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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Oct 14. 2017

파리에서의 마지막.

다시 만나자


 41일간의 여행중 가장 오랜 머문 도시 파리, 파리의 마지막날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파리의 두번째날 처럼 흐릿한 날씨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파리를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가보지 못한 곳도 많고, 사진도 많이 남기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큰데, 그날의 나는 어쩐지 아쉬움도 욕심도 없었다. 파리의 가야 할 곳을 휘갈기듯 써놓은 종이 위에서 우연히 마레지구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시간이 남으면 갈 곳으로 작게 적어 놓았던 곳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시작되었다.


조금은 나아진 발이었다. 가까운 전철역을 두고 파리의 길거리를 더 걸을 수 있도록, 조금 떨어진 전철역으로 갔다. 파리의 전철은 날 긴장하게 만드는 곳 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누구의 자랑스러운 딸, 손녀 딸, 졸업을 앞둔 4학년, 취준생 24살 여성 등의 역할을 한국에 놓고 온 대신 이곳에서의 동양인, 여자, 관광객 등의 역할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도 여행자의 역할이 좋았다.


전철에서 나오니 날씨 때문에 흐리고 다소 적막한 거리가 반겨주었다. 특정 어떤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레지구는 단지 여기서부터 어딘가까지를 가리키는 구역일 뿐 이었다. 내 발은 한참 머뭇거렸다.

결국, 발길 가는대로 가기로 했다.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도, 아직도 마냥 멋있어보이는 파리의 건물들과 풍경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이곳 저곳을 걷다 빨간문과 빨간 지붕이 예쁜 카페를 마주쳤다. 그 곳의 사진을 찍다가 직접 들어가보기로했다.


라떼와 먹음직스럽게 진열된 파이 하나를 주문했다.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테이블 옆에 놓인, 높은 의자에 앉았다. 노래를 들으며, 내가 있는 이 까페를 찍은 사진을 앞에다 두고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달콤한 파이 한 입, 쌉싸름한 커피 한 입, 바깥 풍경과 사진을 번갈아 바라보는 두 눈, 손 밑에서 쓱쓱 생겨나는 검은 줄.



그렇게 한참을 그리고 있다가 고개를 드니, 나 밖에 없었던 카페 안은 어느새 많은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림을 마무리 짓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뒤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던 사람 중 한명이 내게 다가왔다. 내 그림을 보곤 엄지손가락을 척 들이키고 웃음을 지었다.

기분이 좋았다. 그 사람의 웃는 모습이.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에게 받는 따뜻한 미소가. 그림을 한참 만지작 거렸다. 그 사람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잘가라며 인사를 건네는 그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만 전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 사람의 미소가 주었던 따스함을 담아, 그림을 전해주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다.




그 당시의 나는 아직도 나 였다.
주춤하다 결국 뒤돌아서고 마는

그런 모습을 지닌 나 였다.
그럼에도 난 여행을 결정했고

떠났고 거닐고 만났다.

그것 만으로도 나는,
과거의 나 그 자체가 아니었다.
조금은 변한 나였다.





이 곳 근처에 있는 보주 광장이라 불리는 공원을 가기로했다. 어느새 흐린날씨는 사라지고 밝은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느라 밝아진 날씨도 모르고 있었다. 예뻤다. 아까는 몰랐던 햇살 속 거리 모습들이 너무도 예뻤다. 발걸음도 활기찼다. 뛰 듯이 걸으며 광장에 도착했다. 유럽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정원이었지만, 어느 곳 보다 여유로운 기분이 들게 하는 곳이었다.


상처투성이의 발로, 거닐었던 파리 곳곳

주위 사람들처럼 돗자리를 깔고 가방을 베개처럼 벴다. 그리고 오늘 아침 가방속에 넣었던 책을 꺼내파란하늘과 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읽기 시작했다. 햇살, 온도, 편안함, 노래, 파란하늘, 홀로, 여유.

그 때 그곳에서_ 모든 것이 완벽했다.




완벽하다는 말은,
이 순간을 위해 써야하는 것 같았다.
여행을 하면서 이처럼 완벽한 순간을
이따금씩 마주하게 된다.
신기하게도 대부분 완벽할 것 같지 않은
하루에 만나게 되는 완벽한 순간들이었다. 오늘 길을 나서면서도 이처럼 완벽한 순간을 만나게 되리라 상상하지 못했었다.





마지막으로 햇빛을 볼 수 있어서, 그리고 이렇게 누워, 하늘을 꽉차게 바라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파리, 나에게 파리에서의 7일은 어떤 나날들이었을까. 그냥 그 곳에 있는 것 만으로도 설렘을 느끼게 해준 아름다운 곳. 언젠가 꼭 다시 올것만 같은,

아니 와야 하는 곳.






그날 밤 새벽 한 시까지 기다리며 화이트 에펠을 보았다. 그렇게 파리의 마지막은 역시 에펠탑이었고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아쉬움을 담아, 발자국이라도 남기려는 듯 꾹꾹 힘주어 걷지 않았다. 괜찮았다. 기약없는 작별인사 보다 다시 만나자라는 곳이 어울리는 곳이니깐.


그렇게 뒤돌아 가벼운 발걸음으로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어둠 속을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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