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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 번째 재생목록 Aug 07. 2021

[이 구역의 미친 X] 어딘가 찜찜한 언더독의 반란

의존형 성장 캐릭터의 한계

  열세에 있는 약자의 승리를 바라고 더 응원하게 되는 심리 현상을 '언더독 효과'라고 한다. 언더독의 반란은 짜릿하다. 처음부터 완성형인 캐릭터보다는 서사 진행과 함께 성장하는 캐릭터가 더 매력적이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주인공의 성장 스토리를 담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카카오TV의 오리지널 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 X>도 언더독의 성장을 담는다.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남자 주인공 휘오(정우 분)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해 강박, 망상 장애를 가진 민경(오연서 분)이 서로의 존재를 통해 상처와 아픔을 치유해 나간다. 휘오보다는 민경의 성장이 더 비중 있게 그려지는데,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는 민경의 성장은 뭉클하긴 하지만 어딘가 찝찝하다.


  민경의 성장이 마냥 통쾌하지만은 않은 이유는 그가 의존형 성장 캐릭터이기 때문일 것이다. 민경의 성장 스토리는 너무 휘오에게 의존적이다. 민경은 전 남자 친구의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사람을 믿지 못하고 망상과 불안을 안고 산다.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형사인 휘오에게 호신술을 배우지만, 정작 이를 직접 사용할 기회는 없다.

  민경의 위기 상황마다 항상 휘오가 나타나 민경을 구해주기 때문이다. 민경에 대한 부녀회의 오해를 풀어주는 것도, 얼토당토않은 오해에 대신 화내 주는 것도, 딸에게 폭언을 하는 민경의 엄마에게 민경을 한번 믿어보라고 다독이는 것도 휘오다. 심지어 더 이상 과거의 트라우마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가해자와 마주해 담판을 지으려고 결심한 자리에서까지 민경은 약으로 정신을 잃게 되고, 또다시 그를 구하는 건 휘오의 몫이다.

위기 상황에서 민경은 호루라기를 불며 휘오를 찾고, 휘오는 5분 대기조처럼 민경을 구하러 나타난다. 사진 유튜브 캡처

  민경의 지나친 의존은 휘오와 대비된다. 휘오에 비해 민경은 너무 무력해 보인다. 분노조절장애라기엔 민경에게 너무 너그러운 휘오는 매 순간 영웅이 된다. 민경은 계속 위기에 처하고, 눈물바람으로 호신용 호루라기를 불며 휘오가 찾아오길 기다릴 뿐이지만, 휘오는 사건을 해결하고 민경을 구한다.

  해피엔딩으로 끝난 마지막 장면으로 인해 민경이 트라우마를 이겨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극복과 해결의 모든 순간에는 휘오가 있어야만 했다. 민경의 병적인 히스테리의 원인이 분명하게 설명됨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청자들이 민경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해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걸 진정한 민경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주인공의 성장에 조력자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조력자의 역할은 조력에서 그쳐야 시청자들이 성장하는 주인공에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다. 민경의 의존적 성장은 비슷한 기간에 방영했던 JTBC 드라마 <로스쿨>의 솔A(류혜영 분) 캐릭터와 비교되며 한계가 더 분명히 드러난다.

  솔A는 명문 한국대 로스쿨의 천재 같은 동기들 사이에서 유급을 겨우 면할 정도의 성적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솔A에게 가장 몰입하게 된다. 지식은 부족하지만 정의감과 맷집은 최강인 그의 모습이 똑똑하지만 법조인으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몇몇의 로스쿨생들과 기성 법조인들 사이에서 국민들의 법 정서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준휘, 종훈, 솔A. 솔A는 준휘와 종훈의 조력을 통해서 훌륭한 법조인으로 성장한다. 사진 <로스쿨> 공식 홈페이지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솔A는 좋은 법조인으로 성장해 나간다. 그의 성장이 시청자들에게 쾌감을 주는 이유는 고난을 스스로 헤쳐나가기 때문이다. 좋은 멘토와 동료들을 곁에 두었지만 솔A는 이들로부터 용기를 얻고 조언을 받을 뿐, 전적으로 의지하진 않는다. 결국 드라마의 빌런을 잡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솔A다. <로스쿨>에서 솔A의 가장 큰 조력자는 교수 종훈(김명민 분)인데, 아무리 존경하는 교수이더라도 종훈의 선택이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으면 솔A는 타협하지 않고 맞서는 모습도 보여준다.


  시청자들이 '언더독 효과'를 느끼며 언더독의 반란에 짜릿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선 언더독의 성장과 승리가 본인의 것이어야 한다. 사회가 멋대로 정의 내린 비정상, 비주류, 언더독들의 반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구역의 미친 X>와 <로스쿨>은 닮아있다. 하지만 속 시원했던 <로스쿨>에 비해 <이 구역의 미친 X>는 찝찝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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