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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Nov 05. 2017

스위스와 첫 인사, 베른





스위스로 넘어가는 날 날씨가 너무도 좋았다.

어제 이 햇살아래 스트라스부르를 만끽했다면,

이라는 가정을 하게 되는 그리도 밝은 날이었다.








도시를 옮기는 날엔 언제나 정신이 없고 혼이 빠지곤 하지만, 기차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이런 나의 마음을 잠재워준다. 긴장하거나 서두르지 않아도 이렇게 그 곳을 향해 가고있다고, 잘 도착할거라고, 그래서 만나게 될거라고.

내가 바래온, 또 다른 곳을.


내가 꿈꿔왔던 곳에서 꿈꿔왔던 다른 곳으로 가는 여정. 긴장감으로 두근 거리던 마음이 설렘으로 두근 거리기 시작한다.



이 기차는 바젤(스위스)로 향한다. 하지만 그 곳이 도착지는 아니었다. 그 곳에서 가야할 곳을 정해야했다. 스위스의 여정은 날씨를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일정도 지금 바로 정해야 했다. 스위스 날씨 앱을 보며 가장 날씨가 좋은 곳으로 가기로 했다.


평소에 난 계획적인 편이다. 해야할 일이 있으면 대충이라도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을 다 지키지 못하면 약간의 초조함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유럽여행의 대부분 계획은 즉흥과 계획 사이었다. 이미 가고싶은 곳은 '도시'로 정해놨으니 그 안에서의 계획은 그 도시에 도착 한 뒤로 떠넘겼었다. 그래서 밤 마다 잠이 들기 전 내일 갈 곳을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낯선 곳으로 향하는 와중에 그 다음 목적지를 지금 정하다니. 내가 이렇게 즉흥적인 성향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내 모습이 진짜 내모습일까, 아니면 낯선 환경에 적응 하기 위해 평소 나와는 다른 내 모습이 나오는 걸까.


창문을 통해 날 비추는 햇살은 따사로운데, 숙소가 있는 인터라켄 지역은 흐린구름이 보인다. 바젤과 가까운, 그래서 비교적 날씨가 좋은 베른을 택했다.


바젤에서 내리자마자 곧 바로 출발하는 베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바젤, 그러니깐 스위스에 온 것도 처음이고, 베른도 처음이고, 스위스 철도도 처음인데, 서울에서 지하철을 환승하듯 기차를 탔다. 기차안에서도 혹시 베른을 가는게 맞는지, 베른을 행여 놓치지 않을까 긴장은 되었지만, 이런 내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다. 여행하는 것을, 아니 여행하는 나의 모습에 점차 적응이 되는 것 같았다.


기차안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과 좋은 여행 되라며 인사를 나누며 기차에서 내렸다.

베른에 도착했다.


숙소를 들리지 않고 바로 온 베른 이기에, 캐리어를 맡길 보관함부터 찾아야했다. 보관함을 찾는것 부터 이용하는것까지 무척이나 헤매느라 한 숨 돌릴 틈이 없었다. 보관함 문을 닫고 그제야 안도의 한 숨울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인포메이션센터로 가서 전날 처럼 지도 한장을 들었다. 베른 지도는 스트라스부르보다 비교적 간단했다. 한쪽 길로 쭉 내려가서, 반대쪽으로 쭉 올라오는 식이었다.








역을 나서자 얼굴에 내리쬐는 햇살에,
보고있던 지도를 습관적으로
머리위로 올렸다.
그제야 보였다.
내가 있는 이 곳이.
빨간색 국기가 나부끼는,
스트라스부르처럼 작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인,
베른 이었다.

낮은 건물들. 그 사이를 잇는 트램 선들. 빨간 트램과 돌길. 첫인상만으로도 아름다운 곳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날씨가 좋아서 선택한 곳이 었는데, 이 곳이 좋았다.


지금 이 시각, 이 햇살이 비추는 순간,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 타박타박 돌길과 내 신발이 닿을때마다 나는 소리,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좋았다.






시계탑 밑을 지나자 비눗방울이 흩날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 비눗방울에 손을 대자 톡 터지고 만다. 한번 더 손을 올리는데, 그 비눗방울을 터트리기위해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며 웃는 아이들이 보였다. 올린 손을 다시 내리고 비눗방울을 터트리는대신, 웃음을 터트리는 그 아이들을 사진속에 담았다. 빛을 머금은 비눗방울과 그 것을 향해 손을 뻗는 아이들. 이 곳 풍경은 그랬다. 삶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살아 있는 것만으로, 그냥 여기 서있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듯 했다. 지금 이 순간 그건 사실이었다.




베른의 풍경을 내려다 보기위해 장미 공원으로 가는 도중 강물을 잇는 다리를 지나야했다. 푸르른 나무속의 갈색 지붕의 집들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강물과 그 위의 또 다시 작은 다리. 이 노래만 끝나면 다시 걸어야지, 하며 다섯 곡 정도를 그냥 흘러보냈다.


장미 공원을 올라가는 곳은 가파랐다. 그래도 올라오면서 점차 시야가 넓어지는 풍경이 가슴 설레게 했다. 드디어 도착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이 곳 풍경을 몇 장 정도 사진으로 남긴다음 눈으로 담기 시작했다. 내 기억력은 좋지 않은 편이라 한국에 도착할때 쯤 이 곳의 풍경은 흐릿해질텐데. 결국몇 장 남긴 사진 정도로 이 곳을 떠올리면 추억할 텐데. 그런데도 이렇게 눈으로 담는 것은, 이 곳이 주는 햇살과 바람, 느낌, 떠오르는 이 생각들을 그냥 그대로 느껴야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곳에 얼마 동안 머물렀는지는 모르겠다. 돌아가야했기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어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아까 바라보았던 그 다리로 가보았다. 내가 아까 내려보았던 곳에서 위를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다시 올라와서 아까와는 반대 쪽으로 향해 올라갔다. 문득 문득 보이는 골목 사이로 내가 내려가던 길들이 보이곤 한다.


반대쪽으로 내려오면서, 전에는 보지못했던 공원도 보였다. 이 곳에 돗자리를 피며 놀러나온 듯한 사람들이 보인다. 나에게도 놀러온 곳이지만,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는 곳이었다. 네모난 공원을 천천히 돌며 풍경을 담았다. 벤치에 앉으면 보이는 산과 하늘의 모습은 마치 긴 액자에 담긴 그림같았다. 벤치에 일어서면 강물과 다리를 포함해 좀 더 넓은 풍경이 담겼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숙소로 일찍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짐이 보관함에 잠시 맡겨져있다는 사실이, 여기는 아주 잠시 머물다 가야하는 것을 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꾸 조바심을 나게 했다. 내 집이 아닌 숙소에 짐을 맡기는 것과 보관함에 맡기는 것이 실상 별 차이가 없는데도 말이다. 여행에서는 내 몸이 뉘일 곳이 가장 안심이 되고 소중한 곳이 되는 것 같다. 그곳이 최종 목적지인 마냥 굴었다. 결국 여행을 와서도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들 수 있는 곳이 언제나 마지막 목적지였다. 애써 그런 마음을 누르고 있었던 것 같은데, 발걸음이 자꾸만 빨라졌던 것 같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곳이 있다. 역에 다다를때 쯤, 내 앞에 있던 거리의 모습이었다. 지금 내가 걷는 곳이 이어지는 그 앞의 모습, 여느 유럽거리와 다르지 않는 가로수들과 유럽의 건물들 사이의 풍경이었다. 아직도 그 모습이 왜 그토록 좋았는지 이해가 되진 않는다. 어쩌면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는 그저그런 풍경이었다. 베이지색, 파리의 건물들과 비슷한 깔끔한 건물들과 드문드문 걸린 차양과 깃발,  길가에 자리잡은 풍성한 나무들과 그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비추는 그 거리. 횡단보도의 빨간불 표시와 그 건너편에 또 다른 공원의 모습.


왠지 모르게 그 모습이 좋아서 그 모습에 다가가고싶었다. 하지만 다가서기도 전에 오른편에 역이 보였다. 보관함에서 캐리어를 찾고 기차를 타려면 지금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다음 기차 시간은 꽤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결국 나는 왜인지 모를 그 좋았던 흔하디 흔한 풍경을 앞에두고 뒤돌았다.

지금 생각하보면, 늦은 시간까지 그 곳에 있어도 좋았을 텐데, 그 풍경을 좀 더 가까이 보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왜 좋았는지도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아마, 난 다시 이곳에 와야 할 것 같다.



여행은 그렇다. 가보고싶다는 열망으로 시작해서 다녀오면, 이것 저것, 이곳 저곳 아쉬움으로 다시 가고싶다는 열망이 든다. 여행을 멈출 수 없는 이유 같다.


여행이 남기는 것은,
가본 적이 없어서 가고싶다는 마음이
다시 가 봤기에 가고싶다는 마음으로
바뀌는 것 뿐이다.





인터라켄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인터라켄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흐려지는 날씨였지만, 인터라켄 호수와 그 곳을 둘러싼 산의 풍경은 보다 뚜렷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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