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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 Mar 19. 2018

쉼표 없는 한국 영화의 현재 <지금 만나러 갑니다>

공식에 충실하지 못한 로맨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컷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한국 영화에서는 좀처럼 쉼표를 찾기 힘들다

흥행이 될 만한 여러 요소를 차고 넘치게 집어넣어 조잡해진 작품이 흔하다. 장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여러 장르를 섞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시도지만 대개 장르 하나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종류의 메뉴를 파는 식당이 맛집이 될 수 없는 이유와 같다.


장르는 그날 기분에 따른 영화 선택을 가능케 한다. 장르마다 으레 기대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슈퍼히어로물을 보러갔을 때는 아이언맨이 슈트를 장착하고 하늘을 날며 현란한 필살기를 쓰는 화려한 볼거리를 기대한다. 코믹 영화를 볼 때는 큰 소리로 웃을 준비가 돼 있다. 로맨스를 선택했을 때는 간질간질한 설렘과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지는 아련한 여운을 바란다. 로맨틱코미디라면 이야기가 다를지 모르지만 정통 로맨스를 보기로 한 날은 감상에 젖고 싶은 날일 가능성이 높다.

장르는 그래서 분류하는 것일지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을 때, 조금 울적해지고 싶을 때, 보고 싶은 작품이 다를 테니.

감독은 장르를 초월하는 대작을 만들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공식에 따라 작품을 만드는 것이 낫다. 최소한 성실해 보일 테니. 공식에 따르지 않고 이것저것 섞어버리면 그 영화를 선택한 관객의 목적을 충족시키지 못하니까.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컷

이장훈 감독의 첫 작품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일본 작가 이치카와 다쿠지의 동명 소설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앞서 일본에서 먼저 영화로 탄생했다. 일본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2004년 개봉해 자국에서 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흥행에도 성공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인생의 영화로 꼽힐 만큼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화려한 캐스팅 덕분에, 일본판을 사랑한 많은 씨네필 덕분에, 흥행할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의 인생의 영화가 되기는 힘들 것 같다.     


영화는 1년 전 숨을 거둔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이의 엄마인 수아(손예진)는 죽기 전 ‘비가 오는 날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긴다. 그리고 그녀는 죽은 지 1년 후 장마와 함께 거짓말처럼 아들 지호(김지환)와 남편인 우진(소지섭)을 찾아온다. 하지만 두 사람에 대한 기억은 물론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세 사람은 함께 생활하게 되고 수아와 우진은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진다. 지호 또한 수아와 꿈같은 나날을 보내며 엄마와 이별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일본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일본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 제목에는 쉼표가 찍혀있다. 일본판 수아 역할인 미오(다케우치 유코)는 사고를 당해 미래로 타임슬립한다. 그리고 이 시간여행을 통해 첫사랑 타쿠미(나카무라 시도)에 대한 감정을 멈추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향한다. 타쿠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아들 유우지(다케이 아카시)의 탄생을 원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차분한 톤으로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속도감은 없지만 지루하지 않다. 웃음 코드는 없지만 진중하다.      


반면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제목에서 쉼표를 뺐다. 이 때문일까? 영화는 공백을 통한 여운 주기에 실패한 듯하다. 우선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은 여운을 느낄 시간을 주지 않는다. 감독은 진중한 로맨스를 하기에는 겁이 났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 코믹 요소를 집어넣었다. 어떤 장면은 껄껄 웃게 할 정도다. 웃음을 주는 것은 좋지만 로맨스 영화의 기본 조건을 뺀 코믹 장면은 팥 없는 단팥빵 같다. 영화는 결국 로맨스 영화를 보러간 관객의 목적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끝이 난다. 한국 영화 산업의 단면을 보여주듯 흥행에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감독의 야심만이 스크린을 채운다.


ⓒ 2017, Kimjiyoung 글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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