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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리 May 13. 2021

임용고시 스터디에서의 장애인 거부

절박한 사람들을 마냥 비난할 수만 없는 일.

 나는 2021년 중등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장애인 임용고시생(임고생)이다.


 2020년 11월 28일 토요일 1차 임용고시 시험을 마친 후, 2차 준비를 하지 않고 계속 쉬고 있다가 겨우 준비한 지 3일째가 되는 날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는 2차를 어떻게 준비 해나 갈지에 대한 생각이 가득하다. 1차 임용고시 끝나자마자 2차 스터디를 꾸려가는 임고생들이 있고, 1주, 2주가량 충분히 쉰 후 2차 스터디를 꾸리는 등, 다양한 임고생들이 같은 목표와 꿈을 가지고 서로의 필요에 의해 머리를 맞대고 수업실연, 지도안 작성, 개별면접 등을 함께 공부한다. 그들은 2차를 준비하면서 힘들 때마다 서로 힘을 북돋우고 2차 관련 훌륭한 팁을 얻어가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그 과정에서 어제보다 더 성장하고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여기까지가 그들은 같이 준비할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 보인다는 것은 내 관점이다.


 하지만 그 틈에서 끼지 못하는 나 같은 장애인 임고생은 외로이 방황할 뿐이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스터디를 끼워주지 않는 것이 차갑고 냉정한 현실임을 대학생활을 통해 경험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시각장애를 가진 장애인 임고생도 2차 스터디에서 거부당한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본인은 장애가 있지만 결코 스터디에 빠지거나 폐를 끼치지 않게 정말 열심히 참여하겠다 라는 강한 의지와 다짐을 내비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함께 하기 어렵다는 거절이었고 먼저 같이 하자는 제안도 없었다. 장애인 임고생 대부분이 그런 경험을 겪은 것이 아니지만 심심찮게 직접 목격하고 있다. 거절당한 장애인 임고생들도 역시 장애를 이유로 거절당한 것에 대해 분노해하고 힘들어했지만 장애를 이해하고 함께 해줄 스터디가 없음을 깨닫고 포기한 듯하다. 장애인 임고생들도 결국 혼자 준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혹은 각자가 가진 다른 장애를 서로 보듬고 이해하며 같이 스터디를 꾸려가는 경우도 있다. 부디 합격하길 바란다.

 

 임용고시는 1년에 단 1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고 당장 눈 앞에 있는 '교사'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1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돈, 청춘, 그 이상을 투자하는 일생일대의 시험이다. 이 시험의 합격 당락에 따라 웃는 사람도 있고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 적어도 임고생인 그들의 입장에선 그렇다. 너무나 간절하고 절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주고 챙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을 마냥 비난할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이고 그들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애써 노력해서 그들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조금만 생각하면 '아, 누가 장애인과 함께 스터디를 하고 싶어 하겠어. 본인 것도 챙기기도 바쁠 텐데.' 하고 바로 납득했다. 쉽게 떠올려 생각하고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어릴 때부터 장애를 이유로 거절당한 경험을 많이 겪어서가 아닐까? 그런 경험이 나를 염세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타인에 대한 기대감이 없고 피해를 주기 싫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타인이 나에게 친밀하게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면 나는 밀어낸다. 서로 상처 받지 않도록 선을 지켜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게 될 때 실망감도 더 크다는 것도 잘 안다. 내가 작은 실수를 하게 되면 타인은 무의식적으로 '장애'에 초점을 맞추고 '졸리 씨는 장애인이기 때문에'라는 생각을 할 것이고 그 생각을 쉽게 지울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무의식적으로 심어진 생각은 마음대로 지워지는 게 아니므로.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런 것이 아니다. 어디서나까지 내 경험은 적어도 그랬다는 점을 알아주길 바란다.

 

 옛날에 나에게 먼저 팀플을 같이 하자고 제안한 사람이 있긴 있었다. 시각디자인 수업을 같이 들었고 이름도 모르는 학생이었는데 나의 마케팅 발표를 보고 좋아서 같이 팀플 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장애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로지 나의 기획 능력만으로 보고 먼저 다가온 것이다. 그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려고 한걸음 내딛으며 올 때 등 뒤에 후광이 있어 보였던 것은 내 착각이었을까? 하지만 실제로 빛나 보였다. 그 사람은 기획능력, 프레젠테이션 능력 등이 모두 뛰어나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님들의 총애를 받고 있는 훌륭한 학생이었다. 그런 학생이 먼저 제안하다니! 내 인생에서 처음 겪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지금도 가끔 연락하고 지낸다.


 그래서 결국 장애인 임고생인 나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시각디자인 팀플을 같이 했던 그 학생처럼 먼저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사람이 없고 나 또한 눈치 보여가면서 억지로 스터디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필요한 정보를 찾고 공부해야 한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 현직 교사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속에서 열심히 정보를 캐고 또 캐고 잊지 않기 위해 캡처해서 다시 보고, 현직에 근무하시는 교사들의 공부방법, 수업실연, 개별면접 유튜브 등을 여러 번 돌려 보며 정보를 얻으려고 아등바등한다. 고군분투함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 임고생에 비해 정보접근 측면에서 현저히 떨어지는 점이 있다. 현직 교사들의 유튜브에 대부분 자막이 없다는 것이다. 유튜브에 자막 기능을 활용하면 되지 않겠냐는 속도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튜브의 자막 기능은 정확도가 떨어져서 흐름을 방해하고 집중을 흩뜨려놓는다. 유튜브를 열심히 뒤지다가 유일하게 자막이 나오는 현직 영어교사의 유튜브를 발견했다. 영어 과목이기 때문에 수업실연을 모두 영어로 말하며 진행했지만 나는 그것만으로 감사했고, 현직 영어교사의 유튜브를 열심히 보며 감을 익히려고 노력하고 있다. 혼자 준비해서 끝내 합격했다는 현직 교사의 수기를 보고 희망을 가지며...

 

 사실 어느 정도 약간의 오기도 있다.

'그래. 나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비장애인인 당신들이 없어도 합격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없지는 않다. 이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안다. 하지만 이 생각이 꼬리 물고 물며 '그래. 스터디해도 스터디원이랑 안 맞아서 스트레스받는 것보다 혼자 준비하는 게 더 편하지.'라는 생각도 있다. 이렇듯이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조용히 묵묵히 준비하는 길이다. 이게 현 장애인 임고생의 현실이고 임고생이기 전 학생일 때도 지금과 똑같은 현실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런 현실을 끊임없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는 무뎌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먼 훗날이라는 말은 지겹고, 나는 기다려줄 생각 없으니까
장애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 사람 자체로 보고 능력으로 평가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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