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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Oct 10. 2017

파리에서의 어느 3일


2016.07.08


오늘 아침 날씨가 좋았다. 그 뒤로는 흐린날이 계속 된다는 검은 구름소식이 보였다. 오늘이 파리를 떠나기 전 유일하게 밝은 날씨라면 선택을 해야했다. 아직 가보지 못했던 곳들 중 뜨겁고 환한 날씨아래 어디를 갈 것인지. 내내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베르사유 궁전을 갔다. 베르사유궁전, 그 화려하다는 곳을 보고 싶었나, 익숙하게 들어온 루이 14세의 절대왕정을 상징하는 곳이라서 그랬나. 그 이유들은 이미 다녀온 베르사유궁전에 대한 기억과 인상이 자리를 대신한지 오래였다. 어쨌든 난 그 곳을 가고싶었다. 이왕이면 좋은 날씨에.

가장 더운 오늘에 가장 해가 뜨거울 시간에 줄을 섰다. 갑작스런 파업에, 어떻게 가야할지 우왕좌왕 했을 뿐만아니라, 기차와 버스타는 곳도 무척 헤맸다. 오후 느지막히 궁전에 도착했다. 궁전보다 궁전으로 향하는 길이 좋았다. 파리보다는 또 다른 느낌의, 그 곳이 주는 느낌이 좋았다. 해가 아주 높게 떠있던 때 우산 속에 숨어 차례를 기다렸다. 이미 오래된 기다림으로 지치고, 땀을 많이 흘린탓에 누구보다 천천히 걸으며 안을 둘러보았다. 이제 아무도 살지 않아 먼지가 내려앉은 내부의 모습은 그닥 화려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화려한 그림과 금의 장식도 세월 앞에서는 그저 그런 옛날 풍경이었다.



그러다 문득 앞에 난 긴 창을 통해 정원의 모습을 보았다. 어떤 장식이나 그림보다 훌륭하다고생각했다.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는 햇빛, 그리고 유리문의 크기 만큼 보이는 정원, 그 정도 크기를 가진 그림 같은 모습. 이것을 위해 이렇게도 큰 정원을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궁전에 늦게 도착한 탓에 정원에 머물수 있는 시간은 한시간 남짓 이었다. 그 시간동안 둘러보기엔 정원은 매우 넓었고 뜨거운 햇살을 피할 그늘은 적었다. 햇살을 요리조리 피하며 내려오니, 작은 호수를 옮겨놓은 듯한 곳이 있었다. 분명 크고 멋진 정원임이 분명했지만, 그동안 봐왔던 공원들 보다 큰 울림을 주지 못했다. 너무 웅장해서 여느 공원처럼 쉴 공간이라는 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아던 것 같기도하고, 이 곳이 크고 웅장한만큼 이 곳을 만든 사람들의 노고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날도 에펠탑앞에서 저녁을 보냈다. 지친 몸을 돗자리에 뉘이고 노래를 들으며, 시덥잖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불던 바람에 팔을 쓰다듬은 그 느낌이, 돌아가고 나서도

밤 하늘을 볼때, 바람이 불때, 다시 되살아나기를.

 



2017.07.09


캐리어에 마지막으로 신발을 넣었다. 편하면서 예쁜 신발이길 바랬다. 이정도면 편하고, 이정도면 예쁜 신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행을 시작한지 겨우 일주일 남짓이 될 때부터 발이 너무도 아파, 걸음을 내딛기 조차 힘들었다. 여행을 하면서 걷는 것이, 발이 편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된 나날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많은 것을 포기 했었다.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들, 더 많이 편한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 더 많은 노을이 지는 시간들. 많이 걷게 될 수록 여행 보다는 내 발의 아픔에 대해서만 신경이 집중되었다. 그래서 사실 내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것 들도 내 발이 괜찮았다면, 컨디션이 괜찮았다면 또 다른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 테다.



그래서 그런지 파리는 아쉬움이 큰 도시이기도 하다. 컨디션도, 날씨도 다른 도시에 비해 힘들 었던 곳 이었다. 그럼에도 그 것이 짜증과 실망이 아니라 아쉬움으로 남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다시 가고싶은 곳으로 남아있어서, 그럼에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고 아름다웠던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서 말이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파리에 실망한 사람들이었다. 모든 것이 지치고 힘들었던 나에게 파리라는 도시가, 모든 것이 좋았던 으로 남아있었다.

 

이제는 보기만해도 지긋 지긋한 신발을 벗어 던지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새 신발을 만나기 위해.

10시 반 아직 상점이 문을 열기엔 이른 시간이었는지, 대부분 닫혀 있었다. 그 근처 까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샀다. 바깥에 앉아 그림책을 피고 앞에 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앞에는 도로와 마주보는 건물들과 그 사이를 지나는 차들 뿐인 한적하고 공허한 풍경이었지만. 이렇게 앉아 있는 순간에는 그림을 그려야 했다.





상점들이 문을 열리고 신발을 사러 돌아다녔다. 일단 상점들이 모여있고 백화점이 있는 곳으로 왔으니 여기가 쇼핑하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시간 동안 돌아다녔지만 내 사이즈에 맞으면서 편한 신발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갑자기 오는 비를 피해 점심을 먹고 다시 몇군데를 더 들어가 봤지만 결국 빈 손이었다. 신발하나 사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결국 세시간 넘게 지속된 쇼핑을 그만두고 마지막 날인 뮤지엄 패스를 활용하며 돌아다니기로 했다. 퐁피두 센터와 노트르담 성당에 들렸다. 하루 종일 허탕친 기분과 비가내리는 어둑어둑한 날씨 때문이었다. 그 곳에 정말 발자국만 남기듯 다녀와 숙소로 돌아왔다. 이대로 오늘 하루를 끝내려 했지만, 개선문 전망대를 한번 더 오르고 싶었다.  

그 곳에 올라오니 먹구름에 뒤덮힌 파리 시내가 내려다 보였다. 빗줄기가 굵어지기 전에 내려왔다. 하지만 전철을 잘 못 내려 숙소로 가는 길이 걸어서 한참이었다. 때마침 비는 거세게 퍼부었다. 비 때문에 한치 앞도 안보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우산을 쓰고 있지만 이미 쫄딱 젖은 뒤 오래였다. 우산을 쓰는 것이 의미 없을 정도로 비가 내리고 어두운 길을 걸었다. 그 길 위에서 욕이 불쑥 불쑥 나올 만큼 힘들었다. 오늘 하루가 참 다른 의미로 완벽하다고 느꼈다. 완벽하게 힘들고 지친 하루였다. 이미 감기에 걸린 상태였지만 감기에 걸릴 것같은 기분이었다. 씻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아직 남은 날들이 있었다. 내일이 있었다. 오늘도 창밖의 빗소리와 함께 곧 씻겨 내려갈 것이다.












2017.07.10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어제 사지 못해 계속 신고 있는 신발을 신은채 어디를 가야할지 고민했다. 비가 내리니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발이 아프니 가까운 곳이었으면 했다. 이왕이면 높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싶었다. 그렇게 거리를 걷다, 이 조건에 충족한 장소를 발견했다. 개선문 근처에 있는 맥도날드였다. 햄버거를 주문하고 창가에 앉아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렇게 휴식을 취했다. 어제 끝내지 못했던 휴식까지. 그리고 다시 거리를 서성였다, 숙소로 돌아가서 숨을 돌리고 싶었다. 아직 4시가 될려면 45분 정도가 남았다. 들어갖 못하고 숙소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다 처음 들어간 골목에서 한 상점 진열장에 놓인 신발들을 발견했다. 안뜻 봐도 어제는 찾지 못했던 스타일의 신발들이 진열되어있는 상점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동안 수고했다며 나를 이곳으로 이끈건 아닐까 아니 나를 위해 잠깐 문을 연 곳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제는 그렇게 찾을 수 없었던 다양한 종류와 비싸지 않은 신발가게를, 이미 포기한 내가 어쩔 수 없이 아무곳이나 걷다가 발견했다. 허탈하다가도 다행이었다. 두손 묵직하게 상점을 나섰다. 드디어 신발을 샀다. 새 신발을 산 것 이 아니라 새로운 날을 산 것만 같았다.






새 신발을 신고 편한 몸으로,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했다. 이 곳의 치안은 익히 들었기에, 경계하고 주의하며 향했다. 몽마르뜨 성당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계단에는 팔찌단이 아니라 총을 들고있는 군인들만이 서성이고 있었다. 날씨는 여전히 어두웠다. 비가 내렸다 안내렸다하는 날씨에 결국은 우산을 접고 비를 맞으면 다녔다. 비가 내리는 소리가 더 잘들렸다. 우산에 가리지 않는 시야로 더 많은 것이 보였다. 비에 착 가라앉은 내 머리모양에 웃음이 났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아까 내 눈길을 사로잡은, 빨간 색연필 하나로 쓱쓱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에게 다가갔다. 내 초상화를 그리기로 결심했다. 25유로 기념품도 결국은 손에서 내려놓았던 내가 45유로 초상화를 그리기로 했다. 누군가가 바라보는 내 모습이 궁금했다. 다른 사람이 그려주는 내 얼굴을 간직하고 싶었다. 화가 앞에 앉아 긴장되는 마음으로 어색하게 웃었다. 그림이 보이지 않아 궁금증은 계속 커져만 가는데 사람들이 모여들어 나와 그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남들과는 달리 유독 튀는 그림체 때문인지, 동양인을 그리는 모습이 신기해서인지, 그림이 닮아서 혹은 닮지 않아서인지 어떤 이유로 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결국 받아본 초상화는, 나를 그린 것이 맞는지 궁금할정도로 닮지 않았지만. 누군가 나를 그려줬다는 것에, 프랑스 파리에서 누군가가 나를 그려주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그 곳에 앉아있던 시간이 담긴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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