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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Oct 28. 2017

작은 곳에서 짧은 날, 스트라스부르




스트라스부르라는 도시를 알게 된 건, 꽃보다 할배를 본 후였다. 이번 내 여행은 꽃보다 시리즈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스페인 대신 크로아티아를 선택한 것도 그렇고 말이다. 건물 사이로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앵글에 가득차게 나타났던 대성당의 모습에 보는 나조차도 가슴이 두근거리긴 했지만 스트라스부르에 가게 된 건 우연아닌 우연이었다.

 

한 도시에서 최대한 오래 머물고 싶었다. 한달이 넘는 시간을 한 도시 혹은 두 도시에 집중할까 싶었다. 하지만 유럽여행을 소망한지 거의 십년만에 이루어진 여행이었다. 그 다음이라는 기약이 또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가고싶은 곳들과 어느 곳이건 아쉬움 없이 머물고 싶다는 욕심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란 어려웠다.


비행기는 미리 끊어놨지만 그 이후가 문제 였다. 내 욕심 때문에 각 도시의 숙박일을 쉽사리 정하지 못했다. 이미 시작과 끝이 정해진 날들 안에서 각각 몇 박을 할지 덧셈, 뺄셈이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교통비는 점점 오를 뿐이었다. 파리에서 바젤로 넘어가는 기차값도 몇일 전보다 훨씬 올랐다. 날짜를 다시 조정해야하나 하는 고민에 휩싸였다. 그러다 우연히 본 프랑스 남부 도시들이 있었다. 그 낯선 지명들 속에서 익숙한 스트라스부르 글자만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파리에서 스위스와 맞닿은 그 곳으로 넘어가고, 다시 바젤로 넘어가는 기차값을 합치면, 파리에서 바젤로 가는 가격보다 저렴했다.


그래서 그렇게 스트라스부르는 스위스와 파리를 이어주는 경유지로 머물게 되었다. 하지만 경유하고 바로 스위스로 향하는 것보다 이왕 스트라스부르에 발을 딛게 될거라면 하루 정도는 머물다 가고싶었다.



그래서 짧은 1박의 스트라스부르여행이 시작되었다



파리에서 힘들었던 체력 때문에, 스트라스부르에서는 하루종일 쉬어도 괜찮다는 마음이었다. 숙소로 가는길은 그리 멀지 않았지만, 돌로 된 길에서 캐리어를 끌기란 무척 힘들었다. 워낙 프라하의 돌길에 대해서만 들어왔던 터라, 스트라스부르에서 생각치 못한 돌길을 마주하게 되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 작은 마을의 모습과 딱 어울리는 돌길이었다. 하지만 큰 짐을 이고 서있는 내 모습은 어쩐지 그곳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여행을 하다보면 종종 나만 여행자인 듯한 느낌이 들때가 있다. 어떤 무리에 속하지 못하고 튀어보이는 것 같지만, 이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적응이 됐다. 홀로 여행자라니, 정말 여행가가 된 것만 같았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여행에 필수불가결한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는 한발자국 캐리어를 끌고 멈추고를 반복해야했다. 그렇게 소란스럽지 않은 곳에서, 드르륵 탁, 드르륵 탁,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숙소에 도착하고나서도 엄청난 수의 계단을 마주했다. 돌 길을 벗어나니 계단이었다. 이렇게 새로운 길을 지금까지 쌓아온 짐을 지고 걸을 때면, 이것이 여행의 무게인가 싶었다. 이정도 무게야- 한국에서 느끼던 마음의 무게보단 훨씬 가볍다고 어김없이 생각하며 계단을 올랐다. 이대로 잠이 들기에는 배가 고팠고, 그 돌길 위에서 본 스트라스부르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숙소 옆에 위치한 빵 집에서 빵을 하나 산 후, 그동안과 달리 핸드폰 대신 숙소에서 건네준 지도를 펼쳤다. 작은 마을이니 만큼 지도로도 여행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왠지 한 손에는 빵을 또 다른 손에는 지도를 드는 모습이 이제야 이 곳과 어울려 보였다.

지도를 보고 몇걸음 걸었을까, 구글맵 없이, 정보를 세세하게 적어 둔 블로글 글 없이, 스마트폰 없이 여행을 떠났을 과거의 여행객들을 생각했다. 이 낯선 곳이 얼마나 더 낯설게 다가왔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때의 여행이 지금보다 더 힘들고 고되었을꺼라 단정할 순 없었다.


지도를 두 손에 들고 주변을 둘러보기를 반복하자, 한 노인이 나에게 다가왔다. 자전거를 탄 흰 머리의 노인은, 이 아기자기한 이 마을과 어울리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엇을 찾고 있냐는 물음으로부터 시작해서 짧지만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며, 내가 가야할 방향을 손으로 다시 한번 가리켜주고는 천천히 멀어져갔다.



이 낯선 곳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
날 도와줄 도구가 많다는 것이
하루종일 고개를 숙이고
파란 점을 따라가는 여행이
그 전 보다 좋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어쩌면, 다소 귀찮고 불편했을지라도
지금보다 더 많은 풍경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이쯤일 것 같았다. 건물들 사이로 보이던 높은 대성당의 꼭대기가 아까보다 더 가깝게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어 북적거림이 느껴졌다. 앞만보고 걷던 몸을 돌렸다. 그리고 건물 사이로 모습을 나타낸 대성당을 발견했다. 티비속 화면으로 보았던 그 성당이, 나를 두근거리게 했던 그 곳이 내 앞에 있었다. 이 성당 주위를 카메라가 돌며 웅장한 비지엠이 깔리던 화면 속 성당이었다. 너무 커서 저절로 뒷걸음질이 쳐졌다. 오후의 햇빛 대신 빼곡한 구름 아래의 대성당이었지만, 가슴 벅차오르게 할 음악도 없고, 땅에 발을 붙인 상태에서는 사람들 틈에서 올려다 보는게 전부인 시야이지만, 그래도 그 성당이었다.


시야를 가리는 우산을 접고 사람들 틈을 벗어나 좀 더 멀리서 바라보기로 했다. 성당을 온전히 보기에는 조금 멀어도 이곳이 좋았다. 그렇게 우두커니 보고 있다보니,차츰 햇빛이 들기 시작했다.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던 곳 옆에 있는 광장에 앉았다. 광장은 작았지만, 회전목마와 동상이 있고 창문이 많고 제각기 다른 색을 띄는 집들로 둘러쌓여 있었다. 플란더스 개 동화책 같은, 외국동화에 종종 언급되던 평화롭고 작은 마을의 광장 모습이 지금 딱 여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이 풍경을 그림으로 담기로 했다.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고풍스러운 성당은 옆에 웅장하게 서있고, 그 중간에는 회전목마까지 이렇게 멋있는 공간을 지닌 이 곳이 부러웠다.







햇빛이 언제 사그라들지 모르니 다시 길을 나섰다. 지금 나를 비추는 햇살과 내 발걸음이 닿는 거리들이 나를 기분 좋게 했고, 이 순간 달콤한 아이스크림 한 입이 있다면 완벽할 것 같았다.


그저 쉬어가는 곳이라고, 산책정도만 하고 돌아가자고 생각했지만. 이 곳 풍경이 쉼이 되었고, 산책이라고 하기에는 좀 더 오래오래 걸었다. 프랑스 남부는 파리와 매우 다른 분위기로 설레게 했다.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프랑스에만 머물고싶다는 생각도 했다. 더 많은 도시를 둘러보고싶었다. 이렇게 아무런 생각없이 어쩔수 없이 들리던 곳조차 이토록 생생한 아름다움을 주었으니. 다른 도시가 궁금해진건 당연했다.

 











 날씨는 점점 어두워졌다.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은 길의 막바지에서 다시 되돌아 길을 걸었다. 비가 투둑 떨어지지만 아직 우산을 펼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사람도 차도 별로 없는 이 곳을 조금은 축축해진 모습으로 걸었다. 성급할 필요도 없었다. 길을 헤매어도 이 풍경들을 따라 걷다보면, 다시 내가 아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마음껏 헤매어도 좋다는 것, 그런 마음이 오히려 나를 편하게 해주었다.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작은 카페에 들렸다. 하지만 곧 문을 닫는다고 했다. 결국 빈손으로 나와 다시 비를 피해 처마 밑에 섰다. 아직 6시도 안된 시각이었지만,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 문을 닫는 상점들을 보는건 거의 처음이었다. 비를 피할 수 없어 실망스럽기보다, 일을 마치는 분주한 손길에서 부러움을 느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저녁과 하루의 마무리를 위해 서두르기 시작했다.

내가 돌아갈 곳은 대부분 누군가의 저녁을 위해 가장 분주할 시간이었다.


하루종일 흐린탓에 6시임에도 비교적 저녁같은 분위기였다. 그동안 밤 10시는 되야 해가 지기 시작했으니, 오랜만에 맞는 이른 저녁이었다.


기차에서 트램을 타고 내리자마자 보았던 그 광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쉬었다 가야할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걸으면서 마주하면서 앉으면서 비를 맞으면서도 쉴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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