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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Nov 09. 2017

이런 아름다움은 처음, 체르마트




스위스 여행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 글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스위스 여행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일정은 4박 5일, 숙소는 인터라켄에서 머물며 여행지를 왔다갔다 했다. 날씨를 보며 목적지를 유연하게 정할 예정이라 그렇게 했는데, 가고싶은 곳이 뚜렷하면 장소를 옮겨가며 온전히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교통은 스위스패스 4일권을 사용했다. 스위스는 자연과 풍경을 보러가는 거라 날씨가 중요해서 여름여행을 추천한다. 10월만 넘어가도 운행안하는 교통이나 액티비티가 많기 때문이다. MeteoSwiss라는 앱을 통해 날씨를 매일 확인하고, 날씨가 좋은 장소를 골라 움직였다. SBB mobile 앱을 통해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면 시간과 환승 방법 등이 나오기 때문에 쉽게 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베른에서 인터라켄 숙소에 도착한 순간부터 내일은 어디로 가야할지 생각했다. 오늘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내일 일을 생각하는 이유는, 오늘 하루가 너무도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일도 오늘처럼 좋은 하루가 되길 바랬다.


사실 스위스에 대해 잘 몰랐을 뿐더러 큰 기대도 감흥도 없었다. 유럽하면 떠올리던 곳이 대표적으로 영국 - 프랑스 - 스위스 였기에 이 3곳은 꼭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스위스에 있게 된 것이다.


숙소 창문 밖 풍경


하지만 이렇게 스위스에 오니,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물론 스위스를 다녀온 사람들이 했던 '스위스가 최고야' 라는 말들을 믿지 못한 것은 아니다. 단지 난 산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취향으로, 자연환경보단 유럽특유의 도시모습을 선호한다는 생각으로 별다른 기대를 품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기대치 못한 곳이 기대치 않은 추억을 준다. 내가 나에 대해 알고 있던 취향과 생각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지, 혹은 그런 취향이나 생각과는 상관없이 스위스가 너무 아름다웠던 것 뿐인지는.. 어쩌면 둘 다 인 것 같다.



그날 밤, 내가 아는 곳들의 날씨를 모두 검색해 봤지만 대부분 좋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손을 왔다갔다 핸드폰 위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우연히 누군가의 글이 눈에 띄었다. '체르마트'였다. 난 아직도 그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 사람이 남긴 글로 인해 내가 어떤 추억과 경험을 갖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면, 그 사람도 무척 얼떨떨할 터였다. 체르마트는 비교적 먼 곳에 자리해서 그런지, 다른 곳들과 달리  날씨 앱에 동그란 '해' 모양이 떠있었다. 내일 가야할 곳을 정했다.








조식도 포기한 채 달려 기차를 겨우 탔다. 체르마트로 가는 길은 기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하며, 2시간에서 2시간 반정도 걸리는 여정이다. 첫 번째로 갈아타야 하는 곳에 내려 기차를 기다렸다. 그동안 기차를 제법 타오면서도 헤매지 않았기에 긴장이 풀린 탓 이었을까. 레일 위에서 기차가 도착하자, 확인도 않고 몸을 실었다. 기차는 사람들을 태우고는 바로 출발했다. 출발시간까지 아직 5분이나 남은 상태였다. '스위스 열차 시각은 언제나 딱 맞는다고 했는데-'라고 생각할때 쯤, 불쑥 기차를 잘못 탔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차를 잘못 탔다는 생각만으로 몸이 얼어붙었다. 이 기차가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인지, 그 다음역까지는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계획한 곳이 아니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 내가 멀고도 낯선곳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갑자기 주변 풍경들이 낯설게 다가왔다. 여행하면서 그 낯섬은 대부분 새로운 것을 본다는 호기심과 설렘으로 다가왔고, 그 것이 주는 생경한 기분을 즐기곤 했다. 지금은 그동안 무수히 마주쳤던 영어와 외국인들조차 마치 난생 처음 마주친것 처럼 낯설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분명한건 기차는 다음역까지는 멈추지 않고 달린다. 여기서 내가 긴장하고 서두른다고 해서 기차가 더 빨리 가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처음, 기차를 잘못 탄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때보다 오히려 기차를 잘 못 탔다는것이 명확해지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 기차가 어디로 향해가는지 모른다는 사실에 불안했었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이 여행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조차 알지 못했다.



결국 이 여행이 어디로 흘러 갈 것인지,
어느 결말을 맺게 될 것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지금 내가 잘 못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도 그저 내 여행의
흐름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도,
이 기차가 데려다 줄 그 곳도
그저 내 여행의 한 부분이 되는 것 이다.



..우리는 예정된 기간 내에 항구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올바른 길을 벗어나지는 않으리라. - 월든



그리고 그 길과 여정 모두 올바른 길 이다







 

다음역은 Thun이였다. 인터라켄에서 출발할 때 쯤에는 날씨가 흐렸는데, 이 곳에 도착하니 햇살이 구름들 틈 사이 사이로 비추고 있었다. 체르마트로 가기 위해서는 그 전 기차로 돌아가서 다시 기차를 타야했다. 서둘러 8시 기차를 탔지만, 결국 그 다음 9시 기차를 탔을 때 체르마트에 도착하는 시간과 같게 되었다. 포기했던 조식이 떠오르며 배가 고파졌다. 근처에 있던 마트에서 먹을 것을 한아름 사서 남는 시간 동안 이곳을 거닐어 보기로했다.


기차역 근처였음에도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내가 있던 기차 칸 만 하더라도 이 곳에 내린 사람은 나뿐이였으니. 아직 하루를 시작하기엔 이 곳 사람들에게 이른 시간인 것 같았다. 어디를 향해 갈지, 어디로 가고싶은 건지 몰랐기에 그냥 발길 가는 대로 가기 시작했다. 몇 걸음 안가, 눈앞에 에메랄드 색을 지닌 호수가 나탔다. 에메랄드 빛 그 자체인 호수 였다.

그 호수를 따라 찬찬히 걸었다. 참 어이없게도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무 곳에나 내려도 이런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스위스는 정말 어떤 곳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4박 5일로 스위스를 머물다 가려 했던 내 계획이 생각보다 훨씬 짧은 나날들이 될 것 같았다. 낮은 집들과, 푸른 산, 파란 빛 호수가 감싸고 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추게 되는 고요함이 이 곳 풍경의 배경음악이 되는 그런 곳이었다.


방금 전까지, 아침에 서두른 탓에 늦는 것만 못하게 되었다고 다음부터는 서두르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느날은 부지런히 움직일 것이고 어떤 날은 서두르며 발길을 재촉할 것이다.



중요한건
그래서 결국 어떤 곳을 만나고,
어떤 것을 느끼고,
어떤 여행이 되었는가 였다.
너무 부지런을 떨어 시간이 남았다고
혹은 서두르는 탓에 잃어버리고
놓쳤다고 후회하고 좌절하기에는,
나는 여행중이었다.  










짧았던 이 곳을 뒤로하고 다시 기차에 몸을 실었다. visp에서 체르마트로 가는 기차는 창문이 큼지막하게 나있었다.



 그 이유를 기차가 출발하자 마자 알았다. 이 기차가 지나칠 풍경을 담기에는 이 큰 창문들도 부족했다. 목적지가 아니기에 스쳐지나가는 곳의 풍경조차 이렇게 아름답다니. 정말로, 정말로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말과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았다. 기차가 도착할 때까지 눈과 카메라를 떼지 못했다.

 


파아란 하늘과 초록색 산은, 선명도가 높은 어떤 사진보다 더 뚜렷하게 다가왔다. 그림 같은 풍경이라는 이 친숙한 구절이, 처음보는 이 낯선 풍경에 꼭 어울리는 말이었다.













체르마트에 도착하면 많은 이 들이 고르너고라트 전망대를 간다. 하지만 전 날 보았던 수네가 하이킹에 사로잡혀있던 상태라 수네가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곳을 향해갔다. 왕복이 아닌 편도로 끊었다. 올라가서는 하이킹을 통해 내려올 작정이었다. 경사가 높은 그 곳 케이블에 앉았다. 빠르게 올라가다가, 덜컥. 도착과 함께 문이 열렸다. 올라오는 길은 사방이 막혀 있었기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한발 한발 빛을 따라 걷다, 눈 앞에 촥-하고 펼쳐지듯 나타나는 이 곳을 만났다. 와..! 라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오는 그런 풍경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풍경에 어쩔줄 몰랐다. 이런 풍경이 주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여야할지 몰랐다. 눈에 담아야할지 이 곳을 거닐며 발자국을 새겨야할지 하늘을 바라볼지 하늘과 땅을 꽉 차게 담아야할지 아무것도 알 지 못했다. 그냥 그 것이 주는 아름다운 풍경과 느낌들을 서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찼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런 풍경을 봤으니
스위스에 온 것은 다한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푸른 들판과 드넓게 이 곳을 둘러싸는 산과 그 위에 푸른 하늘이었다. 이런 단순한 묘사로 설명할 수 밖에 없는 곳이지만 그 곳이 주는 느낌은 어떤 묘사로도 설명 할 수 없었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압도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유럽여행중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는 물음을 많이 받지만 난 망설임없이 스위스를 꼽는다. 산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연풍경에도 그닥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젠 그 생각에 확신이 없다. 하지만 확실한건 난 이 스위스의 풍경들을 좋아한다. 그 곳이 주는 가슴벅찬 설렘이 좋다.



사람이 없었다. 마치 이 큰 곳을 빌린듯이, 사람 한명 보이지 않는 길이 계속 이어졌다. 이렇게 넓은 곳에 사 람조차 없었지만, 공허하거나 외롭지 않았다. 들판과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과 산 뿐인데도 그 것이 주는 것은 텅빈 느낌이 아니었다. 구불구불 지어진 길의 모양이, 들판 속 제각기 핀 꽃들이, 내 앞에 펼쳐진 산의 모습들이, 내 눈안에 그리고 가슴안에 꽉차게 담겼다. 홀로 이 곳에 서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외롭지 않았다. 여기 있는 이 모든 것들이 나와 함께 했다.


하이킹을 하는 노부부를 만났다. 오랜만에 사람을 마주쳤지만 오히려 외로움을 느꼈다. 한국에 있는 가족이 생각났다. 이 곳이 좋다고 느끼면 느낄 수록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이 풍경을, 이 느낌을 아낌 없이 나누고 싶었다. 다시 오자고 생각했다. 그때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 좋은 곳을 다시오자고 다짐 했다.



마테호른에 구름이 없는 깨끗한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 역시 그 모습은 보지 못했다. 구름 한점이 필라투스산에서 도통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아쉽지 않았다. 어떤 아쉬움 같은 것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냥 지금 여기가 좋았다. 지금 이 곳이 지닌 아름다움 속을 거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그저 자연 그대로 남아있는 존재들을, 보고 걷는 것 만으로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느낌과 감정을 얻었다. 또 처음이었다.


두시간에서 세시간 어쩌면 네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이곳을 단숨에 내려왔던것 같다. 빨리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건 아니지만, 단지 그냥 이 곳 을 내딛는 발걸음이 너무 가벼워서, 그래서 내 마음도 너무 가벼워서, 어느새 하이킹은 끝나 있었다.



이 산들로 둘러싸인 마을이 예뻤다. 대부분 나와 같은 관광객을 위한 집들이었지만, 산 속에 그림같은 집 이었다. 이 곳에 살게 된다면, 그래서 노을이지고 어둠이 깔리고 별을 덮는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거나, 이른아침 새벽녘 풍경을 보며 눈을 뜨거나, 겨울에 소복히 눈내린 모습을 본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볼 수 없는 이 곳의 다른 모습들이 궁금해졌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 이 아이들은 그 다양한 모습을 몇번 이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모습들이 여러 장면들이 되어,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것 이다.



난 오직, 오늘 풍경만을 가슴 속에 새기고,
그 장면이 너덜너덜 찢어질 만큼
오래도록 들여다 볼 것 같다.
그 풍경이 아름다워서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고 행복해해서,
그래서 그 추억이 오늘이라는
한장 뿐이어도 괜찮았다.




마을의 작은 공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눈을 감고 바람을 느꼈다. 아직 시간이 남은 만큼 한번 더 올라가서 보거나, 가지 못했던 고르너고라트를 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때의 난 이 곳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내고 체르마트를 떠났다.


사실 여행을 하면 할 수록 다시 가보고 싶다는 아쉬움과 미련은 매번 나를 따라다녔다. 언제나 아쉬움 가득한 발걸음으로 뒤를 돌았다. 그때의 나도 내가 본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치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그때 한 번만 더 가볼걸 하는 생각도 하곤 했다.


다만, 그때 내가 느낀 감정들은 충분했다.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된다면, 두 번째 봤을때 느끼게 될 감정들이, 지금 이 느낌을 대체 할 것 같았다. 지금의 감정들이 바람처럼 사라질 것 같았다. 그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늘 느낀 생생한 감정으로, 두근거리는 마음만을 꼭 쥔 채 돌아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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