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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 번째 재생목록 Oct 26. 2021

[마이 네임] 여성 주체 서사에 대한 착각

한국 누아르의 여성 캐릭터 소비 방식을 반복하는 아쉬움

*본 리뷰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이 네임>이 배우 한소희의 강렬한 액션 연기로 주목받고 있다.

<마이 네임>은 언더커버 복수 누아르 드라마다.

주인공 지우(한소희 분)는 자신의 눈앞에서 살해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무진(박희순 분)의 조직으로 들어간다.

조직에서 복수의 칼을 갈던 지우는 무진을 통해 범인이 경찰임을 알게 되고, ‘오혜진’이라는 가짜 신분을 가지고 경찰이 된다.

미래와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고 오로지 아버지의 복수만을 위해 감정 없이 살아온 지우는 점차 충격적인 진실에 가까워진다.

<마이 네임>은 인물들 사이의 끝없는 의심과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로 긴장감 넘치는 전개를 이어간다.

 

한소희의 화려한 액션 연기로 주목받고 있는 <마이 네임>. 사진 유튜브 캡처


◆ 남자들의 판, 그 속에 혼자 놓인 지우

그동안 남자들의 세계로만 그려졌던 누아르 물을 여성 원톱 물로 선보였다는 점은 색다른 매력이다.

한소희 배우의 액션 연기 역시 인상적이다.

이제 여성 주체 서사는 콘텐츠 시장에서 하나의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마이 네임>이 과연 지우의 주체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느냐엔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겉으로 보기엔 여성 주체 누아르를 만든 것처럼 보이나, <마이 네임>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의 남성 중심적인 한국 누아르 물을 그대로 반복하며 단순히 주인공의 성별만 바꾼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선 지우를 제외하곤 비중 있는 여성 캐릭터가 거의 전무한데, 남자들의 싸움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지우는 매번 무진의 의도대로 움직인다.

무진에 의해 힘을 키우고, 무진의 계획에 따라 경찰에 잠입하고, 그의 장기짝이 되어 움직인다.

무진, 기호(김상호 분), 태주(이학주 분), 심지어 강재(장률 분)까지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지만, 지우만 모른 채로 그저 이용될 뿐이다.

진실을 알게 된 지우가 무진의 장기짝에서 벗어나 드디어 ‘진짜 복수’를 시작할 때, 이번엔 필도(안보현 분)가 나타난다.

필도는 지우식의 복수를 가로막으며 ‘법의 심판을 통한 복수’를 제안하고, 지우는 필도를 향한 감정으로 인해 이에 설득된다.

하지만 마지막엔 결국 또다시 무진의 뜻대로 그가 짜 놓은 복수의 판으로 되돌아간다.

과연 지우의 복수가 주체적으로 그려졌는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후반으로 갈수록 지우의 복수가 모두 무진이 짜 놓은 판임이 드러난다. 사진 유튜브 캡처


◆ 뜬금없는 로맨스로의 경로 이탈

이 드라마에서 가장 납득이 힘든 것은 지우와 필도의 갑작스러운 로맨스다.

지우의 복수가 성사되어야 하는 클라이맥스에 이 둘은 언제부터 쌓아왔는지 짐작하기도 힘든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느닷없이 사랑을 나누며 복수 서사에 찬물을 끼얹는다.

복수를 하러 가다 말고 등장하는 갑작스러운 베드신은 눈을 의심하게 만들고,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최대 목표였던 복수의 중요성을 희석시킨다.

지우의 통쾌한 복수를 기대하며 함께 달려왔을 시청자들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복수 대신 영문 모를 로맨스를 마주하게 된다.

한국 콘텐츠의 로맨스에 대한 강박은 이미 시청자들을 지치게 만든 지 오래다.

드라마 <비밀의 숲>은 불필요한 로맨스를 없애고 사건에만 집중해 극에 대한 몰입을 높였다.

로맨스 없이도 서로의 부족함을 동료로서 채워주는 주인공 사이의 케미가 시청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피도 눈물도 없이 복수를 향해 달려가던 지우가 이렇다 할 계기 없이 사랑에 빠지는 전개보단, 의지할 수 있는 필도와의 동료애로 풀어내는 편이 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5일 공개 이후, <마이 네임>은 전 세계 넷플릭스 콘텐츠 순위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관심받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 여성 주체 서사에 대한 착각

<마이 네임>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세웠지만 그동안의 누아르 물이 여성을 소비해온 방식을 거부하고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그대로 반복하고 오히려 강화했다.

이젠 고리타분하다 못해 지겹기까지 한 한국 누아르 물에서의 여성 성적 대상화는 주인공 지우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드라마 초반에 등장하는 무수한 성희롱과 성폭행 시도 장면, 그리고 이를 여자라면 당연히 ‘한 번은 겪었어야 할 일’이라고 치부하는 무진의 대사는 이 드라마가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드러낸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단순히 여자 주인공이 터프한 성격을 가지고 강한 모습으로 격한 액션을 소화한다고 해서, 주체적인 서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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