에 올라탔다. 아빠는 떠나기 전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너와 정신연령이 같은 어린아이야.”


엄마는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엄마가 하던 집안 살림은 할머니가 대신하고 집에는 할머니, 나, 남동생 이렇게 세 식구만 남게 되었다. 아빠는 여전히 돈을 벌러 밖에 나가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엄마가 있던 자리를 모두 치웠다. 가끔 엄마가 하던 사나운 매질과 이상한 소리, 엄마의 잔상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그립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학교 다니고 친구를 만나며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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