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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 모두의 언니 Aug 23. 2023

나는 이런 것들을 할 때 행복함을 느껴

동생에게 보내는 스물 여섯 번째 편지

나아는 아침에 날씨를 확인하는 것, 예상치 못한 순간의 기쁨, 햄스터, 함께 장보는 남편, 뭘 해도 이해받을 수 있는 차 안에서 혼자의 시간, 기다리는 좋은 소식이 오는 것, 손때 묻은 물건을 지켜보는 것, 실컷 잠자는 것, 배려를 받고 또 해줄 수 있음을 느낄 때, 계획짜는 순간들을 좋아하는구나! 생각해보면 소소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엄청 대단한 일이기도 한 것 같아. 앞으로 이런 순간들을 느끼고 즐기며 삶을 만끽하길 바랄게!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일기 쓰는 텀이 예상치 못하게 길어져 버렸어. 그간 잘 지냈는지 궁금하네. 집에서 휴식하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야. 


 나도 어떨 때 내가 행복감을 느끼는 지에 대해 꽤 깊이, 오랜시간 생각해봤어. 머릿속에 산재되어 있는 내용들을 취합하고 분류하고 카테고리까지 만드는 게 쉬운일은 아니더라. 확실히 살면서 정리의 시간은 꼭 필요한 듯 해.



내가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들



1. 반신욕이나 사우나를 하고 나와서 미친듯이 심장이 뛰는 순간

 어릴 때부터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자주 갔어.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 견디기 힘들어하는 반신욕이나 사우나에도 턱턱 잘 들어가고, 그 곳에서 오랫동안 있으면서 땀 빼는 걸 좋아해. 물론 건강에는 안좋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야. 한국에는 목욕탕이나 찜질방이 많아서 우울하거나 축 쳐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찾았던 것 같아. 땀을 한바가지 흘리고 나온 후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대면 '아, 나는 이렇게 살아있구나'를 느껴. 그 심장을 부여잡으며 다시 한 번 열심히 인생을 살겠노라 다짐하지. 미국에서는 이런 곳들이 없어서 족욕으로나마 그 순간을 대신하고 있어. 뉴저지에 찜질방이 있다고 하는데,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2. 내가 창작한 결과물들을 보는 것

 솔직히 말해 스스로 엄청난 창작자라거나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은 안들어. 손재주도 없고. 그런데 말야, 이상하게 창작하는 걸 좋아해. 내가 이런 성향이 있다는 건 30대가 되어서야 알게 된 것 같아. 그 전까지는 그냥 열심히 놀고, 일하고 그러면서 살았을 뿐.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내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고, 어릴 적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음악학원을 다니며 곡을 만들고 노래로 만들었어. 싱글 앨범 5집까지 냈지만, 지금 들어도 어설픈 곡들이야. 그래도 내게는 자식같은 느낌이고, 내 젊음이 녹아있는 결과물이라 볼 때마다 그래도 잘 살았다고 위로할 수 있고, 뿌듯한 마음에 자존감도 올라. 미국에 온 후로는 열심히 글도 쓰고, 보스턴 브이로그 영상도 올리고 있는데, 무기력하고 울적해질 때마다 다시 들여다 봐. 그러면 자존감이 상승해서 다시 힘이 난다고 해야할까.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창작 활동을 하고 싶어. 나를 더 이해할 수 있도록.

내가 만든 곡 중에 제일 좋아하는 곡이야 '서른셋' (좌), 레코딩할 때의 모습(우)


3. 비 오는 날, 집에서 빈티지 음악 켜놓고 낮술로 와인 마시는 것

 난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야. 맥주, 소주, 양주, 와인 등 가리는 것 없이 모든 술을 사랑하는 박애주의자이기도 하지 움하하. 그런데 제일 좋아하는 술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와인'이야. 특히 혼자 마시는 와인. 거기에 비오는 날과 낮술 이라는 조합이 붙는다면 최강 천하무적의 행복 아이템 풀 장착인 셈이야. 날씨 영향을 많이 받아서 비가 오면 많이 쳐지는 편인데, 그럴때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내 존재에 대한 회의가 마구 일어. 억지로 텐션 올리려고 하는 것보단 그 자체를 즐기려고 해. 낮술로 천천히 혼자 와인을 마시다보면 시나브로 취하게 되는데, 살짝 취해서 몽롱해지며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때 행복하다는 걸 느껴. (마시는 술의 양이 많진 않아, 아마 와인 반 병정도 마시면 이 증상이 시작되는 것같아). 이 것이 아마 내가 휴식하는 방법인 것 같아.

비오는 날 혼자 집에서 마시는 와인(좌), 낮술은 즐거워(우)


4. 경제뉴스 들으며 집안일 하는 것, 그리고 깔끔해진 집을 볼 때

 한국에서는 매일 일하고, 주말엔 놀러다니느라 집안일에 매진하지 못했던 것 같아. 미국에서 전업주부로 지내며 집안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요즘, 귀찮고 사소하긴 해도 꼭 해야 하는 '집안일'에 재미를 느끼는 중이야. 집안일을 할 때는 경제 팟캐스트를 들으며 하는게 루틴인데, 그냥 이 순간이 좋아.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 그리고 나서 깔끔해진 집을 볼때면 기분이 너무 좋아져. 뭐랄까, 내 머릿속도 깔끔해지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일을 다 끝냈을 때 성취감을 이런 곳에서 느끼는 걸까. 요즘 통 신경을 못썼더니 집이 엉망이야. 내 머릿속도 덩달아 엉망.


집안 정리 후 깔끔해진 집을 보면 기분 좋아


5. 예상치 못한,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만날 때

 내가 오지여행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야. 휴양지의 모습은 대체로 비슷해. 먹고, 즐기고, 늘어져서 삶을 향유하는 모습. 하지만 오지의 모습은 수 백, 수 만가지야. 저마다의 이유로 오지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나라들인데, 아무리 많이 다녀도 익숙해지지 않아. 보스턴에 살면서도 남들이 많이 가는 화려하고 세련된 곳보다는 수산시장이나 시내 뒷골목처럼 많이 찾지 않는 곳을 가는 걸 좋아해. (그만큼 위험하기도 해서 남편이 엄청 걱정하더라) 나아도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만났을 때 행복하다고 했지? 나도 비슷한 것 같아. 이국적인 풍경은 내가 많은 상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줘서 너무 좋아.

인도여행(좌), 우유니 사막(우)


6. 남편이랑 장난치며 놀 때.

 나아는 남편과 장 볼 때 든든함과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은데, 난 아직 장보면서 그런 걸 느낄 때가 많이 없어. 남편은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호'에 대한 취향은 없으면서 '불호'에 대한 취향만 말하는 사람이거든. 같이 이거살까? 저거살까? 하면서 남편이 가져온 걸로 투닥거리기도 하며 장보고 싶은데, 별 관심없이 따라만 다녀서 별로 재미없어. 그런데 집에서 남편이랑 장난치고 놀 때 행복함을 많이 느껴. 밤에 침대에 누워서 서로 자기 다리를 맨 위에 올려 놓겠다고 결투를 벌이고, 침대를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꼼수들이 난무해. 술 한잔 마시고 기분좋으면 둘만의 댄스파티도 열고, 개그 대결을 한다고 개다리춤으로 대결도 하지. 그런데 있지, 이런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좋아. 마음이 편안해. 20대, 아니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내 인생에서 편안함은 없구나 생각했어. 그런데 틀렸어. 요즘 삶이 너무 편하고 좋아. 그런데 이렇듯 너무 행복한 와중에 또 이걸 언제 뺏어가려나 하는 불안함도 커. 오늘도 남편 퇴근할 때 장난한 번 쳐야겠어!


집 옥상에서 신나게 춤추는 모습(좌), 장난끼 많은 우리 부부(우)


7. 캠핑가서 불멍할 때

 나는 자연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요즘엔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에 관심이 아주 많지. 특히, 맑고 깨끗한 바다보단 새들이 지저귀며 피톤치드를 내뿜는 숲을 더 좋아해. 그래서 만약 어디에 집을 짓고 살고 싶냐고 물어보면 바닷가 보단 산에서 살고 싶다고 할거야.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무들로 가득한 공간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져.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땐 캠핑이나 차박, 비박까지 열심히 다녔고, 아직도 내 가슴 속 어딘가에 그 때 행복감이 저장되어 있을 것 같아. 특히 맛있는 고기와 음식을 한바탕 헤치운 후 고요함 속에 시작되는 '불멍'시간을 엄청 좋아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장작을 보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느껴. 살짝 변태인가 싶은게, 인생이 덧없다고 느낄수록 지금 삶이 짜릿해진다? 이상하지? 인생은 참 짧고 덧없어. 그래서 지금이 너무 소중해.

한국에서 엄마랑 동생, 여자 셋이 차박 다녀왔어 (좌), 불멍할 때 행복해지는 나 (우)



8. 열심히 운동하며 땀빼고 난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

 또 술 이야기네. 역시 난 술을 사랑하는 사람인가봐. 운동은 늘 했던 것 같아. 그렇다고 완전 집중해서 몸으로 조각하는 사람들처럼 운동을 했다는 뜻은 아니고, 테니스나 탁구, 골프, 댄스 스포츠, 등산 등 다양한 활동을 좋아하는 것 같아. 열심히 운동하면서 땀을 쫙 빼고 나면 기분이 UP되는데, 그 갈증이 최고조를 향해가는 순간, 시원하게 살얼음 띤 맥주 한 잔 마시면, 캬!! 말해 뭐해! 사는 게 뭐 있겠니, 사람들과 열심히 함께 운동하며 땀빼고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며 고생했다며 웃음바다를 이루면 그 곳이 천국이지.

미국에 온 후로는 테니스 치고 맥주 마시는 게 큰 행복이야



9. 새벽공기 맞으며 적막함 속에서 차 마실 때

 아침형 인간으로 살고 있어. 일찍 일어나니까 일찍 잠이오고, 그게 습관이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바이오리듬이 만들어진 것 같아. 주로 5시쯤 일어나는데, 일어나서 해가 안떠있으면 쾌감을 느껴. 그리고 새벽 특유의 수분 잔뜩 머금은 공기, 적막함을 사랑해. 물 끓여서 차 한잔 내리며 남은 잠을 쫓아내고 책상에 앉아 하루 계획을 짜고, 메일 확인을 해. 그리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데, 이 순간이 너무 좋아. 내 하루 중 가장 효율이 좋은 순간이기도 해.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새벽시간, 내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


기상 시간과 새벽 달 찍은 사진



10.  계획을 정리하고, 기록할 때

 이 것도 나아와 비슷한 것 같아. 아침마다 다이어리에 하루 플랜을 짜고, 이런저런 기록을 남겨놔. 이상하게 계획을 짜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삶을 다 살아냈단 생각이 들어서 뿌듯해져. 이건 마치 자기계발 영상을 보면서 이미 자기계발을 한 것 처럼 느끼는 것 같아.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시간별로 계획을 짤 정도로 혹독하게 했는데, 그러다 보니 하나라도 삐끗하면 아예 나머지 계획을 안해버리더라고. 이런걸 완벽주의자 성향 사람들의 단점이라고 하는데, 하지 않은 계획들을 돌아보면 죄책감에 땅이 꺼져라 한숨쉬고 스트레스 받아. 그 후론 조금 더 간단하게 계획을 짜는 편이야.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계획짜는 법에 고수가 되어가고 있지. 기록하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라 하루동안의 생각이나 배운 것 등도 잘 기록하는 편이야. 그냥 그 순간이 좋아. 계획하며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 

연초에 세운 만다라트 계획(좌), 미국에 온 후 시간대별로 짰던 계획들(우)




나아에 비해 나는 너무 길게 쓴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나는 한 줄로 정리하는 능력이 부족한가봐. 그래도 잘 읽어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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